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종의 기준

어 이거 내 이야기잖아

by 조아

우리 집은 각자의 루틴이 진행되는데 새벽 시간의 루틴은 아이가 6시에 일어나기 시작하면서 나와 중첩되는 시간대가 있다. 나만의 시간을 빼앗긴다는 생각보다는 새벽을 함께 한다는 기쁨이 있는 시간이다.


특히 생각을 많이 한 날에 글쓰기가 평소보다 늦어진 날은 아이가 일어나 내 옆에서 글 쓰는 것을 감독한다. 원래 말을 잘했지만 이제는 글도 잘 읽게 되면서 글쓰기를 하고 있으면 자동 음성 기능이 실행되는 것처럼 옆에서 낭독을 한다.


처음에는 아이가 방해된다고 생각해서 동화책을 먼저 읽어주고 아이가 스스로 읽도록 유도하기도 했지만, 아빠의 욕심에 내가 글쓰기 하는 것을 보면 아이도 글 쓰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없어질 것 같아서 요즘은 글쓰기 할 때도 옆 있게 한다. 때론 아이가 내 글쓰기를 지적해주기도 해서 제일 먼저 피드백해 주는 첫 독자이기도 하다.


며칠 전 <고양이는 왜 장화를 신었을까>라는 책을 읽고 글쓰기를 하고 있었을 때 옆에서 유심히 읽으면서 아이가 좋아하는 동화인 <여우누이> 예시가 나오자, "어 이거 내 이야기잖아"라며 소리쳤다. 아이의 말에 먼저 허락을 받지 않고 자신의 이야기를 썼다고 혼낼 것 같아 사정을 이야기하려고 하는데, 아이가 먼저 왜 자신의 이름을 쓰지 않았냐며 반문했다.


자기 이야기를 빼달라고 할 것 같았는데 오히려 자신의 이름을 언급하라는 요청에 놀라기도 했지만, 아이는 관심받는 것을 좋아하고 즐기는 관종(관심 종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주위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것의 맛을 알고 있는 아이에게는 모르는 사람이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며 관심을 가져주는 것을 내심 좋아한다.


아직 어린 나이라 익숙하지 않은 환경과 모르는 사람의 관심을 무서워하면서도 자신에 대한 관심을 거부하지 않는 진정한 관종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인 노출을 극도로 자제하고 있는 나로서는 깜짝 놀랄 일이지만 아이는 내 글쓰기의 단골 소재가 되는 것을 즐기고 있다.


육아에 대한 지분이 크지 않기 때문에 '육아대디'라고 언급하는 것조차 부끄럽지만, 아이의 성장 과정을 지켜보고 소중한 시간을 기억하고 싶은 욕심에 아이와 함께 했던 시간을 적은 글을 발행하는 별도의 매거진을 만들면서 아이와 함께 보낸 시간의 소중함을 더욱 알아가고 있다.


과연 나에게 허락된 시간이 언제까지일지 모르지만 아이가 스스로 자신의 책임질 수 있을 때까지 아이의 보호자로 위험에서 보호하고, 자신의 역량을 발휘할 때까지 지원해줘야 하는 부모의 입장에서 아이와의 시간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함 그 자체이다.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 동안은 온전히 아이에게만 집중하는 연습을 하고 있어서 핸드폰과의 거리 두는 훈련을 하고 있다. 핸드폰에게 시선을 빼앗기지 않으니 점점 아이의 성향과 관심사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옆에서 말없이 지켜보는 묘미를 느끼고 있다. 나와 닮은 듯하면서 닮지 않은 아이의 모습은 부모의 소유물이 아닌 자녀 그 자체로서의 인격체임을 알게 한다.


나에게는 없는 관종의 모습은 아내의 성향에서 비롯되었을 수도 있겠지만, 최근 알게 된 아이의 관종 성향을 어떻게 채워줘야 할지 고민하는 시간을 가져본다.


외부의 시선과 관심이 부담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그것을 즐기는 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진정한 관종의 자세를 느낀다. 내 아이는 관심을 먹고 자라는 사람이기에 오늘도 사소한 것도 일부러 다른 점을 찾아보고 관심을 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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