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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아 May 07. 2020

멀리 있는 자식은 자식도 아니다.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

5월은 가정의 달,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을 지나고 있다. 우린 아직 '어버이 공경'에 대한 개념이 없는 어린아이 둘을 데리고 있는 어버이이며, 친정부모님과 시부모님까지 어른 넷을 부모로 두고 있는 자녀이다. 아이들은 어린이라기엔 아직 어린 아기들이지만 그래도 어른들께서는 양가 첫 손자 손녀인 우리 아이들에게 꼭 '어린이날'을 기념해주셔야 했다. 어른들께서 우리 집 어린이들을 위해 선물을 보내주시고 (정확히 말하자면 선물을 지정해 사주라며 엄마 아빠 계좌로 입금을 해주시고) 화상 통화로 신나게 축하해주셨다. 비행기를 타고 직항으로 와도 14시간이 넘는 먼 곳에 왔지만, 인터넷의 발달로 서로가 서로에게 관심만 있으면 뭐든 보낼 수 있게 되었다. 멀지만 이젠 참 가까운 미국이다. 감사한 시대를 살고 있다.


시댁에서는 아이들 예쁜 봄 옷이라도 사 입히라 하셨고, 친정 엄마는 요새 한참 기타 치는 흉내를 내는 딸을 보고 우쿨렐레 같은 작은 기타를 사주라 하시고, 아빠는 킥보드를 사주면 밖에서 신나게 탈 것 같다 하신다. 입금해주신 돈으로 아이들 선물을 살 때는 내 선물을 고르듯 설레서 이것저것 한참 들여다 보고 쇼핑을 한다. 아 이거 사주면 우리 아기가 얼마나 좋아할까. 이것도 사주고 싶고 저것도 사주고 싶다. 사실 옷은 넘치게 있는데 또 예쁜 옷을 보면 사 입히고 싶고, 신발장에도 지네만큼 신발이 있지만 또 좋아하는 캐릭터가 그려진 신발을 보니 신기고 싶다. 버튼을 누르면 여러 음악 소리가 나는 놀잇감 기타가 좋을까 작은 악기인 우쿨렐레 같은 나무 기타가 좋을까. 킥보드는 위험하려나, 세발자전거를 사줄까. 한참을 들여다보고 후기를 하나하나 읽어본다. 한참을 고심하고 고르는데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우리 아기가 선물을 받아 들고 신나 할 모습을 생각하면 마음이 두근거린다. 연애할 때도 이렇게 선물을 정성껏 고르진 않았는데. 깊은 사랑에 빠진 나는 아이들에게 '어린이날'이라는 선물할 핑계가 생겨 철없이 기쁠 뿐이다.


그런데 돌아서면 어버이날이다.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은 왜 이렇게 가까울까. 이렇게 받은 것은 많은데 막상 드리려니 어렵다. 양가에 다시 재입금을 하려니 너무 성의가 없어 보인다. 우리도 뭔가 필요한 것을 보내드리고 싶은데 떨어져 있다 보니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다행히 한국에 아직 남겨둔 은행 계좌와 카드가 있어서 인터넷 쇼핑으로 댁까지 선물을 보내드릴 수는 있었다. 화장품, 건강식품, 옷, 신발, 면도기, 향수, 안마기 하다 못해 꽃 배달이라도... 이것저것 생각해보다가 폰을 내려놓는다. 불효자식이 따로 없다. 어머님 아버님을 떠올리려니 자꾸 "다 있어. 필요한 거 하나도 없다. 아무것도 하지 마라." 하시던 말씀이 머리를 맴돈다. 결국 한국에 남아 있는 형제들에게 입금을 한다. 남동생이 심드렁하게 이게 뭐냐고 묻는다. "엄마 아빠 모시고 좋은 데 가서 맛있는 거 사드려라. 어버이날인데 같이 못 있어서 미안하다." 했다. 동생은 알겠다며 주말에 같이 부모님 폰을 바꿔드리러 가기로 했다고 한다. "벌써? 바꾸신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하고 물으니 벌써 그게 3년 전이란다. 저장 용량이 자꾸 부족하다고 해서 불편하다 하셨단다. 아휴 세상 무심한 딸.


시어머님께서 늘 '멀리 있는 자식은 자식도 아니다.' 하셨는데 나와보니 그 의미를 알겠다. 무심해지고 싶지 않았는데. 아이들 키우느라 바쁘고, 여기서 집을 마련하느라 바쁘고, 재택근무를 시작해서 정신없고, 주중은 주중이라 정신이 없고, 주말은 주말이라 외출을 하고 이래 저래 시차를 계산하다 보니 통화도 어렵다. 이민 오며 결심한 '하루에 한 번 전화드리는 일'도 점점 뜸해지고 만다. 아니 영상 통화도 나름 성의껏 드리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생각해보니 통화하는 내내 우리 아이들만 보여주기 바빴다. 아기들이 할머니 할아버지를 보며 웃으면 따라 웃고, 노래하면 손뼉 치고, 아기들이 사랑해요 하면 '에구 우리 아기 만지고 싶어. 할머니가 안아주고 싶어'하신다. 그렇게 정신없이 아기들 보여 드리고 우리 사는 이야기만 급히 전달한다. 그리고 끊기 직전에 "엄마 아빠는 별 일 없지?" 하면 "응, 우린 별 일 없어" 이것이 내가 엄마 아빠에 대해 아는 모든 것이었구나 싶다.


시골에 할머니는 잘 계시는지... 휴대폰도 없는 우리 할머니는 엄마 아빠가 찾아뵈었을 때나 시차가 맞으면 겨우 얼굴을 뵐 수 있을까 말까다. 와서 아직 한 번밖에 통화를 못했다. 할머니 댁 집 전화로 전화를 드렸더니 내 목소리를 듣자마자 그 멀리서 어떻게 전화를 했냐 하시며 얼마나 놀라고 반가워하시던지. 그 떨리시던 목소리가 생생하다. 그리고 바로 전화비 많이 든다며 자꾸 끊으라 하시는 할머니. 인터넷 전화라 돈이 안 든다 해도 이해를 못하신다. 정말 이번 어버이날에는 할머니 댁에 전화 한 통 꼭 드려야겠다.


그래도 부모님들 가까이 동생이 있어서, 시동생네가 있어서 참 다행이다. 어린이날 우리 아가들을 위해 한 바탕 선물 대잔치 그리고 양가 어르신들을 위해 한국에 있는 형제들에게 재입금. 그렇게 의무를 다하고 나니 마음이 놓이면서도 묘하게 헛헛하다. 정말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나 보다. 보고 싶다 우리 엄마 우리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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