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광염에 강화길의 「음복」을 처방합니다
1. 효숙씨는 ‘일복’도 많지
효숙씨와 나는 여섯 살 차이가 난다. 여섯 살의 차이는 묘하다. 내가 학교 운동장을 어슬렁거리는 땅꼬마였을 때 그녀는 초등학생이었고, 내가 초등학생이 되었을 때 그녀는 교복을 입는 중학생이었다. 그녀와 나 사이에는 서로의 관심사가 겹칠 수 없는 ‘나이 차이’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방광염을 하소연했을 때, 나는 누구보다 잘 알아들었다. “아! 그거 되게 아프고 짜증나잖아요!” 나도 한때 비뇨기과를 들락거리며 방광염을 치료했던 적이 있었다. 비뇨기과 대기실은 내가 갔던 어떤 병원보다도 적막했다. 진료를 기다리는 환자들도 말이 없고, 간호사들에게서도 무심함을 가장한 친절과 어색함을 감추려는 침묵이 느껴졌다. 서로를 멀뚱멀뚱 바라보기도 고역이라 빈 공간으로 시선을 돌렸다가 나는 다시 눈을 감아버렸다. 비뇨기과 인테리어의 포인트는 발기부전의 원인과 전립선의 건강비법을 알려주는 게시물들이었다. 그래서 입 다물고 눈 감고 진료를 기다리는 시간은 명상시간처럼 고요했다. 내가 비뇨기과에 갔던 것은 사십대 초였다. 해야 할 일이 많았던 때였다. 의사선생님은 급성 방광염은 항생제로 금방 치료되는데, 이게 반복되면 치료하기 힘든 만성 방광염이 될 수 있다고 주의를 주셨다. 만성 방광염까지 가지는 않았지만, 나는 의사선생님의 ‘주의’가 늘 귓가에 맴돈다. 나이를 먹을수록 신장과 방광의 기능도 노화될 것이고, 요실금도 걱정된다. 가끔 재채기를 하거나 뜀박질을 하다 깜짝깜짝 놀란다.
효숙씨는 나보다 긴 방광염의 역사를 갖고 있었다. 대학생때 알바로 학비도 벌고 용돈도 벌어야 했는데, 장시간 일을 하다보면 화장실을 안 가고 참게 되는 날이 많았고 그럴 정도로 일을 많이 해야 했기 때문에 몸에도 무리가 갈 수밖에 없었다. 대학생이 되기 전에도 효숙씨에게는 일이 많았다. 시장에 장사 나가는 어머니 대신 오빠와 동생들 밥 차려주고 학교에 가야 했고, 김장과 명절 차례상도 혼자 다 해치웠다. 어머니는 바빴고, 남자는 집안일을 해서는 안 된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는 가부장제 집안의 맏딸이 해야 할 일은 많았다. 집에서 탈출하는 길이 결혼이라고 생각했는데, 결혼 후에는 시댁의 대소사가 효숙씨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늘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 둘 다를 손에 쥐고 놓지 못했던 것 같아.”
효숙씨는 현재 논술학원을 운영하고 있다. 아이 둘을 기르며 평생교육원에서 ‘보육교사과정’을 이수했고, 당시로는 드물게 ‘프로젝트 수업’을 진행해서 인기 많은 강사였다고 한다. 돈도 잘 벌었다. 돈을 벌기 위해 해야 하는 일의 중압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도서관 봉사활동도 했다고 한다. 도서관 봉사활동은 돈을 벌기 위한 일이 아니라 스스로 기획하고 추진하는 일의 기쁨을 가져다주었다. 그리고 최근 십 년 마을인문학공동체 문탁네트워크에서 공부하고 있다.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의 기본이 되는 철학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어서였다. 친정과 시댁의 대소사와 두 아이의 양육, 가사노동 그리고 돈을 버는 일과 공부하는 일까지, 효숙씨는 ‘일복’도 많다. 일복 많은 효숙씨에게 방광염은 필연이 아니었을까? 방광염과 오랜 세월을 함께 해온 효숙씨는 나름대로의 자가 치유법을 갖고 있다. 방광염이 재발되는 불길한 감이 느껴지면, 물을 많이 마셔서 염증을 빨리 배출하려고 하고 스스로에게 휴식시간을 준다.
