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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글루틴

글 쓰는 이유(feat. 글루틴 11기)

일상이 되어 버린 글쓰기

by 조아

나는 호불호가 강해서 중간이 없다. 이런 나의 성향을 정확하게 몰랐던 아내는 신혼 초 많이 힘들었을 것이라고 예상했고 실제로도 힘들었다. 결혼하면서 성격이 많이 바뀌었지만 사람은 쉽게 변하는 것이 아니라서 나도 나름대로 아내에게 맞추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했었다.


대표적으로 나는 음식을 나눠 먹지 않는다. 모든 것에는 자신만의 몫이 있다고 생각해서 내 몫을 다른 사람에게 나눠주질 않았지만 결혼 후 아내는 ‘갈라먹자’라는 표현을 쓰며 나눠 먹기를 원했고, 내키지 않았지만 몇 번 나눠 먹다 보니 이제는 내가 선 듯 나눠주는 지경에 이르렀다.


나이가 들어 유해지는 것도 있지만 아내는 요즘도 나에게 눈에 힘들 풀고 살라고 한다. 어떤 때는 눈에서 레이저가 나가는 것 같다고 하는데, 마샨 맨헌터와 같이 눈에서 레이저 빔이 나와서 무섭다고 해서 처음에는 별로 신경 쓰지 않다가 개들이 내 눈을 피하는 것을 보고 진짜 그런가 생각한 적도 있다.


그리고 나는 한 번 시작하면 끝을 봐야 하는 성격이라서 처음 시작하는 것이 다소 느리지만 한 번 시작하면 모조건 끝까지 간다. 그리고 끝까지 하지 못한 것은 기억하고 미련으로 남아 항상 끝을 보려고 한다. 예를 들면 아직 끝내지 못한 영어 명문장 100개 필사의 경우도 그렇다.


60여 일 동안 써왔던 필사를 멈추게 된 계기가 바로 글루틴 때문이다. 너무나 지극히 초보였던 1기 때 매일 글쓰기를 한다는 것이 너무 부담되어 새벽 시간이 너무 촉박했기에 여러 가지를 할 수 없다고 느껴서 글루틴을 제외하고 하나씩 내려놓았다. 왜냐하면 정말 글쓰기 루틴을 만들고 싶었고, 이번에 하지 못하면 평생 할 수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실제로 책 읽기와 글쓰기를 제외하고 모든 것을 중지했고, 글쓰기에만 집중하려고 했다.


글루틴을 시작한 지 이제 11개월 차에 접어든 요즘, 글쓰기는 내 일상이 되었다. 그래서 글 쓰는 이유를 찾으려고 생각해도 일상이 되어버린 형국이라 특별함을 느끼지는 못하지만 글쓰기가 없는 내 일상은 상상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아직 수준 높은 글쓰기를 하지는 못하지만, 내 감정과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 것에 집중하며 책 읽기와 일상의 사건들을 쓰고 있다.


매일매일 쓰다 보니 브런치에도 300개가 넘는 글이 쌓였고, 인생 최대 프로젝트인 일 년 365권의 책 읽기와 글쓰기도 무탈하게 진행되고 있다. 그냥 생각 없이 읽고 쓰는 행위에서 나오는 결과물이라고 생각한다. 무의식적인 자동반사가 아닌 자연스럽게 하게 되는 일상의 과업이 되어 내 삶 속에 녹아 있다.

집에서는 밖에서는 글쓰기를 할 수 있는 공간이 생긴다면 어디서는 글쓰기를 할 준비를 하고 외출을 한다. 집에서는 글쓰기 전용 테이블까지 준비해서 글쓰기를 할 수 있게 만들어 놓았다. 모든 일상이 글쓰기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 아직 글쓰기를 하며 만들어낸 특출 난 결과물은 없지만, 매일매일 꾸역꾸역 쓰다 보면 시나브로 작가의 경지에 오를 것이라 생각한다.


잘 쓰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닌 쓰기 위해 노력하는 태도가 글쓰기를 일상의 단편으로 만들어주고 있기에 이제 글쓰기가 없는 나의 일상은 상상하기 어렵다. 하지만 나의 게으름으로 인해 언제든지 일상에서 탈출할 수도 있기에 놓치지 않게 꼭 붙잡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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