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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문약방 Oct 24. 2022

장르를 바꿔보자

-만성피로에 정세랑의 『보건교사 안은영』을 처방합니다

  1. 워킹맘의 만성피로, SF판타지 아니면 답이 없다

  만성피로와 어깨 결림에 대한 처방전을 의뢰한 곰도리(닉네임)는 대안학교 과학교사이고, 아직은 엄마의 손이 많이 가는 초등학생 남매를 기르고 있다. 하루가 24시간이 아니라 48시간이거나, 육아도우미 AI가 개발되어 상용화되거나, 슈퍼 히어로급 초능력을 장착하지 않는다면, 이러한 조건에 놓인 사람이 만성피로를 호소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SF 판타지가 아니면 현실에서는 답이 없다. 그래서일까? 곰도리와의 만남은 주객이 전도되어 그의 고충에 대한 의논보다 내 흑역사에 대한 하소연으로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곰도리는 학생들에게 인기 많은 선생님이라는 소문대로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었다. 

  그날 나는 아이 둘을 낳고 뒤늦게 대학원에 진학했던 삼십대의 날들이 떠올랐다. 말 그대로 석사과정생은 ‘과정’에 있는 사람이니, 용빼는 재주가 있지 않고는 자료검토든 글쓰기든 잘해낼 수가 없다. 그런데 교수님들은 가르쳐주는 것 없이 야단만 쳤고, 강의시간은 단체로 기합을 받는 시간 같았다. 석사과정 동안에는 아무리 정신을 바짝 차리고 준비해도, 공부에 대한 안목과 요령이 없기 때문에 ‘뻘짓’을 할 수밖에 없다. 그 무수한 헛발질을 거쳐 공부하는 사람이 되어가는 것인데, 나는 자책과 자학 없이 이 과정을 통과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당시 유치원에 다니던 아이들은 엄마가 바쁜 때를 귀신 같이 알고 다치거나 아팠다. 그 시절 나는 조금만 삐끗해도 와르르 무너질 것 같은, 긴장감 넘치는 일상을 감당하지 못해 허덕였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어깨가 뭉치는 것 같다. 

  곰도리는 자신을 ‘평가’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학생들을 평가할 때마다 자신이 그러한 자격이 있는 사람인지, 평가의 기준은 합당한지 스스로를 되돌아볼 수밖에 없다고. 그리고 자신이 생각하는 자아상으로부터도 마음을 내려놓기 어렵다고 말하며 멋쩍어했다. 그건 아마도 곰도리가 그동안 자신에게 요구되는 책무에 대해 좋은 성과를 내왔기 때문에 그렇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곰도리는 ‘능력 있는’ 사람이다. 좋은 성과를 내는 사람이야말로 성과나 평가로부터 자유롭기는 어렵다. 몸이 고될지라도 조금만 애를 쓰면 더 나은 결과가 나온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그걸 하지 않기는 힘들다. 그 일이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라고 한다면 더 그렇다. 곰도리는 과학교사로서 학생들과 만나는 일을 좋아한다. 대안학교답게 좀 더 창의적으로 학생들과 만나는 방법을 실험해보고 싶은 ‘당찬 꿈’도 있다. 자신이 조금만 애를 쓰면 그 일이 될 것도 같다. 그런데 어떻게 무리하지 않을 수 있을까? 문제는 곰도리의 ‘몸’이 하나라는 사실이다! 곰도리는 아침이면 커피로 잠을 깨우고, 일을 마치면 습관적으로 맥주를 마시는 것을 문제라고 봤지만, 나는 커피와 맥주가 있어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커피와 맥주가 ‘하드캐리’하고 있는 현실에서, 워킹맘의 만성피로는 SF 판타지가 아니면 답이 없다.      



  2. ‘초능력자도 충전이 필요하다

   

   언제부터였냐면, 원래부터라고 할까. 은영은 아주 일찍 자신의 세계가 다른 사람의 세계와 다르다는 걸 깨달았다. 명료하게 인식하기 시작한 것은 열 살 무렵이었다. 엄마가 시세보다 훨씬 싼값에 산 집을 리모델링한다고 좋아라 부엌 벽을 깨부수려 할 때, 힘껏 만류한 적이 있다. 이 구조 이대로가 좋으니 벽지나 바르자고, 괜히 번거롭게 여기저기 헐고 리모델링을 하면 아빠 집에 가서 살겠다고 협박을 했다. 벽 속에는 얼굴은 좀 상했지만 친절한 아줌마가 있었다. 엄마가 알아서 좋을 것은 하나도 없었다. 열 살의 은영이 식탁에 앉아 시리얼을 말아 먹을 때면, 벽 속의 아줌마는 조용히 웃으며 내려다보곤 했다. 그 눈길에 적의가 없었으므로 괜찮았다. 적의와 적의 아닌 것을 구분하는 감각은 은영 같은 사람에게 일찍 발달할 수밖에 없다. (보건교사 안은영』, 민음사, 2015년, 12~13쪽)    

