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떡 직업을 찾는 모험 ep.15
백수는 그냥 탱자탱자 노는 게 할 일 아니야?
이렇게 생각할 수 있지만 백수에게도 루틴이 필요하다.
루틴이 망가질수록 신체적, 심리적 건강이 쉽게 깨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일을 그만두면 회사를 다니며 안 좋아졌던 건강이 자연스럽게 좋아질 줄 알았는데
그냥 쉬기만 한다고 건강이 좋아지지는 않았다.
여유를 가지며 나에게 온전히 집중하고 내 삶의 방향을 재조정하고 싶어서 일을 그만둔 거지, 아무렇게나 살려고 일을 그만둔 게 아니니까 노력을 해야만 했다.
지난 에피소드에서 말했던 것처럼 나는 아무런 일도 하지 않을 때 더 우울해하는 편이었다.
우울했던 것뿐만 아니라 굳이 출근을 하지 않아도 되니 잠도 아무 때나 자고 아무 때나 일어났다.
그런 하루들이 쌓이니 잠을 깊게 못 자는 하루가 허다하게 늘어났고, 한심한 하루를 보냈다는 생각에 더 우울해졌다.
카페 알바 등 내가 추구하는 커리어에 큰 연관이 없는 알바라도 하는 게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아무리 우울하고 기운이 없더라고 출근 시간이 되면 출근을 하게 되고, 또 출근을 하게 되면 밥 먹는 시간에 밥도 먹게 되고 일을 하며 움직이게 된다.
집에서 가만히 있는 게 사람에게 생각보다 정말 독이 된다는 걸 백수가 되고 나서 뼈저리게 느꼈다.
쉰다는 이유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점점 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리는 것 같다.
하지만 생각보다 혼자서 일상의 루틴을 지키는 일은 어렵다.
일상의 루틴이란 보통 아침에 일어나기, 이불 정리하기, 제시간에 건강한 끼니 챙겨 먹기, 하루에 한 번씩 샤워하기 등이 있을 텐데, 별 것 아닌 것 같아 보여서 못 지키고 나면 새삼 내가 더 한심하게 느껴진다.
회사에 다닐 땐 억지로라도 아침에 눈을 떠서 스트레칭을 하고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출근했다가, 저녁에는 돌아와 저녁을 먹고 잠을 자곤 했다.
백수가 된 지금은 나 말고는 내 루틴을 챙겨주는 사람이 없다.
나도 처음에는 혼자서도 잘할 수 있을 줄 알았다.
퇴사 직후 초반에는 아침 8시에 일어나 스트레칭을 한 후 여유롭게 차 한 잔을 마셨다.
하지만 알바도 그만두고 나니 점점 일어나는 시간이 1시간씩 뒤로 늦춰지면서 10시를 넘겨서 일어나는 날이 잦아졌다.
그러던 와중에 니트생활자 단체에서 하는 니트 컴퍼니를 모집한다는 공지를 발견했다.
이전 에피소드에서 한 번 소개했던 니트 컴퍼니에서는 보통 세 달 정도 기간을 잡고 평일 동안 매일 자기가 정한 업무를 실행했는지 인증 글을 남긴다.
출근은 9시, 퇴근인 6시로 채팅방에 출퇴근을 했는지 꼭 기록해야 하고, 기록하지 않으면 팀장님들이 어서 출퇴근하라며 재촉해 주신다.
전에 첫 번째 회사에서 해고를 당한 후 참여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니트 컴퍼니 참여 기간 중간에 두 번째 회사에 취직하게 돼서 제대로 참여하지 못해 아쉬움이 남아 있었다.
이번에는 이벤트 성으로 한 달 정도만 한다는 공지를 듣고 내 루틴을 되찾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아 얼른 신청했다.
막상 시작일이 다가오니 귀찮아져서 괜히 한다고 했나 후회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참여 기간이 약 일주일 정도 남았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일단 지르길 잘한 것 같다.
오후에 낮잠을 자더라도 아침 9시에는 꼭 일어나서 출근 기록을 하니 새벽에 늦게 자더라도 저절로 8시 반에서 9시가 되면 눈이 떠졌다.
또, 나는 매일의 업무를 '그림 한 장이라도 그리기'로 했는데 그러다 보니 정말 그림을 그리기 싫은 날에도 겨우 남아있는 의욕을 쥐어 짜내가며 한 장이라도 그리게 되었다.
사람이란 게 처음 시작이 어렵지, 한 장을 그리고 나면 두 번째 장은 더 쉽게 그릴 수 있었다.
혼자서는 루틴을 지키기 어려우셨던 분들은 니트생활자의 니트 컴퍼니 프로젝트를 해보시기를 추천한다.
니트 컴퍼니가 아니더라도 니트생활자의 홈페이지인 '닛커넥트'에 들어가 보면 비슷한 시기를 겪는 다른 분들이 진행하시는 워크숍에도 참여할 수 있어서 외출할 기회를 하나 더 만들 수 있다.
어쩌다 보니 니트 컴퍼니 홍보 대사처럼 글을 쓰게 되었는데 그만큼 도움이 되어서 꼭 소개를 하고 싶었다.
니트생활자가 아니더라도 찾아보면 비슷한 커뮤니티들이 몇 개 더 있다고 들었다.
나도 좀 더 찾게 되면 브런치에 제대로 목록을 소개해드리고 싶다.
퇴사를 하고 쉬고 있다고 해서 한심한 사람이 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아무런 일도 하지 않는 내가 나를 한심하게 느낄 순 있다.
그러기 위해선 별다른 계획이 없더라도 아침 9시에 일어나기 등 나만을 위한 건강한 루틴을 한 가지라도 꾸준히 지켜보려고 노력하는 게 중요한 것 같다.
다음 에피소드에서는 루틴 안에서 휴식을 취할 때 어떻게 휴식을 취해야 잘 쉬었다고 느낄 수 있을지에 대한 글을 써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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