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일여여일

광대함과 경이로움 속으로

사로마 호수와 오호츠크해는 하나일지도 모른다

by 조아

어제 등이 다다미 바닥에 닿는 순간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깊은 잠에 빠졌다. 온천욕 덕분에 피로에 찌든 몸이 녹아서 숙면을 취했고 알람이 울리기 전 새벽 5시 30분에 일어났다. 잠들기 전 구글맵을 보면서 살핀 오늘의 달리기 코스를 따라 아바시리라는 낯선 도시를 달렸다.



어제저녁으로 먹은 야키니쿠 식당을 제외하면 아바시리라는 도시에서 방문한 곳은 없지만 첫 방문이란 말이 어색할 정도로 정감이 넘치는 곳이었다. 아바시리강을 따라 펼쳐진 도로를 달리면서 캠핑하는 사람들,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이곳도 사람이 사는 곳임을 느낄 수 있었다. 약 10km를 달린 후 숙소로 돌아가 아침 온천을 즐기고 몸과 마음을 가볍게 한 후 이날의 여정을 시작했다.


홋카이도는 일본에서도 변방이지만 홋카이도 동부는 다른 지역에 비해 더욱 개발이 되지 않은 곳이다. 산도 많지만 접근이 어려워 아바시리와 같이 유빙 체험을 하는 관광지를 제외하고 관광객을 보기 힘든 곳이 많다. 물론 이곳도 아바시리 감옥과 같은 관광지가 있긴 하지만 이번 여행 중 우리는 제외하고 그 어떤 한국인을 보지 못했다.



5월이라는 비수기라서 그럴지도 모르지만 유빙 체험을 하는 성수기에도 그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한 블로그에서 본 내용 중 유빙 체험을 하기 위해 차를 타고 6시간 달려 아바시리에 왔으나 20분 유빙 체험을 하고 허무했다는 후기가 있을 정도로 자연경관 이외 특별함을 찾아보기 어렵다. 모로요 패총과 폰모이 주상절리가 있지만 이것만을 보기 위해 오는 사람은 없으리라.


하지만 이곳에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숨은 관광지와 알려지지 않은 축제가 있다. 숙소에서 온천욕을 즐기고 방으로 돌아가는 길, 우연히 한 포스터를 보았는데 인근 꽃 축제를 알리는 포스터였다. 번역기를 돌려보니 5월 31일까지 하는 지역 축제로 사로마호를 보러 가는 길에 있어서 한 번 들러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 계획에 없었던 경로가 생겼음에 기뻤다. 이것이 진정한 여행의 묘미가 아닐까?



포스터에서 본 내용은 히가시모코토라는 지역 축제로 "시바자쿠라(芝桜)"는 잔디처럼 퍼지는 벚꽃 모양의 꽃이 피어 있는 봄철 관광명소에 대한 것이다. 히가시모코토 시바자쿠라 공원을 향해 가면서 어제 굿샤로호에서 숙소로 오는 방향에서 전혀 알지 못했다는 사실이 정말 안타까웠다. 시바자쿠라 축제로 가는 길, 메르헨 언덕이라는 곳을 지나갔는데 아직 꽃이 피지 않아 아쉬움을 뒤로하고 서둘러 히가시모코토로 향했다.



우연히 포스터를 보기 전까지 이런 축제의 존재 자체도 몰랐기에 참 다행이라 생각했고 이번이 41회나 되기에 꽤나 명망 있는 축제라는 것은 주차장에 도착하면서 느낄 수 있었다. 정복을 차려입으신 분들이 주차안내를 해주시는 것만 봐도 얼마나 준비를 잘했는지 한눈에 알 수 있다. 홋카이도 동부의 작은 축제지만 매표소에서 입장권을 구입하는 것이 아닌 키오스크로 발권한 후 입장했다.



시바와 사쿠라의 합성어인 시바자쿠라는 잔디 벚꽃으로도 불리지만 사실 벚꽃은 아니라 패랭이꽃과에 속하는 다년생 초본 식물이다. 후지산 인근에도 약 80만 그루의 시바자쿠라가 피어 있는 축제가 있어 일본에서는 축제의 모티브로 사용되는 것 같다. 생소한 벚꽃이었지만 조금만 둘러보아도 얼마나 정성스럽게 준비했는지를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축제의 농도가 깊고 좋았다. 아이들을 위한 모노레일과 공놀이 시설만 보아도 한눈에 알 수 있다.


시바자쿠라의 매력에 흠뻑 취한 채 행사장을 나와 이번 여행의 이유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사실 겨울 여행 때 이곳을 방문하고 싶었지만 폭설이 내려 방문하지 못했기에 더더욱 오고 싶었던 열망이 녹아 있었던 사로마 호수를 보기 위해서이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울트라마라톤을 했던 그 장소이다.



