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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문약방 Oct 24. 2022

루틴의 ‘힘’

-알레르기성 피부 발진에 나수경의 「구르기 클럽」을 처방합니다

  1. 바닥을 칠 때알레르기가 찾아왔다

  알레르기성 피부 발진에 대한 처방을 의뢰한 ‘루틴’(닉네임)은 6년차 직장인으로, 식물학 박사이고 관련 업체에 근무하고 있다. 루틴은 삼십대 후반의 싱글이며 회사에서 도보로 30분 거리에 있는 투룸에 살고 있다. 아침 6시쯤 일어나 식사를 준비하고 걸어서 출근한다. 예전에는 회사 아래 음식점에서 저녁식사까지 마치고 귀가했으나, 자극적인 식당음식이 몸에 좋지 않은 것 같아 최근에는 집에서 저녁밥을 지어 먹는다고 한다. 퇴근 후 밥상을 차리고 치우고 정리하다보면, 노곤함이 밀려와 일찍 잠자리에 들게 된다. 그러니까 현재 루틴은 안정된 직장이 있고,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일상생활이 가능한, 비교적 ‘건강한’ 직장인이다. 루틴의 라이프스타일은 커리어의 면에서나 워라밸의 면에서나 나쁘지 않다.

  그러나 학위를 마치고 처음 직장생활을 시작할 때는 지금과 달랐다. 1년차 직장인의 연봉은 높지 않았고, 학위를 따느라 보내는 기간 동안 모아둔 돈도 없어 집을 구하는 일부터 쉽지 않았다. 부동산 중개인과 함께 형편에 맞는 집(방?)을 보러 돌아다닐 때, 루틴의 눈에는 일찍 결혼해서 평수를 늘려가고 인테리어를 바꿔가는 친구들의 아파트가 아른거렸다. 학교에 있는 동안에는 개인공간으로 기숙사 방이면 충분했고, 일이 안 풀릴 때는 옆방의 친구들과 고민상담하며 동료의식과 연대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학교 기숙사의 인프라와 커뮤니티가 빠진 루틴의 현실은 박봉의 일인가구였다. 결혼한 친구들은 각자 나이에 맞게 인생의 규모를 키워가는(남편이든 자식이든 아파트 평수든) 상향곡선을 그리고 있는데, 자신만 하향곡선을 타고 있는 것 같아 조바심이 났다. ‘아! 나도 빨리 결혼해야 되는데…….’

  어릴 때 아토피로 앓았다는 루틴은 스트레스를 받을 때 알레르기성 피부 발진이 심해졌다. 학위를 따기 위해 이십대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야 했을 때도, 사회 초년생 시절 직장생활의 막막함을 느낄 때도, 그리고 루게릭으로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그러했다. 알레르기성 피부 발진은 특히 삼십대 초반의 루틴에게 혹독하게 기승을 부렸다. 피부과 약은 독해서 먹고 나면 정신이 혼미해지고 잠이 쏟아졌다. 약을 꼬박꼬박 먹는다고 상태가 호전되는 것도 아니고, 피부 발진은 제멋대로 오르락내리락했다. 그 흔적으로 루틴의 손가락 사이사이 껍질이 벗겨지고 다시 돋아난 우툴두툴한 자욱이 꺼끌꺼끌하게 만져졌다.

  요즘 루틴은 예전만큼 알레르기성 피부 발진으로 고생하지는 않는다. 심해질 기미가 보이면 미리 스테로이드제를 발라 초기에 진화하고, 컨디션을 조절하려 노력한다. 직접 밥을 해먹게 되면서, 잡곡 위주로 밥을 하고 반찬도 맵고 짜지 않게 간을 맞추니 몸 상태가 좋아지고 있는 느낌이 든다고 한다. 걸어서 출퇴근하기 때문에 운동도 규칙적으로 하는 편이다. 2년 전부터 시작한 인문학 공부로 틈틈이 책도 읽어야 해서 요즘은 결혼에 대한 걱정이 줄어들었다. 그러고 보니 자신이 결혼상대자에 대한 ‘이상형’도 없이 ‘가족을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멋쩍어했다. 마치 ‘수능’을 치르듯, 결혼도 해치워야 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는 말이다. 나는 루틴과 이야기를 하며 언젠가 결혼하지 않은 친구에게서 비슷한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났다. 그런데 왜 하필 ‘시험’일까? 우리의 무의식이 혹은 고정관념이 결혼을 피하고 싶으나, 피할 수 없는 절대적인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나 보다. 최근에는 원하지 않는 시험은 보지 않겠다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고, 루틴도 그러한 입장이다. 