 

  정세랑의 장편소설 『보건교사 안은영』에는 격무에 시달리는 보건교사가 나온다.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볼 수 있는 신비한 능력을 갖고 있는 은영은 그 능력 때문에 일상이 고되다. 전문 퇴마사로 살지 않기 때문에 먹고 살기 위해서는 직업이 필요하고, 근무와 함께 악귀도 물리쳐야 한다. 그녀의 핸드백에 들어가 있는 비비탄 총과 플라스틱 칼은 장난감처럼 보이지만, 그녀의 기운을 받게 되면 강력한 무기가 된다. 그러나 무기가 있다고 만사형통인 것은 아니다. 비비탄 총은 하루에 스물두 발, 플라스틱 칼은 15분 정도 쓸 수 있다. 터키의 이블 아이, 바티칸의 묵주, 부석사의 염주 같은 신령스런 물건을 갖고 있으면 그 기운으로 무기의 사용시간을 좀 더 연장할 수 있지만, 근본적인 대책이 되지 못한다. 그래서 은영은 휴무일마다 명승지를 유람한다. 사람들이 많이 가는 절을 찾아가 석탑에 손을 대고 ‘영빨’을 재충전한다. 남산공원에 연인들이 자물쇠를 채워든 철망을 순례하기도 한다. 이렇게 다른 사람들의 간절한 소원이나 사랑이 은영에게는 휴대폰 ‘보조 배터리’와 같이 사용된다.    

 

  두 사람이 놀토 오후마다 하는 일은 쉽게 말하면 명승지 관광이었다. 인표를 만나기 전에는 은영 혼자 하던 일이다. 주로 오래된 절, 사람이 많이 다니는 절에 가서 탑에다가 살짝 손가락을 댄 다음 충전을 한다. 푹 자고 일어나도 충전이 되고 인표의 손을 잡을 때마다도 충전이 되지만 명승지에서의 충전은 정말이지 질이 달랐다. 일상의 충전이 휘발유 급유라면 고급 엔진오일 교체 같은 것이랄까. 유통기한이 지난 티백과 다도 장인이 정성을 다해 우려낸 차의 차이랄까. 격무에 시달리고 나면 독이 자주 오르는 은영은 늘 구석구석을 맑은 것으로 가득 채울 필요가 있었다. 특히 탑돌이 행사라도 하고 난 다음이면, 탑마다 번개를 저장한 것만큼 순도 높은 에너지가 넘쳐서 은영은 열심히 훔칠 수 있다. 남의 소원을 훔쳐서 살다니, 얼마나 이상한 인생인가. 은영은 자주 자조적이 되었다. (같은 책, 50쪽)     


  판타지 소설 『보건교사 안은영』을 읽으며 내가 놀란 것은, 초능력이 있어도 에너지 재충전은 필수라는 점이다. 소설 속에는 능력 있는 의사가 나오는 에피소드도 있다. 살고 싶은 사람들의 마음이 의사의 등에 탑처럼 쌓여 디스크가 왔다. 좋다는 시술을 가리지 않고 받아도 재발해서 고생하던 때에 은영이 의사를 도와주었다. 병원 복도에서 마주친 은영이 플라스틱 칼로 미친 듯이 등을 때렸더니 허리가 나았다. 놀라워하는 의사에게 은영은 충고한다. “일을 열심히 하는 건 좋지만 거절도 할 줄 아셔야 해요. 과도한 업무도 번거로운 마음도 거절할 줄 모르면 제가 아무리 털어 봤자 또 쌓일 거예요. 노, 하고 단호하게 속으로라도 해 보세요.”(213쪽) 이쯤 되면 『보건교사 안은영』은 판타지 소설이라기보다 건강생활 매뉴얼처럼 느껴진다. 악귀든 원한이든 스트레스든 떨어내야 할 것들을 제때 떨어내지 않으면 다 병이 된다. 어쩌면 은영에게 진짜 필요한 능력은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고 그것들과 싸우는 초능력이 아니라 방전된 에너지를 재충전하는 방법을 찾는 능력인지 모른다. 그리고 이건 은영뿐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이다.      

 


 3. 장르를 바꿔봐호러에서 소년만화로


  “너는 말이야, 캐릭터 문제야.”

  “뭐라고?”

  “장르를 잘못 택했단 말야. 칙칙한 호러물이 아니라 마구 달리는 소년 만화여야 했다고. 그랬으면 애들이 싫어하지 않았을 거야. 그 꼴로 다치지도 않았을 거고.”