홋카이도 오호츠크 해안에 위치한 일본 최대의 기수호이자, 일본 전체 호수 면적 3위(151km²)를 자랑하는 호수이자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과도 간접적으로 연관되어 하루키를 추종하는 여행자들에게 문학적 상징성을 주는 곳이다. 굳이 달리기를 하지 않더라 하더라도 사로마 호수를 보면 열정적으로 달리는 하루키가 보일지도 모른다.


사로마 호수 전망대에 올라 바라보면 끝없이 펼쳐진 오호츠크해 앞에 있는 사로마 호수가 오호츠크해인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둘이지만 하나인 것처럼 보였다. 누가 사로마 호수를 호수라고 부를 수 있을까?? 그 광대함이 호수가 아닌 바다라도 불러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전망대에서 내려와 사로마 호수를 더 자세히 보기 위해 호수 근처로 갔다.



류구다이 전망대는 북쪽은 오호츠크해, 남쪽은 사로마 호수를 동시에 볼 수 있는 최고의 장소이다. 특히 겨울에는 유빙이 밀려드는 장관이 연출된다. 류구다이(용궁대)로 불리는 이유는 옛날 한 어부가 거대한 바다거북을 잡았는데 다시 바다로 돌려보내자 사과농사가 대풍년이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이런 전설을 떠올리며 한 번도 본 적 없는 오호츠크해를 바라보곤 이내 눈을 감았다. 바람이 많이 불어 추웠지만 오호츠크에서 불어오는 바람의 짠내를 느끼며 한동안 서 있었다.



오호츠크해를 충분히 느꼈다고 생각될 무렵 이번 여행의 두 번째 이유를 달성하기 위해 이동했다. 바로 아사히카와로 가기 위해서이다. 물론 한 가지 목적만을 위해 가는 것은 아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러닝화를 사기 위해서이다. 굳이 여행까지 와서 달리기를 하고 방문 장소의 목적을 러닝화 구매를 위해서 정하는 것을 이해 못 할 수도 있겠지만 이번 여행의 두 번째 이유이자 3일 차의 최종 관문이다.



숙소에서 조금 떨어진 Super sports Xebio를 방문하여 마음껏 러닝화를 구경하면서 어떤 러닝화가 좋을지 고민하다, '호카 클리프톤 9'이란 모델이 할인 중이라 더 이상 고민하지 않고 구매했다. 할인하는 이유는 다음 버전 모델이 나왔기 때문이라 망설일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최신 모델도 좋지만 이전 버전의 모델이라도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다면 나에게는 가장 좋은 선택일 것이라.


쇼핑을 마치고 아사히카와의 자랑, 징기즈칸 다이코쿠야 고쵸메점에서 홋카이도의 진미 양고기를 먹었다. 삿포로시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아늑함 속에서 익어가는 양고기 먹으며, 이번 여행의 세 번째 이유를 충족시켰다. 홋카이도를 여행하면서 여러 양고기 집을 가보았지만 그중 최고의 가게는 바로 이곳, 징기즈칸 다이코쿠야 고쵸메점이다.



삿포로시에 있는 다루마와 비교하면 넓은 공간에서 비좁지 않고 여유롭게 식사를 할 수 있으며 가격도 상대적으로 저렴해서 굳이 비교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또한 여러 번 방문했기에 아사히카와 역 바로 앞에 있는 숙소에서 구글맵을 보지 않고 걸어올 정도로 익숙해졌음에 감사할 뿐이다.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은 더욱 익숙할 뿐 아니라 발걸음마저 가벼웠다.


홋카이도 여행의 마지막 밤을 보내기 위해 숙소에서 어둠이 짙게 내린 아사히카와 역을 바라보며 이번 여행의 이유를 다시 떠올려본다. 그동안 여러 번 홋카이도를 여행했지만 처음 방문하는 이번 코스는 낯섦과 두려움이 공존했지만 아무 사고 없이 그토록 보기를 갈망했던 사로마 호수와 오호츠크해를 볼 수 있었음에 감사할 따름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나도 사로마 호수에서 열리는 울트라마라톤 대회에 참가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다다미의 향내가 아닌 침대의 포근함을 느끼기 위해 누웠다.



함께 보면 좋을 글


1. 프롤로그

https://brunch.co.kr/@ilikebook/1076


2. 1일 차

https://brunch.co.kr/@ilikebook/1083


3. 2일 차

https://brunch.co.kr/@ilikebook/1085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