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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일진 Sep 12. 2024

12화: 영혼의 선택

서현의 두 세계

서현은 카페를 나서며 혼란스러운 생각들로 가득 찬 머리를 움켜쥐었다. 방금 그 남자가 했던 말이 계속해서 그녀를 괴롭히고 있었다. 카페 안에서 마주쳤던 그 낯선 남자는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에게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이 세상에 속하지 않아요. 당신의 몸은 병원에 누워 있어요. 당신은 지금 영혼일 뿐입니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서현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어떻게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일까? 그 충격적인 진실이 그녀의 마음을 짓누르며 차가운 현실을 직면하게 만들었다. 그녀는 살아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카페 창문에 비친 자신을 바라보며 서현은 얼어붙은 듯 움직이지 않았다. 반사된 얼굴은 분명 그녀의 것이었지만, 동시에 전혀 다른 사람 같았다. 이젠 몸이 병원에 누워 있다는 사실이 그녀의 머릿속에 깊이 박혔다. 그녀는 더 이상 생명을 지닌 존재가 아니었다.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거지?’     


혼란에 빠진 서현은 무작정 길을 걸었다. 그녀가 살아온 인생의 모든 순간들이, 모든 감정들이 한순간에 무너져내리는 것만 같았다. 한때 꿈 많던 소녀였고, 사랑도 했으며, 목표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 모든 것이 덧없게 느껴졌다. 이미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그녀에게 남은 것은 무엇일까?     

그때였다.     


“서현아…”     


귓가에 들려오는 목소리. 너무도 익숙한 목소리였다. 서현은 발걸음을 멈추고 그 소리에 온 신경을 기울였다. 목소리는 부드럽고 따뜻했다. 그녀가 어릴 때 느꼈던 그 따스함이 물밀듯 밀려왔다. 눈을 감아도 알 수 있었다. 아빠였다. 돌아가신 아빠의 목소리였다.  

   

“사랑하는 우리 딸. 많이 무서웠지? 괜찮아~ 아빠가 옆에 있어.”     


서현은 아빠의 목소리를 듣고도 믿기지 않았다. 그가 정말 이곳에 있는 걸까? 아니면 그저 꿈일까? 그러나 목소리는 계속해서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아빠의 목소리는 너무도 선명하고 따뜻했다. 마치 오랜 시간 동안 그녀를 기다렸다는 듯이, 서현을 부드럽게 감싸 안았다.

    

“아빠.... 왜 이제 왔어. 나 너무 무서웠단 말이야. 아빠.... 너무 보고 싶었어... 아빠...”    

      

“그래. 그래. 우리 딸. 아빠가 지금부터 아주 중요한 이야기를 할 거야. 그러니 잘 들어줄 수 있을까?”     


서현은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한 채 고개만 끄덕였다.      


“서현아 아직 너에겐 시간이 있단다. 하지만 지금부터는 너의 선택에 달려있어. 시간이 별로 남아 있지 않아. 얼마나 허락될지 아무도 몰라. 너는 곧 이곳을 떠나게 될지도 모르거든. 아빠는 이곳에서 수많은 영혼들을 만났어, 그리고 그들에게 똑같은 이야기를 해줬단다. 하지만 너에게는 좀 더 특별한 이야기를 해주고 싶구나. 네 선택이 모든 걸 결정하게 될 거야, 서현아. 이제는 네가 진정으로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행동해야 해.”     


서현의 마음속에 아빠의 말이 깊이 스며들었다. 그가 말하는 선택. 그녀는 이곳에서 떠나야 하는지, 아니면 다시 삶으로 돌아가야 하는지 선택해야 한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마음속에서는 여전히 혼란이 가득했다. 그녀는 무엇을 원하는 걸까? 삶으로 돌아가는 것이 맞는지, 아니면 이대로 모든 것을 내려놓고 떠나는 것이 맞는지.     


“네가 살아온 삶을 되짚어봐. 그 안에는 아름다운 시간도 있었지만, 후회도 있었을 거야. 그 후회들을 용서해야만 해, 그리고 네가 받은 고통의 시간들이 너에게 준 의미를 찾아야 한단다. 왜 너에게 그런 시간들이 왔는지. 그래야 네가 다시 깨끗한 마음으로 삶을 살아갈 수 있단다. 과거와의 화해가 필요해. 내가 너를 도와줄 그 아이를 다시 보내주마.”   

  

서현은 아빠의 말이 무겁게 느껴졌다. 그녀는 삶에서 많은 후회를 해왔다. 선택하지 못했던 것들, 포기했던 꿈들, 사랑했던 사람들을 떠나보냈던 기억들. 그 모든 것이 무겁게 가슴을 짓눌렀다. 그러나 아빠는 그녀에게 후회의 시간에 대한 용서와 공통의 시간들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제 서현은 이 어려운 과제를 해결하고 생의 세계로 돌아가는 선택을 할지 아니면 자연스럽게 영의 세계에서 사라질지를 선택하는 기로에 있었다.      


“내 딸 서현아, 아빠는 너를 믿어. 네가 어떤 선택을 하건 나는 항상 네 옆에 있을 거야. 넌 단 한순간도 혼자였던 적이 없단다.”     


비록 보이지 않더라도, 그 따스한 존재는 늘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서현의 마음속에서 깊이 얽혀 있던 또 다른 감정들이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다. 그녀는 그동안 자신의 고통과 후회를 혼자 짊어지며 살았다. 그러나 이제, 아빠의 말은 그녀를 안정시켰다. 더 이상 혼자가 아니었다는 사실이 서현에게 위안이 되었다. 아빠는 그녀를 믿고 있었다. 그녀가 어떤 선택을 하건, 그는 언제나 서현의 곁에 있을 것이었다.     


“우리 서현이 참 예쁘게 컸구나. 고맙고 대견하다.”     


아빠의 목소리는 한층 더 부드러워졌다. 서현은 눈을 감고 그 말을 마음속 깊이 새겼다. 아빠가 그녀에게 전하는 마지막 메시지였다. 어린 시절 아빠의 사랑 속에서 자라났던 그 기억들이 떠올랐다. 아빠는 그녀를 사랑했고, 지금도 여전히 사랑하고 있었다. 서현은 그 사랑을 다시 한번 느끼며, 마음속에 따스한 빛이 퍼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서현은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이제 그녀는 자신을 용서하고, 과거와 화해할 준비가 되었다. 삶은 후회로 가득할 수 있지만, 그 후회를 받아들이고 앞으로 나아갈 힘이 그녀에게는 있었다. 아빠의 목소리는 서현을 인도했고, 이제 서현은 삶으로 돌아갈 준비가 되어 있었다.     


"내가 원하는 삶을 찾을 거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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