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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아 Jul 05. 2023

활자 흔적

시각 문화의 정수. 활자

최근 함께 글쓰기를 했던 작가님의 손글씨 시를 보면서 서체 등록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특이한 것을 좋아하는 성향 때문인지 몰라도 작가님의 글씨체가 너무 마음에 들었고 작가님의 이름을 딴 서체가 등록되면 더욱 좋을 것 같아서였다. 과거 고등학교 3대 악필로 히브리어 사용자로 오해받았던 나는 이쁜 글씨체를 보면 부럽기도 하고 마음이 설렌다. 필사를 하는 이유도 책의 내용을 오래 기억하고 싶은 이유도 있지만, 나만의 글씨체를 가지고 싶은 욕망 때문이기도 하다.


문서 작성을 하면서 가장 많이 사용한 폰트는 명조체이다. 지금은 나눔 고딕을 주로 사용하고 있지만 가장 편안하게 사용할 수 있는 명조체가 가장 좋다. 명조체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일본, 중국, 대만 등에서도 사용되는 양식으로, 청나라 때 명나라 목판본의 글자체를 본뜬 활자체의 이름이자 양식으로 중국이 아닌 서양 선교사에 의해 제작되었다. 아편 전쟁 이후 중국 내 개항과 함께 외국인의 활동이 자유로워지면서 더 많은 한자성경의 보급을 위해 사용되었고 이후 일본에서 활발히 제작되어 동아시아에 퍼졌다.


 지금은 한자를 사용하는 빈도가 높지 않기 때문에 다양한 한글 폰트가 사용되고 있고, 한글 명조체도 인기 있는 폰트 중 하나이다. 일제강점기 때 우리의 글을 말살하려는 야욕에 저항했던 조선어 문학회의 노력으로 조선어 사전이 우리말의 명맥이 유지되고 있지만 과거 훈민정음 창제 당시 ‘언문’이라 부르며 성리학 기조가 지배하던 당시에는 한자에 대한 사용이 더 많았기에 조선의 초 중기 금속활자의 대부분은 한자이다. 언문은 주로 여성들에 의해 사용되며 자녀에게 교육되었는데 이장을 위해 다시 판 무덤 속에서 발견된 부부의 편지 묶음에서 한글을 여성 주도로 교육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활자도 시대에 따라 변하기 때문에 훈민정음 창제 이후 발생된 서적과 문서 작성에 사용된 한글 활자는 아쉽게도  대부분 남아 있지가 않다. 일제강점기 때 우리의 서적을 불태우고 훼손하며 일부는 국외로 반출했기 때문이다. 앞에 언급한 조선어 사전도 급작스러운 광복으로 당시 경성역 창고에 보관되어 있어서 원본을 만날 수 있는 것이다. 지금은 디지털 활자의 보급이 주류를 이루기 때문에 과거의 활자에 대한 관심이 떨어질 수 있지만 과거 우리 조상님들이 사용했던 활자를 다시 디지털화하여 우리 고유의 한글을 더욱 다채롭게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글씨체에는 그 사람의 성격이 담겨 있듯이 활자에는 의미와 상징이 담겨 있다. 시각 문화의 정수인 활자에 담겨 있는 다양한 의미와 상징으로 더욱 다채로워지는 우리 한글을 사용하기 위한 모두의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 계속 필사를 하면서 한 글자 한 글자 정성을 다해 쓴다면 나도 나만의 글씨체를 만들어서 나의 고유 시각문화를 만들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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