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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보리베츠와 아사히카와 사이

2025년 3월 홋카이도 여행 3일 차

by 조아

노보리베츠에서 새벽 달리기를 한 후 나이키런클럽 누적 달린 거리 1,000km의 희열 속에서 즐기는 노천탕만큼 기분 좋은 일은 없을지도 모른다. 이제 블루 레벨 러너가 되어 달릴 수 있다는 것은 점점 볼트 레벨이 되겠다는 꿈을 향해가는 여정이기에 어서 다음 레벨이 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순리를 거스를 정도로 욕심을 내고 싶지 않다. 아마 무릉도원이 있다면 노천탕에 몸을 넣은 채 머리는 차갑고 몸은 뜨거운 지금 이 순간이 아닐까 한다.


이제 노보리베츠를 떠나 동북 방향으로 올라가면서 지난 여행 때 이루지 못했던 시도를 할 계획이다. 거창한 계획은 아니지만 시코츠 호수를 거쳐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부처의 언덕'과 홋카이도 야구의 새로운 성지, '에스콘필드' 그리고 대설산 로프웨이에 갈 예정이다. 에스콘필드는 지난 여행 때도 갔었지만 야구를 사랑하는 사람으로 한국에도 이런 야구장이 어서 생기길 바라는 마음이 전해지기를 원한다.

에스콘필드는 기념품 샵부터 음식점, 맥주, 간식은 물론 호텔까지 있는 종합 엔터테인먼트 공간이지만 가격도 비싸고 음식이 내 입맛에는 맞지 않았다. 또한 일본답지 않게 유일하게 현금 결제가 되지 않고 오직 신용카드만으로 결제가 되는 곳이기에 색다르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일본에서 현금을 쓸 수 없는 공간이라 생각하니 밀려오는 어색함을 감추기 힘들었다.



그래서 해외결제가 가능한 신용카드를 주머니 속에 넣고 노보리베츠를 떠나 인근에 있는 칼데라호, 시코츠 호수로 향했다. 화산 활동의 흔적이자 바다가 아닌 정녕 호수라고 불러야할지를 고민하게 만들 정도로 웅장한 크기의 시코츠 호수는 색다른 아침을 선사해 주었다. 늘 오후에 방문해서 몰랐는데 물안개가 피어 오르는 시코츠 호수를 넉놓고 바라보며 시간 가는 줄 몰랐고, 아침의 고요함이 가득한 이곳에 계속 머무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이런 간절함을 시코츠 호수에 내려놓고 다음 일정은 삿포로시 외곽에 있는 부처의 언덕으로 향했다. 지난 10월 홋카이도 여행 때 간발의 차이로 문이 닫혀 방문하지 못했던 부처의 언덕은 건축계의 마에스트로, 안도 타다오의 섬세함을 느낄 수 있는 건축물이다. 홋카이도 동부에 있는 물의 교회와 함께 안도 타다오의 건축물로 유명한 부처의 언덕은, 두대불전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올라오는 길에 보이는 작은 점이 사실 부처님의 머리라는 것을 알게 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데, 거대한 부처님뿐만 아니라 입구부터 모아이 석상이 반겨주는 부처의 언덕은 영국 이외의 곳에 유일하게 스톤헨지 모조품이 전시된 곳이기도 하다. 모아이 석상과 스톤헨지를 홋카이도에서 볼 수 있다는 이색적인 공간이기도 하지만 원래 이곳은 추모의 공간으로 인근 공동묘지가 조성되어 있다.



생자와 망자가 만나는 적막한 공간을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도록 만든 힘은 비단 안도 타다오의 손길만이 아닐 것이다. 그의 섬세함과 인위적인 건축물에서 느낄 수 없는 인위적이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착각이 드는 공간 구성을 통해 인간이나 건축이 결국에는 자연 속의 일부라는 사실을 느끼게 하는 묘한 힘이 작용하는 공간이다. 세계적인 건축가는 과연 이곳에서 어떤 감정을 느끼기를 바랐을지 생각하며 300엔의 입장료가 하나도 아깝지 않을 정도로 거대한 건축물에 압도당했다.


안도 타다오의 위대함을 느낄 수 있었던 부처의 언덕을 관람한 후 향한 곳은 홋카이도 야구의 심장, 니혼햄 파이터스의 홈구장 에스콘필드이다. 이곳은 가장 최근 지어진 개방형 돔구장으로, 웬만한 MLB 야구장이 부럽지 않은 최신형 야구장이다. 야구장 내부에 '타워 일레븐'이라는 호텔에 투숙하며 경기도 관람할 수 있는 발상이 정말 특이 없었다. 마침 일본프로야구도 시범경기 기간이지만 아쉽게도 경기가 없어 관람할 수 없었다.