“젊었을 때는 무리해도 괜찮았는데, 이제는 안 되더라.”
이건 효숙씨만의 깨달음이 아닐 것이다. 만성 방광염을 걱정하는 ‘나’도,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 사이에서 갈등하는 ‘당신’도, 그리고 ‘착한 딸’, ‘좋은 엄마’, ‘능력 있는 커리어우먼’이 되기 위해 바쁘게 살아가는 대부분의 여자들이 경험하는 이야기일 것이다. 뻔하고 지겨운 이야기라고? 그럴까?
2. 집안의 ‘악역’은 누구인가
올해 우리 집에서는 가사노동의 분담이 이루어졌다. 그 동안 집안일에는 손 하나 까딱하지 않았던 남편이 저녁식사 후 설거지를 하게 되었다. 어느 날 갑자기 남편의 생각이 바뀌게 된 것은 아니고, 큰딸이 아버지에게 듣기 싫은 소리를 전담하는 ‘악역’을 자처하고 나서 가능한 변화였다. 밥상머리에서 듣기 싫은 잔소리를 하던 큰딸은 급기야 더 이상 아버지와 같은 집에서 살 수 없다고 집을 나갔다. 딸의 가출을 외박쯤으로 가볍게 생각하고 있던 남편은 그것이 자신에게 강력한 이의를 제기하는 딸의 ‘선전포고’라는 것을 깨닫고 나서야 설거지를 하기로 합의했다. 두 사람의 다툼과 합의과정을 지켜보면서 ‘엄마이며 아내인’ 나는 불편했다. 내가 해야 할 일을 딸에게 미루었다는 죄책감이 들고, 딸의 투쟁에 ‘무임승차’한 것 같은 자괴감도 들었다. 나는 남편과는 말이 안 통할 것 같았고, 그런 남편과 입씨름하며 시간을 보내기 싫었다. 내가 ‘악역’을 피하기 위해 남편으로 대변되는 가부장제적 질서와 공모관계를 맺고 순응해왔다는 사실이 스스로에게 수치스러웠다.
강화길의 단편소설 「음복」은 남성 중심의 가부장제가 남성권력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집안 여성들의 복잡한 권력관계에 의해 유지되는 모습을 치밀하게 보여주고 있다. 결혼 1년차 며느리인 세나는 시댁에서 치루는 첫제사에서 은밀히 이루어지는 집안의 공모관계를 단박에 파악한다. “다른 식구들의 신경을 긁어대는 인간, 미움받을 소리를 잔뜩 늘어놓고 내가 아니라 너희들이 못돼처먹은 거라고 말하는 사람”(12쪽)인 시고모가 그 집안의 ‘악역’이 된 이유라든가, 며느리와 아들에게 쿨한 모습을 보이기 위해 집안 제사를 혼자서 도맡아하는 시어머니의 처세술, 이러한 역학관계를 눈치조차 못 채는 남편의 ‘무지’까지 세나는 영특하게 알아챈다. 이러한 영리함은 세나의 비범한 감수성 때문에 얻어진 것이 아니다. 세나의 집에서도 외할머니와 엄마 사이 펼쳐졌던 애증의 드라마가 있었고, 자신과 엄마 사이에도 미움과 연민의 서사가 존재하기 때문에 직관적으로 알아챌 수 있었다.
왜냐하면 나는 엄마가 우는 걸 자주 봤으니까. 외할머니가 외삼촌을 너무 사랑해서, 자신의 큰딸을 여러 번 아프게 했다는 걸 알았으니까. 대학교를 갈 수 없게 했고, 결혼식에 돈을 보태주지 않았고, 사위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결국 그 사위가 보증 빚을 졌을 때 매일 전화를 해서 한숨을 쉬었다는 것도 알고 있었으니까. 그러면서도 할머니는 누군가에게 화가 나거나 속상한 일이 있으면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몇 시간이고 떠들어댔다. 울었다. 하소연하고 속을 풀었다. 네가 아니면 누가 나를 이해해주니. 네가 나를 이해해줘야지. 그리고 다시 전화를 해서 말했다. 너 대체 앞으로 어떻게 살래? 너 때문에 내가 잠이 안 와.