  “만화가 아니야.”

  “그렇게 다르지 않아. 그래서 내가 한 번 그려 봤지.”

   강선이 스케치 한 장을 내밀었다. 거기엔 교복을 입은 은영이 5등신 정도 되는 비율로, 치마는 좀 짧아진 채 그려져 있었다. 5등신이 기분 나쁜지 멋대로 치마를 잘라 먹은 게 기분 나쁜지 얼떨떨했다. 그 그림 속 은영의 한 손에는 무지개 깔때기 칼이, 다른 손에는 총이 들려 있었다. 은영이 뭐라 반응하기 전에 강선이 의자에 걸려 있던 커다란 가방에서 정말로 깔때기 칼과 비비탄 총을 꺼냈다. 낡고 흠집이 있는 게 분명 강선이 어릴 때 가지고 놀던 물건인 것 같았다.

  “도구를 쓰라고, 멍청아.”

  “하.”

  “코믹 섹시 발랄? 아무래도 섹시는 무리겠지만.”

  그렇게 말하면서 강선이 은영의 납작한 가슴을 삐딱하게 쳐다보았으므로 은영은 기운을 차리고 지우개를 던졌다.

  캐릭터를 바꿀 수 있을 것 같았다. 장르를 바꿀 수 있을 것 같았다. 지우개가 명중하는 순간 은영은 예감했다. (같은 책, 185~187쪽)  

   

  『지구에 한아뿐』, 『피프티피플』, 『옥상에서 만나요』로 이어지는 작가 정세랑의 시그니처는 판타지의 형식을 빌어 자신의 정치적 올바름을 담아내는 ‘믹스매치’에 있다. 정세랑은 코믹하고 황당한 설정이 가져오는 장르적 재미로 사회적 정의와 연대와 같은 공공의 가치를 포장한다. 그의 작품은 B급으로 제작된 공익광고와 같은 신선함이 있다. 문학의 ‘엄숙함’을 덜어낸 그의 발걸음은 가볍고 경쾌하다. 

  ‘발랄함과 굳건함, 코믹함과 용감함’은 작가 정세랑의 이미지이기도 하고, 소설 속 캐릭터 은영의 이미지이기도 하다. 그러나 은영이 처음부터 귀엽고 사랑스러운 여전사형 퇴마사였던 것은 아니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고,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는 아이는 ‘홈드라마’보다는 ‘호러물’에 어울린다. 호러물의 ‘여주’답게 왕따로 청소년기를 보내던 은영에게 한 친구가 조언한다. 네 인생의 장르를 호러가 아니라 소년만화로 바꿔보라고. 음산하고 칙칙한 소녀가 아니라 악당을 물리치는 여전사가 되라고. 소년만화가 갖는 장르적 쾌감과 가벼움이 은영이 짊어지고 갈 인생의 무게를 덜어냈다. 

  우리도 은영처럼 해보면 어떨까? ‘퇴마사’라는 비운의 운명까지는 아니더라도, 우리 모두에게는 어깨를 짓누르는 각자의 짐이 있다. 비장하게 내 운명과 맞서 싸우겠다는 정도(正道)만이 길인 것은 아니다. 정도로는 길이 보이지 않을 때, 정도로 대결하기에는 힘이 부칠 때, 우리에게는 사도(邪道)가 있다. 삼십육계 줄행랑이 절체절명의 순간 목숨을 구하는 최고의 전술이 될 수 있듯이, 이제껏 써보지 못한 방책을 구사하는 것도 구제책이 될 수 있다. 그것이 ‘스타일 구기는’ 방식일지라도. 

  워킹맘 곰도리의 만성피로도 ‘불량교사’ ‘불량주부’라는 캐릭터가 살아있는 코믹 장르로 풀어보면 어떨까? 학생들의 고민을 함께 해결해주는 교사가 아니라, 학생들에게 고민상담을 일삼는 교사로. 엄마라기보다는 룸메이트에 가까운 가족의 일원으로. 자신의 새로운 캐릭터를 설정하고 세계관을 구축해간다면, 이제까지와는 다른 ‘곰도리월드’가 만들어지리라 짐작된다. 요즘 유행하는 미스터리 장르를 선택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도대체 곰도리의 정체는 무엇인지 양파 껍질처럼 파헤쳐가는 스토리도 주위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올 수 있다. 물론 쉽지 않다. 그래도 이런 ‘헛소리’에 어이없어 하며 실소를 터뜨리게 된다면, 피식 웃게 되는 그 순간이 내가 곰도리에게 주고 싶은 ‘휴식’이었다는 것을 이해해줬으면 좋겠다. 피로엔 휴식이 답이다. 곰도리 쉬어야 해! 일도 살살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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