굳이 호텔에 투숙하지 않더라도 에스콘필드 투어 서비스를 신청하면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에스콘필드 이곳저곳을 직접 방문할 수도 있는데 시간적 여유도 없는 우리는 제일 꼭대기 층까지 올라가 홈 플레이트를 바라보며 부처의 언덕에서 느꼈던 웅장함과 또 다른 에스콘필드만이 줄 수 있는 웅장함을 느낄 수 있었다. 고척돔에서 느낄 수 없는 이 웅장함이 한국의 다른 야구장에서도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



선배님과 나와는 달리 Y는 야구를 좋아하지 않았기에 에스콘필드 관람 시간은 무료 주차가 가능한 30분 안에 하기로 했기에 핵심 포인트만 보는 신속 관람을 하였다. 에스콘필드의 웅장함 속에서 코카콜라 게이트, 네오뱅크 게이트, 던롭 주차장 등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출입문, 주차장에도 브랜드 네이밍을 활용해 수익을 창출하는 모습을 보며 앞으로 한국 야구장에도 작은 부분까지 수익화 가능한 마케팅 기법이 활용되는 현장을 목도할 수 있기를 바랐다.


서둘러 관람한 덕분에 무료 주차 가능 시간인 30분 만에 에스콘필드를 빠져나와 비에이로 가다가 갑자기 대설산 로프웨이를 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 방향을 바꿔 홋카이도에서 가장 높은 산인 대설산으로 향했다. 하코다테 로프웨이, 우스산 로프웨이 등 홋카이도 내 유명한 로프웨이는 거의 타 보았지만 대설산 로프웨이는 처음 경험하는 곳이기에 말로 표현하기 힘든 긴장감 속에 운전하였다. 안 그래도 초행길이라 긴장했는데 눈까지 내려 더 집중해서 운전했다.



매년 눈 내린 홋카이도를 여행할 때마다 눈길 운전을 해봤지만 자주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눈 내린 길을 운전하는 것은 늘 긴장되고 극도의 집중력을 요한다. 더욱이 눈까지 내리면 이 세상 가장 깊이 몰입 상태에서 운전하는 모습을 경험할 수 있다. 물론 스노우 타이어를 장착했기에 안전하게 운전할 수 있지만 눈길 운전에서는 방심은 금물이다. 무심코 브레이크 페달을 깊이 밟는다면 빙글빙글 도는 풍경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그동안의 여행 경험이 누적된 나는 별문제 없이 운전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작년 부처의 언덕 초행길 때처럼 대설산 로프웨이도 5분을 남기고 마지막 곤돌라가 출발하는 모습을 망연자실한 채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대설산으로 향하는 고속도로에서 SA만 들리지 않았어도, 배고픔에 우동만 먹지 않았어도 대설산 로프웨이에 몸을 실을 수 있었을 텐데, 아쉽게도 곤돌라에 탑승하지 못한 아쉬움을 달리기 위해 기념품 가게에서 마그넷을 구입했다. 여행지에서 항상 구입하는 마그넷이었지만 대설산에서 구입한 이 마그넷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먼 길을 달려 대설산에 왔지만 로프웨이를 타지 못한 아쉬움만 가득한 체 힘들게 올랐던 눈길을 이제는 내리막으로 만나는 순간이다. 올라갈 때보다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며 현란하게 살짝 가속 페달을 밟는 신공을 발휘하며 무사히 고속도로까지 내려왔고 이번 홋카이도 여행의 마지막 밤을 보낼 숙소가 있는 아사히카와로 향했다. 숙소로 가는 길, 도저히 이 아쉬움을 달랠 길이 없어 다음 날 비에이 투어 일정을 취소하고 새벽같이 나오면 대설산 정상으로 향하는 첫 번째 로프웨이를 탈 수 있어서 모험을 해보기로 했다.



홋카이도 여행의 마지막 밤을 달래기 위해 하코다테에서 신나게 즐겼던 양고기를 한 번 더 먹기 위해 징기스칸 다이코쿠야 고쵸메점으로 향했고, 30분 정도 기다린 후 최후의 만찬을 즐길 수 있었다. 삿포로시에 있는 다루마와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이곳의 편안함과 친절함, 그리고 가성비 넘치는 홋카이도의 참맛을 느낄 수 있었다. 눈 내리는 아사히카와의 골목길을 다니며 여행의 마지막 밤을 보내지 않으려 노력했고, 대설산 로프웨이로 향하는 도전을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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