  나는 루틴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가 왜 루틴이라는 닉네임을 정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삼십대 비혼 여성이 주류의 라이프스타일과 다른 삶을 살기 위해 필요한 것은 관행적으로 요구되는 스케줄과는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루틴을 만들어가는 일이다. 결혼을 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별다른 고민 없이 컨베이어벨트에 올라 출산과 육아의 루틴을 살아가게 된다. 자식을 낳지 않는다면, 집장만과 노후대비의 루틴이 플랜b로 준비되어 있다. 적어도 이십대에 결혼을 해서 자식 둘을 낳고 기른 나는 그런 관행적인 루틴에 따라 살았다. 그래서 나는 자신만의 루틴을 만들어가기 위해 시간표를 새로 짜는 그가 부러웠다. 이런저런 계획을 말하는 그의 목소리는 들떠 있었고 설렘을 숨길 수가 없었다(아! 나도 진작 생각을 좀 했어야 했다!!). 알레르기성 피부 발진에 대해서도 루틴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적절한 처방을 해오고 있었다. 이제 내가 할 일은 루틴을 위한 ‘응원’ 정도. 그래서 나는 열심히 루틴을 위한 응원과 지지의 말들을 찾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작품들을 뒤적였다. 헉! 그런데 이럴 수가! 문학작품에는 고통과 우울의 말들은 넘쳤고, 응원과 지지의 말들은 드물었다. 어떡하지? 난감했다.     



  2. 바닥이 나를 밀어주는 것 같아구르기 클럽     

  

언덕에서 구르다가 가로등에 부딪혀 다리에 금이 간 현경씨는 구급차에서 내 손목을 붙잡고 말했다. 슬기씨…… 제가 살게요. 맛있는 거.

(중략)

  칠백집이라고 삼겹살집이 있는데, 맵게 무친 콩나물이랑 단호박 양파 버섯을 삼겹살이랑 같이 구워줘요. 알바생이 테이블 옆에 서서 정성껏 고기를 뒤집고 적당한 크기로 잘라주면 우리는 그냥 먹기만 하면 돼요. 삼겹살을 다 먹으면 오징어볶음이랑 볶음밥도 주는데……

  슬기씨……

  네.

  나 고기 안 먹어요. (「구르기 클럽」, 『문학3』 2020년 2호, 190~191쪽)      

 

  「구르기 클럽」은 최근 내가 읽은 소설 가운데 가장 가슴이 아리면서도 시시때때로 웃음이 터지는 것을 막을 수 없는 독특한 작품이다. 그리고 생각 없이 웃다보면 어느 샌가 가슴이 뭉클해지는 가히 ‘시트콤’스러운 작품이다. ‘순풍산부인과’ ‘웬만해선 그들을 말릴 수 없다’ ‘거침없이 하이킥’ 등등 인기리에 방송되었던 시트콤들은 단지 웃기기만 한 게 아니다. 알 수 없는 고집을 부리는 캐릭터나, 그런 캐릭터들이 만들어가는 ‘꼬이고 꼬이는’ 에피소드 속에는 인생의 ‘희비극’이 반짝 빛난다. 유쾌함과 짠함과 뭉클함이 삼박자가 맞아 떨어질 때, 시청자들은 똥고집을 부리는 캐릭터들의 과장된 이야기에 몰입하고 공감하게 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에서 말했듯이, 카타르시스라는 것은 인과관계에 대한 추론과 인물과 자신을 같은 입장에 두고 생각할 수 있는 ‘상상력’이 있어야 가능하다. ‘아! 어떻게 이 사람에게 저런 일이 일어났을까?’ ‘그는 이런 고통을 당할 사람이 아닌데……’ ‘만약 나에게 저런 일이 일어난다면?’ 이런 사유와 공감의 과정을 통해 우리는 같이 울고 웃게 된다. 더 나아가 저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분노의 감정으로 두 주먹을 불끈 쥐게 된다. 감정과 윤리의 문제를 연결하고 있는 학자 마사 누스바움은 이를 ‘시적(詩的) 정의’라고 부른다. 공감과 상상력 없이 정의를 말할 수 없다는 의미이다. 

