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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아 Jul 23. 2023

과일 길들이기의 역사

자연에 대한 인위적인 개입과 선택

선사시대 인간의 주된 식량을 구하는 방법은 수렵과 채집이었다.  수렵은 사냥하려는 동물의 생활 반경에 따라 먼 거리를 이동해 할 때도 있지만, 채집 활동은 나무의 열매나 잎사귀를 따는 것이라 계절적인 이유를 제외하고는 비교적 쉽게 얻을 수 있었다. 인류 문명의 4대 발상지 유적 가운데 쉽게 발견되는 각종 과일의 화석과 씨앗으로 인간은 오래전부터 과일을 채집하여 먹어왔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과일은 인간의 주요 식량 공급원이 되기 어려웠던 이유는 원숭이나 설치류 등의 동물이 먹이가 되기에 그들과 경쟁해야 했기에 항상 부족했을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다른 뿌리 열매를 구하기 위해 노력했고 감자, 고구마, 옥수수를 길들이며 결국엔 쌀과 밀과 같은 주요 식량원을 찾았다.


 인간이 처음으로 먹었을 것이라 추정하는 과일은 아담과 하와의 이야기가 그려진 그림과 성경에 등장하는 ‘선악과’로 에덴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과실이다. ‘선악과’가 ‘사과’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성경 어디에도 사과라는 말이 없다. 라틴어로 작성된 초기 번역의 오류로 보는 주장이 지배적인데 ‘사과’를 뜻하는 ‘malus’와 ’악마‘를 뜻하는  ‘malum’을 혼동한 것이라 생각한다. 사과가 아니라 어떤 과일인지 궁금하지만 인간이 다시는 먹지 못한 과일로 남았고 지구상에서 사라졌을지도 모를 아직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이다.


 과일은 나무의 열매이자, 종족 번식을 위한 씨앗을 품고 있는 모체와 같은 것이다. 과육의 단 맛과 신맛 등이 있어 어느 정도 배고픔을 해결해 주기도 하지만 인간의 배부름을 가져다주지는 못했다. 식물도 종족 번식을 위해 포식자로부터 안전장치를 마련해 놓았는데 씨앗이 있는 씨방 부위는 대부분 맛이 없거나 씨를 날카로운 모양으로 만들어 먹지 않고 뱉게 만들었다. 인간이 먹고 우연히 뱉은 씨앗이 싹을 띄우고 주거지 근처에서 뿌리내리고 성장하여 인간에게 유실수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수렵으로 인해 지친 몸에 비타민을 제공하고 사냥이 실패했을 때 허기를 채워주는 항상 그 자리에 있는 존재로 작용했다.


 과일을 채집할 수 없는 겨울에 먹기 위해 따로 보관했던 과일이 발효가 되기 좋은 적정한 온도와 습도에서 ‘포도주’라는 인류 최고의 선물을 발견하면서 과일은 식량의 의미를 넘어 유희와 쾌락의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이 유희와 쾌락은 더 좋은 것, 더 많은 것을 얻기 위해 인간을 자극하였고 더 크고, 병충해에 강한 과일을 선택하면서 더 높은 수준의 유희와 쾌락을 누릴 수 있게 해 주었고, 인간이 과수원을 운영하면서  과일이 허기를 해결해 주는 것 이상의 것으로 만들었다.


지금 내가 먹고 있는 과일은 선사시대부터 조상님이 선택하고 선별한 품종이 이어 저 내려온 것이다. 물론 내가 맛보지 못하고 사라진 원시 과일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인간의 선택에 의해 선별되어 품종이 유지되거나 일부 개량되었다는 점이다. 씨앗에서 자란 자녀 나무가 부모 나무와 유전적으로 동일한 형질인 경우도 매울 드물지만 자연 그대로의 것이 아닌 ‘접목’이라는 인간의 적극적인 개입에 의해 과일도 변해가면서 지금의 종류와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먹어 본 여러 과일 중에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과일은 서양배다. 유럽 여행을 하면서 먹어 보았는데 지금까지 내가 먹어온 배와는 다른 맛이었으면 배라고 부르기에도 전혀 다른 과일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전 세계에서 한국인만 먹은 과일인, 참외에 대한 자긍심도 느낄 수 있다.  


 LA에 있는 오렌지카운티, 이곳의 이름에 오렌지가 들어가는지는 의문을 가질 필요도 없이 여기에 오렌지 밭이 많았기 때문이다. 지명 속에 녹아 있는 과일의 역사는 인간을 배고픔에서 해방시켜 주었을 뿐 아니라, 과수원을 식량창고이자 살아 있는 실험실로 만들면서 보다 인간 친화적인 과일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 왔다. 그 가운데 사라진 과일도 있고, 새롭게 교배된 과일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필요에 의해 선택되었다는 점이다. 인간의 역사 속에서 어쩌면 처음으로 발생한 자연에 대한 최초의 개입이자 선택이 과일의 DNA 속에 녹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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