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김신지
시간이라는 유한한 자원 앞에서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 부자나 빈자나 노년이나 청년에게도 모두 동일하게 하루 24시간이 주어지며, 최선을 다한다 해도 25시간이 주어지지 않는다. 또한 아무리 많은 돈을 지불한다 하더라도, 이 세상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는 막강한 권력이 있다 하더라도 시간을 더 얻을 수는 없다.
시간은 한 번 주어지면 다시 되돌릴 수 없다. 내가 아껴 쓴 시간을 적립할 수 없고, 시간을 저장할 수 없기에 시간이란 자원은 주어진 순간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면 다시는 누릴 수 없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미리 시간을 당겨 쓸 수도 없으니 제때를 누리지 못하면 시간은 그저 말없이 흘러갈 뿐이다.
인간이 오래전부터 시간에 대해 궁금증을 가지며 언제부터 시간을 측정했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시간을 알기 위해 노력해 왔다. 이런 노력의 흔적이 해 시계와 자격루와 같은 물시계, 천문학의 발전으로 만들어진 달력 등이 있다. 문명에 따라 차이는 있었지만 시계와 달력은 시간을 알려고 하는 인간의 궁금증이 반영된 노력의 흔적임은 분명하다.
속절없이 흘러가는 시간에 대한 한탄으로 “가는 세월, 그 누구가 잡을 수가 있나요“라는 노래 가사처럼 시간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흐른다. 군 복무를 하는 장병들이 흔히 남은 복부 시간을 빗대어 눈을 감고 보이는 것이 막 입대한 신병의 군 생활이라는 농담과 함께 국방부 시계는 거꾸로 놓아도 돌아간다는 말처럼 시간은 어떠한 불가항력적인 일이 생긴다 한들 시간은 반드시 흐른다.
인간이 시계를 발명했기에 시간을 눈으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시간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시냇물은 흐르면 그 흔적이라도 남지만 시간은 흘러도 그 흔적이나 자취를 찾을 수 없다. 시간이 눈에 보이지도 않지만, 시간의 그 어떤 흔적이나 자취도 눈에 보이지 않기에 시간을 대하는 자세가 더 신중하고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다.
이런 시간은 값없이 누구에게나 주어진다는 점에서 이중성을 가진다. 부자가 빈자나 노인이나 청년이나 누구나 공짜로 시간을 누릴 수 있다. 시간을 누린다고 값을 지불하는 일을 없지만 <인 타임>이라는 영화에서는 시간이 곧 권력이자 재력이며, 모든 것을 결정하는 기준이 되는 이야기를 보면서 시간이 권력과 재력의 수간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상상을 했다.
먼 미래에 영화 속의 내용처럼 시간이 권력이자 재력이 되는 날이 올 수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최악의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값없이 누리는 시간이 누군가의 소유가 되고, 거래의 수단이 된다는 것은 정말 끔찍한 현실이 될 것이다. 시간은 지금처럼 누구에게나 공평하고 값없이 주어져야 본래의 가치가 유지될 수 있다.
특히 일상의 사소함이 넘치는 시간은 나만이 누릴 수 있는 축복이다. 나의 일상은 너무나 평범해서 어디에 내세울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내 인생의 단편이자 내가 살아온 흔적으로 내가 사용한 시간의 자취이다. 내가 사용한 시간이 쌓여 인생을 만들고, 인생이 나를 대변해 주는 기준이 되어 나라는 사람을 알려준다.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은 나에게 시간이 없다는 말은 핑계에 불가하다. 기본적으로 시간은 없을 수 없다. 보이지 않지만 시간은 분명 존재하며, 내가 시간을 어떤 식으로 사용하느냐에 따라 시간은 달라질 것이다. 특히 하루 24시간, 86,400초의 귀중한 자산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내 인생은 달라질 것이다.
다른 인생을 살고 싶다면 시간을 잘 사용해야 한다. ‘잘’이란 말의 기준이 애매모호하지만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시간을 후회 없도록 사용하는 것이 시간을 잘 사용하는 표본이 될 것이다. 하지만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명목으로 일상을 소중함을 놓치고 산다면 결코 시간을 잘 사용한다고 말하기 어려울 것이다.
나의 시간은 나만이 누릴 수 있는 축복이다. 나에게 허락된 축복을 온전히 누리며, 하루의 특별함과 일상의 사소함이 교차하는 나만의 시간을 평범함과 특별함을 잘 혼합하여 나를 나타낼 수 있는 흔적으로 만들려 한다. 인생의 사소함이 특별함이 되는 순간을 누리며, The best가 아닌 The only가 될 수 있도록 나만의 시간을 투자해서 나만의 가치를 생산할 것이다.
시간을 만들 수는 없지만 시간의 가치를 생산하는 존재가 되어, 삶을 사는데 시간을 사용할 것이다. 진정 의미와 가치를 만드는 것은 나의 노력 여하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나는 값없이 나게 주어진 시간을 있는 모습 그대로 온전히 누리고 싶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멍 때리고 싶은 순간마저도 나의 인생이며, 치열하게 무엇인가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순간도 나의 시간이며 내 인생의 단편이다. 나는 시간의 단편을 연결하는 존재로 나의 모든 시간의 단편을 연결하며 나만의 가치를 만들며 삶의 여백을 사랑할 것이다.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 김신지 / 잠비 / 2023
작가의 다른 책
1. 제철 행복
https://brunch.co.kr/@ilikebook/803
2. 기록하기로 했습니다
https://brunch.co.kr/@ilikebook/809
3. 평일도 인생이니까
https://brunch.co.kr/@ilikebook/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