그리고 엄마는 외할머니가 보는 앞에서 외삼촌의 아이들에게 말했다. 너는 성적이 어느 정도니. 친구는 있니? 살이 너무 찐 거 아니야? 운동을 해라 운동을. 응? 아직도 용돈 받니? 우리 애는 이제 독립했는데, 너는 결혼은 안해? 남자친구는 있니?
그래. 내 엄마가 우리집의 악역이었다.
(「음복」, 『화이트 호스』, 문학동네, 2020년, 37쪽)
가부장제의 대표적인 피해자인 ‘어머니’는 자신의 ‘딸’에게 가장 많이 의존하면서도 그 딸을 아들과 차별한다. 딸들은 출가 후에도 친정어머니의 ‘심리적 의지처’ 역할을 해야 하고, 시댁의 며느리 역할도 잘 해내야 한다. 그 딸이 어머니가 되어서는 자식들에게 존경받는 어머니로 인정받는 일로 자신의 인생을 보상받고 싶어진다. 여기서 가부장제의 피해자인 ‘여성’의 왜곡된 욕망이 왜곡되게 표현되는 ‘기괴함’이 연출된다.
나는 효숙씨의 일에 대한 욕심과 방광염에도 이러한 기괴한 판타지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는 것을 본다. 나는 큰딸이 ‘못된 기집애’ 소리 들으며 제 아버지와 싸우는 모습을 목격하며 나도 스위트홈 판타지에 빠져 있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게 되었다. 돈 벌어오는 남편에게 싫은 소리 하지 않고 그의 비위를 잘 맞춤으로써 남들 눈에 그럴듯해 보이는 ‘즐거운 나의 집’을 지키고 싶었다. 나는 이 뻔하고 진부한 욕망을 딸에게 들켰다는 사실이 부끄럽다. 그리고 더 이상 이러한 사실을 없었던 것처럼 모르는 척 할 수 없는 내 자신이 민망하다.
종종 충동은 들어. 확……말해버릴까.
그러니까 내가 너와 함께 살기 시작하면서 알게 된 것들을 말이다. 이를테면 시어머니가 할머니를 모시며 함께 살고, 제사를 열심히 챙기기로 한 대신 시아버지는 너의 삶에 어떤 상관도 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 그 약속에는 나의 삶까지 포함되어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사실을 며느리인 내게만 말해주기로 역시 약속했다는 것. 조금 더 자세히 말해볼까. 나는 그날 집에 돌아가는 길에 그 내용이 담긴 장문의 문자를 받았다. 시어머니는 글 말미에 이렇게 썼다.
‘그러니까 앞으로 제사에 오지 않아도 된단다.’
그녀는 강조했다.
‘정우는 다 모르게 해줘.’ (같은 책, 35~36쪽)
‘시할머니-시고모-시어머니-며느리’로 이어지는 카르텔은 오늘날 희미해진 것 같지만, 아주 없어졌다고는 말할 수 없다. 나는 앞으로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까? 그리고 효숙씨는? 우리는 이 뻔하고 지겨운 여성 카르텔을 바꿀 수 있을까?
3. ‘할머니-어머니-딸’이 아닌 다른 이름으로
효숙씨의 자식들은 이제 자기 앞가림을 할 수 있는 성인이 되었다. 자식들의 양육이 끝나자, 치매가 시작된 친정어머니를 돌보는 일이 효숙씨에게 돌아왔다. 중년의 나이를 넘긴 오빠들에게 맡기기도, 그 배우자인 올케들에게 맡기기도 여의치 않아, 친정어머니의 간병은 효숙씨의 몫이 되었다. 효숙씨는 한 달에 두 번은 대구로 내려가는 기차를 탄다. 대구에 혼자 사는 친정어머니가 드실 반찬을 만들고, 하룻밤이라도 같이 자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무료함을 달래드리려 한다. 갑작스런 호출이 있으면 수시로 대구로 내려간다. 용인과 대구를 오가며 두 집 살림을 한다는 것이 피곤한 일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오락가락하는 친정어머니의 기억력에 더 억장이 무너진다.
“이렇게 일이 많은데 어떻게 안 아프겠어?”
“맞아. 아픈 게 정상이야.”
갱년기와 동시에 친정어머니의 간병이 시작된 효숙씨는 몸과 마음이 피곤하다.
