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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아 Jun 20. 2024

알래스카와 동화되는 방법

나는 알래스카에서 죽었다, 호시노 미치오

 그리스 로마 신화로 대표되는 옛이야기는 인간의 욕망을 반영한 허무맹랑한 과거의 이야기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문자가 발명되기 전 인간의 유일한 유희이자 오락거리로 씨족이나 부족끼리 장작불에 동그랗게 둘러앉아 마을의 가장 나이 많은 어른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으며 끊임없는 상상의 세계로 들어가는 열쇠가 되어 주었을 것이다.


 신화의 증인이자 스토리텔러로 사람들의 궁금을 유발하며 신화의 세계로 인도했던 그들의 이야기는 세상의 기원과 인간의 탄생, 전쟁, 부족의 역사 등 수많은 소재가 담긴 흥미로운 이야기이자 역사의 전개였다. 민족마다 소중히 전해 내려오는 건국 신화를 보더라도 참 비슷한 점이 많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한민족이 세운 나라의 신화만 해도 천손 신화(하늘 신의 자손)와 난생 신화(알에서 태어난 신성한 사람)가 대표적인 주류를 이루는데 우리나라 인근의 나라뿐만 아니라 북유럽의 신화 이야기와 비교해 보아도 유사점이 많다. 특히 하늘의 전령으로 등장하는 신성한 새는 한민족의 경우는 발이 세 개 달린 삼족오이며 알래스카 원주민은  큰까마귀가 세상의 창조주이자 알래스카의 주인이라고 믿고 있다.



 알래스카 곳곳에서 발견되는 큰까마귀 형상의 유물과 문양은 아직도 알래스카의 신성한 이야기로 전해 내려오고 있으며, 현대화된 젊은 층은 오래되고 잊힌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오랜 시간 알래스카의 자연을 누리며 살아왔던 선주민들에게는 종교와 신념 이상의 것으로 알래스카의 모든 것이자 자연이라고 믿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믿음이 잘못된 것이거나 거짓된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문화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 다른 것일 뿐 틀린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알래스카만의 특별한 환경 속에서 배링 해를 지나 시베리아에서 알래스카로 이주한 몽골로이드의 꿈과 생존의 투쟁이 담긴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몽골로이드의 한 분파인 일본인, 호시노 미치오는 자신의 조국을 떠나 큰까마귀 신화가 살아 있는 알래스카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놓는다.


일 년 내내 땅이 녹지 않아 나무가 뿌리내리기 힘든  툰드라 지대에 정착한 배링 해를 건넌 사람들은 곰과 늑대, 순록, 고래 등과 생존 경쟁을 벌이며 큰까마귀 후손으로 살아왔다. 특히 큰까마귀 씨족 중 가장 큰 집단을 이루는 곰 씨족은 '사자의 노래'를 입에서 입으로, 귀에서 귀로 전해 듣고 부르면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이어왔다.



 자신들의 정체성이 알래스카의 자연 속에서 살고 있는 곰이자 고래이자 카리부였으며 그들이 부족의 모든 것이며 동시에 부족을 상징하는 토템(Totem)이었다. 토템 속에 녹아 있는 그들의 존경심과 신앙심이 생존의 문제를 넘어 알래스카의 자연과 동화되기를 원했고, 지금도 척박한 알래스카 땅 위에서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삶을 이어가고 있다.


 그들은 매서운 알래스카의 추위를 거부하지 않고 추위와 함께 사는 방법을 찾고자 노력하였고, 자연의 순리에 따라 알래스카 자연의 법도를 지키며 살았다. 자연을 거스르는 것이 아닌 자연을 사랑하며 자연에서 얻으면 자연에 돌려주는 것이 당연하다고 느끼는 자연의 구성원으로 그들 스스로가 작은 자연이 되어 거대한 알래스카 자연에 소속되어 살고 있다.


 호시노 미치오는 이런 자연의 순리에 매료되어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알래스카로 찾아와 에스키모의 생활 방식을 직접 체험하며 그들과 동화되기를 원했다. 단순히 에스키모와 동화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알래스카에 살고 있는 카리부와 그리즐리, 고래를 연구하고 이해하며 그들과도 동화되기를 원했고 동화된 삶을 살았다.

 


 한 장의 편지로부터 시작된 호시노 미치오의 알래스카 사랑은 아쉽게도 알래스카에서 끝날 수 없었다. 알래스카의 대자연을 너무나도 사랑한 그는 알래스카는 아니지만 배링 해를 사이에 두고 알래스카와 똑 닮은 캄차카반도의 쿠릴 호수에서 그의 마지막 지구 여행이 끝났다. 그것도 그가 그토록 사랑했던 곰의 습격을 받아 곰의 세계로 돌아간 것이다.


 알래스카 곰과 동화되기를 원했던 호시노 미치오는 진정 곰을 사랑했다. 너무나도 짧은 알래스카의 여름 동안 엄마 곰과 아기 곰의 여행을 사진으로 담고 글로 표현하면서 인간의 모성애를 보았던 그였기에 누구보다 곰을 잘 알았을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그의 죽음을 아쉬워했지만 정작 그는 자신을 죽인 곰을 원망하거나 미워하지 않고 웃으며 곰의 손을 잡고 곰의 세계로 들어갔을 것이 호시노 미치오가 선택한 알래스카와 동화되는 방법이다.


나는 알래스카에서 죽었다 / 호시노 미치오 / 다반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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