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의 자리에서 쉬는 것을 기꺼이 허락하는 공간
여행에서 만난 일상
소박한 아침엔,
킨포크 Kinfolk
혼자라면 작은 테이블이 있어서,
책을 읽기 좋은 조용한 동네 카페.
사진 찍기 좋아하는 너와는
심플한 배경에 조명이 예쁜 연남동 카페
호기심 많은 너와는 신기한 소품으로 가득한
편집샵이 함께 있는 가로수길 카페
커피보다 맥주를 즐기는 너와는
러프한 인테리어가 감각적인 성수동 카페
그리고 오늘처럼
아침 일찍 책을 한 권 들고 나선 날엔
윌리엄스 버그, 카페 킨포크 Kinfolk.
쏟아져 들어오는 햇살이 내려앉은
폭신한 소파에서 책을 읽다가 스르륵 잠이 들었다.
지금 막 꺼내어진 머핀은 가벼운 배고픔을 채우기에 충분했고, 천장까지 울려퍼지는 경쾌한 리듬은 나른함을 깨우기에 더할나위 없었다.
앞에 두고 한참을 헤맸다. 카페 같지 않은-창고이거나 빈 건물인 줄 알았다- 외관에 그대로 지나치고 다시 주변을 맴돌고 나서야 찾은 Kinfolk. 뒤늦게 발견하고 나서야 반갑게 문고리를 잡아당겼으나, 웬걸 열리지 않는다. 문 앞에 붙은 메시지를 읽어 보니 지금이 문을 여는 시간 즈음인 것은 맞지만, 어쩐지 정해진 시간에 맞게 문을 여는 곳을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생김새로만 판단을 하면 안 되겠지만.
넓고 쾌적해서 음악을 듣기에도, 머무르기에도 꽤나 좋다는 카페라고 들어왔던 터라 찾아온 것 이기에 허탈함을 감출 수 없었다. 게다가 그 혹은 그녀에게 줄 작은 선물도 갈 곳을 잃었으니까.
Kinfolk. '친척, 친족 등 가까운 사람'이라는 뜻을 가진 영어인 킨포크(kinfolk)는 가까운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며 느리고 여유로운 자연 속의 소박한 삶을 지향하는 현상을 말하는 단어이다.
2011년 미국 포틀랜드에서 작가 화가 사진가 농부 요리사 등 40여 명의 지역주민이 자신들의 일상을 기록하여 창간한 계간지인 킨포크(KINFOLK)가 시발점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이런 삶을 담은 '킨포크 매거진'은 특유의 심플한 스타일과 감각적인 구성으로 지금 한국에서도 가장 매력적인 잡지로 평가받고 있다.
이 매거진이 운영하는 카페는 아니지만, 같은 목적을 가지고 있는 공간의 만남은 꽤나 어울릴 것 같았다. 느리고 여유로운 삶을 담은 매거진처럼, 머무르고 쉬어가는 카페는 한 부분쯤은 닮아있을 테니까. 게다가 카페 테이블에 놓인 몇 권의 책 중 한 권이 한국의 킨포크 매거진이라면 틀림없이 더 매력적인 공간이 될 테니까.
허탈해서 쉽게 떠날 수가 없었다. 문 앞에 붙어있는 메시지만 애꿎게 읽고 또 읽으며 서 있는데, 문 너머 얼핏 사람이 스친다. 깜짝 놀라 문으로 다가가 똑똑똑 급하게 두드리자, 잠시 후 문이 열린다. "조금 늦었어!" 마치 약속한 듯, 반갑게 나를 맞이해주는 그녀. 와! 기다리기를 잘했어. 뭐 사실, 기다리려고 기다린 것은 아니지만. 그녀와 인사를 나누며 카페 안으로 들어갔다.
여기는 윌리엄스버그의 Cafe, Kinfolk.
소박한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곳.
아침과 함께 들어선 오늘의 첫 독자, 아니 손님.
고요한 공간에 음악이 흘러나오자, 금세 2층 천장 꼭대기까지 소리가 울려 퍼진다. 드르륵- 올리자 블라인드 너머 기다리고 있던 햇볕이 깊숙하게 구석진 소파까지 들어온다. 신선한 커피 향이 코 끝을 감돌고, 조금 있으면 우유가 듬뿍 들어간 시원한 라떼를 마시게 될 것이다. 저기 푹신한 소파에서. 그녀에게 킨포크를 선물하고, 매거진 킨포크 그리고 카페 킨포크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그녀는 밤에 열릴 파티에 대해 안내해주었지만, 여행자에게 '다음'이라는 것은 얼마나 아득한 것인지 알기에 슬쩍 미소만 보내주었다.
그때 새로운 손님이 카페로 들어왔고, 그녀는 테이블에 앉아 자연스럽게 커피를 주문한다. 그 모습이 익숙해 보여 단골인가 싶었지만, 그녀 역시 혼자 여행 중이란다. 우린 꼭 아는 사이처럼 자연스럽게 앉았고 근황을 물었다. LA에서 왔다는 그녀는 결혼 앞두고 혼자 여행 중이라고 한다. 노트북을 꺼내 일정을 정리하는 그녀의 곁에 앉았다. 그리고 '지금 막 나온 빵인데 먹을래?' 하며 머핀을 들고 묻는 주방의 그녀까지, 우리는 각자의 역할을 하며 서로의 곁에 머물렀다.
그리고 아주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누다가, 자연스럽게 각자의 공간에 스며들었다.
노트북으로 다음 행선지를 체크하고 주방정리와 손님맞이할 준비를 하는 그녀들 근처에서, 나는 볕이 잘 드는 자리에 앉아 노트를 꺼냈다.
가까운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며 느리고 여유로운 자연 속의 소박한 삶을 지향하는 현상.
삶이 매일 킨포크였으면 좋겠다.
안녕, 건네는 말에 진심이 담겨있고
잘 가, 하는 인사에 아쉬움이 깃들어 있기를.
연락할게, 밥 먹자, 또 보자 주고 받는 말들이
허공에 떠버린 채로 사라지지 않고
일상에 가라앉아, 자국을 만들기를.
가까운 사람들과 어울리는 날들.
사사롭고 소박해서, 일상인 날들.
한 마디를 나눠도 진심인 날들.
서로 다정스럽게 실컷 부대끼다가
각자의 자리에서 쉬는 것을 기꺼이 허락하는 사이.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적당한 거리를 둔 채로.
내 자리 하나쯤 비어있어, 언제 찾아와도 되지만
내가 떠난 자리, 곧 다른 이를 위한 빈자리가 될
여기 이, 공간처럼.
햇볕을 덮고 잠이 든 아침,
흐르는 시간보다 느리게 머물러 있었던
카페, 나만의 공간.
Cafe Kinfolk
주소: 90 Wythe Ave, Brooklyn, NY 11211
영업시간: 오전 9:00~오전 2:00 (금, 토요일은 더 늦게 열고 닫습니다)
연락처: +1 347-799-2946
아마도 뉴욕에서 간 카페 중 가장 컸는데요. 흘러나오는 음악, 각자의 시간을 보내는 사람, 편안한 분위기와 햇살 모든 것이 더할 나위 없었던 공간 입니다. 문을 열자마자 한 시간도 되지 않아 정말 많은 사람들이 왔는데, 왜 그런지 머무는 동안에 알 수 있었답니다. 무엇도 방해하지 않을뿐더러, 테이블 간격도 적당한 머무르기 좋은 카페라고나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