취업을 해서 독립을 한 우리 집 큰딸의 일상도 순탄하지만은 않다. 혼자 사는 이십대 여성의 공포와 두려움이 있다. 밤늦은 시각 인적 드문 길을 걸어갈 때, 회식 후 택시를 타고 귀가할 때, 택배기사가 현관문의 초인종을 누를 때, 매순간 불안과 안심 사이를 오간다. 특히, 상사가 자기 아버지보다 더 말이 안 통하는 ‘꼰대’라면 버텨낼 수 있을지 자신 없어 한다.
나는 가끔 딸에게 전화를 해서 안부를 묻는다. 햇반만 먹지 말고 밥을 해먹으라고, 시간을 내서 꼭 운동을 하라고 잔소리를 한다. 내가 애정을 표현하는 방법이다. 나는 효숙씨와도 가끔 차를 마신다. 젊은 작가 강화길의 단편소설 「음복」을 어떻게 읽었는가 소감을 묻고, 요즘 애들은 우리보다는 똑똑한 것 같다는 내 독후감을 들려준다.
“나는 내가 한 일들의 가치가 제거되는 것 같아서, 소설을 읽으며 거부감도 들었어.”
효숙씨의 말에도 일리가 있다. 나는 딸을 보며 기특하기도 하고 섭섭하기도 하다. 저 혼자 큰 줄 알고 잘난 척 하는 모습이 밉상일 때도 있다. 효숙씨와 나 그리고 내 딸과 효숙씨의 친정어머니, 우리는 앞으로 어떤 관계가 될까? 치매가 시작된 80대 여성과 갱년기의 50대 여성, 그리고 사회생활을 시작한 20대 여성은 ‘할머니-어머니-딸’이 아닌 다른 관계로 만날 수 있을까? 그건 아마도 효숙씨와 연옥씨(나) 그리고 소영씨(딸)의 이름을 되찾는 일로부터 시작될 것이다. (효숙씨의 친정어머니의 이름은 무엇일까?)
“효숙씨는 매사에 혼자 결정해버리는 습관이 있는 것 같아.”
“내가 결혼도 일찍 하고 사회생활을 하지 않아서, 사회성이 부족해. 대인관계가 조심스럽고 어려워.”
효숙씨는 ‘밀당’의 기술이 부족하다. 의견을 나누고 협상을 하고 타협을 하는 과정을 견디지 못해 “그냥 내가 할게!”라고 먼저 손을 드는 사람이다. 스스로 한 선택이지만, 외로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숨 막힐 것 같은 긴장감을 견디고, 다른 사람의 눈치를 살피고, 그의 복심을 읽으려 애쓰고, 거리를 조절해가는 능력이 관계의 기술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내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잘 듣지 못한다는 사실을 최근에 알게 되었어. 내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잘 듣지 못하니까 다른 사람들도 내 이야기를 잘 듣지 못하겠구나, 하는 것도 알게 되고.”
최근 효숙씨는 ‘밀당’의 기술을 연마하는 비법을 눈치 챈 것 같다. 나는 효숙씨에게 애니메이션 ‘쿵푸 팬더’를 추천하고 싶다. 국수집 아들 뚱보 팬더 포가 ‘용의 전사’가 되는 영웅담을 담고 있는 ‘쿵푸 팬더’에서 거북 대사부, 시푸 사부, 무적의 5인방이 없다면, 드라마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조력자 조연들의 ‘조언’으로 주인공 포는 영웅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효숙씨의 드라마도 그러하다. 미리 벽을 쌓고 기대하지 않았던 주변사람들을 ‘빛나는 조연’으로 캐스팅해본다면, 효숙씨의 스토리도 예상하지 못한 반전을 보여주는 ‘갓띵작’이 될 것이다. ‘내가 다 알아서 할게!’라고 혼자 짊어지고 가던 짐을 남자형제들과 남편과 아들딸과 나누어 질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 카톡방에서 무응답으로 일관하는 가족들의 냉담함에 분노하기보다는 ‘촌철살인’의 이모티콘을 보내는 신공을 갈고닦자. 간병의 ‘달인’이 되어가는 친구들에게 실전노하우를 전수받자. 너희들은 모르는 나만 아는 이야기라고 철벽을 치지 말자……. 예상하지 못한 반전은 이 수행들 가운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