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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아 Jun 22. 2023

신발이 주는 지혜

아이의 신발을 빨면서 드는 생각

 오늘 새벽 읽은 책을 통해 그동안 신발이 나에게 전달해 주는 의미를 곰곰이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등교하는 아이의 신발이 유독 눈에 강하게 들어왔다. 대상에 대한 강한 애착을 보이는 아이가 즐겨 신는다는 표현이 부족할 정도로 매일 신는 신발이다. 날이 더워서 반바지를 자주 입게 되니 신발이 더 잘 보이게 돼서 더러워 보이는 신발대신 다른 신발을 찾아보았다.


 나만큼은 아니지만 뾰족구두부터 시작해서 아이의 신발도 열 켤레가 넘는다. 나는 단순하게 아이가 애착이 강해서 그런가 보다 치부하고 넘어갔기에 별 신경을 쓰지 않았지만 오늘따라 그중 유독 이 신발만 신는 이유가 갑자기 궁금해졌다. 보기에도 더러운 신발대신 깨끗한 새 신발을 신을지 물어보고 민트색 신발을 신는 동안 이 신발만 신는 이유를 물어보았다.


 " 이 신발은 가볍고, 신고 벗기가 편해요."


 너무 당연하고 단순한 이유였다. 그저 가볍고, 신고 벗기가 쉽기 때문에 이 신발을 매일 신는 것이었다. 나한테는 당연하지 않은 것이 아이의 입장에서는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발을 보호하는 신발의 존재 이유처럼 최적의 신발을 신는 이유였다. 아이가 좀 더 자라면 멋쟁이는 발이 아파도 하이힐을 신어야 한다는 것을 알 때가 오겠지만 지금 아이에게는 편하고 신고 벗기 좋은 신발이 제일 좋은 신발이다.


 오늘 신고 간 새 신발이 발 사이즈보다 조금 크기에 혹여 넘어지지는 않을까 걱정되어서 아이의 애착 신발을 급히 손빨래를 한다. 아이의 애착 신발이니 내일은 꼭 신으려고 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다행히 장마 전이라 자연건조하면 빠르게 마를 것이고, 건조기에 돌리면 혹여 신발이 망가질까 봐 손세탁을 한다.


 신발을 빨면서 자세히 살펴보니 벨크로가 달린 찍찍이 신발이라 아직 끈을 묶을지 모르는 아이에게 정말 편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이런 찍찍이 신발이 없기 때문에 이런 신발의 편함을 모르지만 아이는 그동안 이 신발의 장점을 착용하면서 체험했기에 이 신발을 매일 신는 것이다. 아이의 신발을 빨면서 장점에 대한 나의 태도를 다시 생각해 본다.


 그동안 겉으로 보이는 장점을 인식해 왔지만 막상 사용하다 보면 장점이 아닌 단점으로 느껴지는 일이 있었다. 마찬가지로 눈에 보이는 단점은 실제 착용해 보면 장점이 될 수도 있다. 직접 경험해보지 않고 미리 판단하는 것은 착오를 불러일으킬 수 있기에 요즘 체험샵에서 구매 전 직접 체험 프로그램이 반응이 뜨거운 이유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바로 경험이 주는 진정한 묘미일 것이다.


 존재의 이유를 겉모습만 보고 미리 판단하지 않는 것은 놀라운 삶의 지혜이다. 그리고 너무나 당연한 것을 내 마음대로, 내 임의대로 판단하고 결정하지는 않았는지 반성해 본다. 나에게 무슨 자격이 있어서 존재의 목적까지도 부정할 정도로 사용할 자격이 있는지 회상하면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바라보는 시선과 경험해보지도 않고 미리 판단하는 어리석음을 버려야 한다.


 단순히 대인관계에서 뿐만 아니라, 내가 소유하는 물건과의 관계에서도 이런 자세가 주는 지혜가 필요하다. 겉모습만 보고 이뻐서 무작정 구매한 물건들이 아직 사용되지도 못한 채 창고에 쌓여 있는 나의 현실을 보면 더더욱 삶의 지혜가 있어야만 한다. 아이의 신발을 빨면서 이런 지혜를 얻었고 지금 당장 이 지혜를 삶에 적용할 것이다. 깨끗해진 자신의 애착 신발을 보며 기뻐할 아이의 모습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 아이와 대화는 지혜와 기쁨을 주는 삶의 활력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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