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의 흔적
아이는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고 종종 그림을 그려 자신의 감정을 표현한다. 요즘 한창 재미를 느끼고 있는 만들기도 직접 그림을 그려 가위로 오리고 테이프를 붙여가며 항상 무엇인가를 만들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기특하기도 하지만 무엇이 아이에게 그림을 그리게 만드는지 궁금증을 자아내기도 한다.
어린이 집에서 매년 자신의 그림을 전시하기도 했던 아이는 그림에 대해서는 늘 진심이다. 심지어 지금 너무 가지고 싶은 핸드폰도 그림을 그려서 만들어 놀기도 한다. 내가 가지고 있는 공기계를 당장 주고 싶지만 아내는 중학교 2학년이 되면 다시 생각해 보자고 선을 그었기에 더 이상 이야기를 하지 못한다.
현대인의 필수품인 스마트폰이라도 지금의 아이에게는 진정 필요한지를 서로 이야기하지만 나도 아직 이르다는 것에 동감하며 함께 글쓰기를 하는 작가님 자제분의 이야기를 보면서 해주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고 있다. 무엇보다도 지금 아이에게는 스마트폰보다는 그림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아빠와 조금이라도 같이 시간을 보내고 싶은 아이가 새벽에 일어나는 루틴을 시작하고부터는 등교하기 전에 그림책을 보거나 그림을 그리는 시간의 여유를 즐기고 있다. 아이가 일어나면 내가 있는 곳을 찾아내 각별한 아침 인사를 나누고 화장실 갔다가 이를 닦고, 물 한 컵 마시는 루틴을 하고 난 후 그림책을 2권 정도 읽어 준다.
처음에는 내 루틴이 중간에 끊기는 것 같아서 아이의 새벽 기상이 방해가 된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아이의 루틴을 존중한다. 내가 읽어 준 그림책을 혼자 보면서 기억하고 싶은 장면을 그리기도 하고, 요즘 가장 좋아하는 <최애의 아이>를 그려서 만들기 놀잇감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사인펜, 색년필 등 자신의 도구를 이용해서 유튜브 영상에서 본 것처럼 최대한 똑같게 만들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면 어린 나이지만 정말 그림에 진심이라는 것이 느껴질 정도이다. 이런 진심의 흔적은 아이의 손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다양한 색상의 자국이 남아 있어서 아이가 어떤 색상의 사인펜을 사용했는지 금방 알아볼 수 있을 정도이다.
아이가 그림에 진심이라면, 나는 글쓰기에 진심인 하루를 보내고 있다. 특히 새벽의 정막함과 고요함 속에 책 읽기와 글쓰기를 하노라면 이 세상에 나 혼자 있는 것만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혼자라는 외로움이 아닌 시공간 속 나 홀로 있는 느낌은 온전히 나에게 집중할 수 있게 만들기 때문에 나만의 미라클 모닝을 만들어 가고 있다.
특히 고요함 속에 들려오는 사각사각 소리를 내며 들려오는 만년필로 필사하는 소리는 나의 정신을 깨우는 소리와 같다. 만년필을 사용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잉크가 손에 잘 묻는데 이런 손이 처음에는 부끄럽기도 했지만 지금은 새벽에 필사를 했다는 표식으로 느껴진다. 손이 깨끗한 날은 필사를 하지 않았거나, 만년필을 사용하지 않고 볼펜을 사용했다는 것으로 분간하기도 한다.
필사를 하기 시작하면서 책 내용 중 반드시 기억하고 싶은 부분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솔직히 책의 모든 내용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그중에서도 절대 망각하고 싶은 않은 부분을 찾고 있으면 내 마음속에서는 작가님을 향한 수많은 질문이 쏟아진다.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까??’, ‘작가님께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무엇입니까??’ 등의 질문을 통해 나는 작가님의 생각과 문장을 훔치려고 한다. ’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는 말처럼 세상이 유일하게 허락한 합법적인 도둑질을 하고 있다.
아직 책 읽기와 글쓰기에 있어서 초보 수준에 머물러 있는 나에게는 작가님의 생각과 문장은 아무리 봐도 위대해 보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해서 언제나 초보 수준에 머물러 있을 수 없기에 매일 책 읽기와 글쓰기를 하면서 내공을 키우려고 노력할 뿐이다.
언제 그분들처럼 위대한 생각과 문장을 만들어낼지 모르겠지만, 매일 하다 보면 언젠가는 그분들과 같은 경지에 이를 것이라 생각한다. 다소 시간이 오래 걸린다 할지라도 나는 책 읽기와 글쓰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300권 이상의 책을 읽고 그에 대한 내 생각과 감정을 글로 표현하면서 나만의 가치관을 만들어가고 있다. 내 가치관이 올바를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지만, 시대정신에 입각하여 세상을 보다 풍요로운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현실을 정확히 관통하는 안목으로 나만의 특별함을 만들어 가고 싶다.
그리고 그 특별함이 주는 다양성을 통해, 수많은 다양한 동식물이 살고 있는 지구라는 다양성의 결정체 속에서 나만의 다양성이 주는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다. 나는 책 읽기와 글쓰기의 흔적이 남아 있는 나의 손을 보며 특별함이 주는 다양성을 만들었다는 기쁨을 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