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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일진 Oct 01. 2024

17화: 어둠을 지나

다시 살아갈 시간

어린 서현은 어른 서현의 손을 꼭 쥔 채 놓지 않았다. 그 작은 손에는 따뜻함과 위로가 담겨 있었고, 그것이 지금의 서현에게는 무한한 안도감을 주었다. 오랜 시간 동안 감정의 소용돌이에 휩싸여 있었던 서현은 처음으로 마음이 차분해지고 있음을 느꼈다.     


"아빠는 네가 삶으로 돌아가려면, 네가 살아온 삶을 되짚어봐야 한다고 하셨었지? 아빠가 말했던 후회와 고통, 그리고 아름다운 순간들에 대해 돌아보는 시간을 이겨냈구나, 서현아."


어린 서현의 목소리는 다정하고 부드러웠다. 그녀의 말이 끝나자마자, 서현의 눈가에 고여 있던 눈물이 결국 터져 나왔다.  어른 서현은 한참을 흐느껴 울었다. 오랫동안 억눌렀던 감정들이 폭발하듯 쏟아져 나왔다. 어린 서현은 한마디 말없이 그 울음을 지켜보며 서현의 등을 토닥였다. 그 작고 따스한 손길이 어른 서현을 감싸 안고 있었다. 어린 서현은 그녀를 더욱 꼭 안으며, 그동안 참아왔던 서현의 고통을 모두 흡수하려는 듯했다.     

서현은 가슴속 깊이 숨겨두었던 감정들을 마침내 쏟아낼 수 있었다. 준호의 배신, 직장에서의 왕따, 그리고 자살 시도와 같은 고통의 순간들이 그녀를 계속해서 억눌렀고, 자신을 힘들게 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 모든 순간들이 과거로 흘러가고 있었다. 울음을 멈추지 않는 서현에게 어린 서현은 기다림으로써 그녀가 스스로 이겨낼 시간을 주었다.     


잠시 후, 어린 서현은 어른 서현의 눈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그 미소 속에는 무한한 격려와 이해가 담겨 있었다.


"넌 결국 버텨냈어. 지금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도 내가 그때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야."

    

어른 서현은 눈물을 닦으며, 그 말을 곱씹었다. 그렇다. 그때 그녀는 끝내 포기하지 않았다. 자살을 시도했던 그날, 그녀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었지만, 결국 살아남았다. 그리고 오늘 이 순간까지도 그녀는 버텨왔던 것이다. 그 순간 서현은 자신이 겪은 모든 고통들이 그녀를 짓누르는 무거운 짐이 아니라, 지탱해 준 버팀목이었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어린 서현은 어른 서현의 손을 잡고 다시 말했다.


"그래, 서현아. 넌 충분히 잘 해냈어. 그 누구도 네가 겪은 고통을 겪지 않고 쉽게 살아갈 수 없었을 거야. 그런데도 너는 지금 여기 있어. 그게 바로 네가 이겨낸 증거야."

    

서현은 어린 서현의 말을 들으며, 그동안 자신을 괴롭혔던 후회의 순간들을 떠올렸다. 준호와의 실패한 사랑, 직장에서의 외로움과 배제, 그리고 자살 시도. 그때마다 서현은 자신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더 강해지지 못했기 때문에, 자신이 더 나은 선택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거라고 자책해 왔다. 그러나 지금 그녀는 깨닫고 있었다. 그것이 자신의 잘못이 아니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녀는 그 모든 경험 속에서 결국 살아남았고, 그로 인해 더 단단해졌다는 사실을.

    

서현은 눈을 감으며 다시 한번 그 순간들을 떠올렸다. 이제는 더 이상 그 기억들이 그녀를 억누르지 않았다. 과거의 상처들이 그녀를 덮치던 무게는 사라졌다. 오히려 그 순간들이 서현에게 힘을 주었고, 더 강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었음을 느꼈다.

    

어린 서현은 어른 서현의 눈을 바라보며 다시 한번 웃었다.


"이제 너는 스스로를 용서할 수 있지? 네가 겪었던 모든 순간들이 너에게 의미가 있었음을 받아들일 수 있을 거야. 너는 충분히 잘했어."

    

서현은 조용히 눈을 떴다. 어린 서현의 얼굴을 다시 마주했을 때, 그녀는 그동안 자신이 얼마나 많은 고통 속에서 헤매었는지를 깨달았다. 그러나 그 고통 속에서 자신이 잃어버린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오히려 그 고통을 이겨내며 서현은 자신을 더 잘 이해하게 되었고, 더 나은 사람으로 성장해 왔다.    

 

"그래, 나는 내가 충분히 잘해왔다는 걸 이제 알겠어."


서현은 목소리를 내며 말했다.


"후회와 고통 속에서 나는 더 강해졌고, 그것이 나를 이 자리까지 오게 만들었어."

     

어린 서현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따뜻한 미소를 지었다.


"맞아, 서현아. 이제 너는 그 모든 경험을 받아들이고 스스로를 용서할 수 있어. 그리고 그것이 바로 네가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는 이유야."

    

서현은 어린 서현의 말을 들으며 깊이 숨을 들이쉬었다. 그동안 마음속에서 그녀를 억누르고 있던 무거운 짐이 서서히 풀려나가는 기분이었다. 모든 후회와 고통이 그녀를 억눌렀지만, 결국 그 고통 속에서 그녀는 강해졌다. 그리고 이제, 그 모든 고통은 더 이상 그녀의 발목을 잡지 않았다.   

  

어린 서현은 마지막으로 서현의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이제 너는 돌아갈 수 있는 선택을 할 자격이 생겼어. 너는 너 자신을 용서했고, 과거와 화해했으니까. 이제 너는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어."


서현은 그 말을 듣고, 마음속 깊은 곳에서 안도감을 느꼈다. 그녀는 스스로와 화해했고, 이제는 새로운 출발을 할 준비가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동안 견뎌왔던 모든 고통과 후회는 이제 그녀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고, 서현은 그 힘으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이제 돌아갈 시간이야."


어린 서현이 웃으며 말했다. 그 말에는 기쁨과 함께 묘한 슬픔이 담겨 있었다. 비록 헤어질 시간이 되었지만, 어린 서현은 서현이 삶으로 돌아가 다시 살 수 있게 된 것이 무엇보다도 기뻤다. 그러나 어린 서현의 눈에서도 뜨겁게 눈물이 흘렀다. 이별의 순간이었지만, 그 눈물은 안도와 기쁨의 눈물이었다.     

서현은 잠시 동안 어린 서현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자신을 버텨준 과거의 어린 시절이었다. 그리고 이제, 그 어린 서현은 자신을 떠나보낼 준비가 된 것이었다. 서현은 눈가에 눈물이 고인 채,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고마워. 네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어."


서현은 마음속으로 속삭였다.     

어린 서현은 다시 한번 환하게 미소 지으며 서현의 손을 놓았다. 그 순간, 서현의 눈앞에 펼쳐진 어둠이 서서히 밝아지기 시작했다. 서현은 이제 삶으로 돌아갈 준비가 완벽하게 되어 있었다. 어둠이 걷히고 빛이 점점 더 밝아지면서, 서현의 눈앞에는 다시 생의 세계가 보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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