  여기 언덕에서 구르다 가로등에 부딪쳐 다리에 금이 간 사람이 있다. 어떻게 해야 할까?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빨리 병원으로 가야 한다. 그런데 구급차를 타고 가는 사람들이 나누는 대화가 마라탕과 삼겹살과 칼국수 가운데 무얼 먹을까 고민하는 내용이라면 실소를 금할 수 없다. 그런데 좀 더 생각해본다면, 다리를 다친 사람은 자신 때문에 귀찮은 일을 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에 밥을 사겠다는 제안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좀 더 생각해본다면, 이 사람은 왜 언덕에서 구르게 되었을까 궁금하게 된다. ‘구르기 클럽’이라니 도대체 이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구르면……좋아요?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현경씨는 입고 있던 남색 플리스를 벗었다.

  바닥을 온몸으로 구른다는 게 좋아요. 굴러도 앞으로 나아가는 것 말고는 아무 일도 안 일어나니까……저는 바닥을 무서워했거든요. (같은 책, 194쪽)    

 

  슬기야. 너도 학교 언덕 말고……

  엄마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

  안전하고 완만한 언덕에서 한 번 굴러봐. 앞구르기든 옆구르기든 다 좋아. 오로지 구르는 것에 집중해서 네가 하고 싶은 대로…… 그래도 아무 일도 안 일어나더라. 그저 이쪽에서 저쪽으로 나아갔을 뿐이야. (같은 책, 197쪽)     

  

「구르기 클럽」은 명랑만화 같은 감성을 보여주는 콩트 같지만, 사실 ‘시적(詩的)’이다. 이 짧은 단편소설의 주제는 ‘바닥’과 그것을 ‘이겨내는 일’이다. 모두가 두려워하는 인생의 바닥에 대한 이야기이고, 바닥을 친 사람들이 온몸으로 느낀 바닥의 감각에 대한 이야기이다. 소설은 ‘구르기 클럽’이라는 메타포를 통해 이것을 압축적이고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 사이의 좁은 길을 맨발로 걷다가 문득 굴러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나는 정말 일정하게 직선을 그리면서 좁은 길을 앞구르기로 계속해서 굴렀어. 구를 때마다 꼭 바닥이 나를 밀어주는 것 같았어. 나의 전진을 응원받는 기분? 손들이 내 몸을 지그시 앞으로 밀어주는 기분이 들었어. (같은 책, 199쪽)     


  그런데 바닥은 차갑고 딱딱하기만 한 게 아니란다. “바닥이 나를 밀어주고” “바닥으로부터 전진을 응원받는 기분”이라는 문장은 눈물을 왈칵 쏟게 만든다. 이런 문장을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구급차를 타고 가며 삼겹살타령을 하든, 언덕에서 굴러 가로등에 부딪치든, 뭐든 괜찮다. 그리고 괜찮다는 말을 반복하다 보면, 고단한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한 작가의 ‘시적 정의’라는 것도 어렴풋이 느껴진다. 그 위로는 세상에 대한 긍정과 신뢰를 가져온다. 그렇게 울고 웃으면 못생긴 얼굴은 더 못생겨지지만 그래도 괜찮다. 이런 게 세상에 대한 낙관이다. 소설은 ‘안산’과 ‘5년 전’이라는 두 단어를 통해 2014년의 사회적 재난을 암시하고 있다. 우리는 재난 이후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고통과 안간힘에 대해 함부로 ‘아는 체’ 할 수 없다. 그러나 함께 울고 웃을 수는 있다. 상상력과 공감이 이것을 가능하게 한다.      

  나는 진심을 다해 부엌의 좁은 복도를 구르다가 벽에 부딪혔을 엄마의 표정을 상상했었다. 엄마에게 다시 찾아온 ‘힘’의 근원이 그 순간에 있을 것 같아서. 내 상상 속에서 엄마는 대부분이 무표정이었다. 그것도 아니면 시선을 아래로 두고 입을 달싹거리는 엄마 특유의 곤란한 표정. 하지만 이제는 선명하게 떠올릴 수 있다. 자신이 무언가에 이토록 열중했던 적이 있었던가 하는 감탄과 현재만을 살아냈다는 환호. (200~201쪽)     

  내가 루틴을 위해 찾아낸 응원의 말도 “자신이 무언가에 이토록 열중했던 적이 있었던가 하는 감탄과 현재만을 살아냈다는 환호”이다. 무언가에 열중하고, 그 현재를 살아내는 일, 그리고 그것을 기뻐하는 일. 이것이 재난 이후를 살아가게 하는 힘이다. 루틴에게도 나에게도 이것이 힘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3. 루틴의 힘달려라 푸드 트럭    

 

  에타에 올라온 영상은 다행히 GIF 파일이라 현경씨의 비명 같은 건 들을 수 없었다. 영상의 제목은 ‘뀡은 제 머리로 종을 쳐서 은혜를 갚고’였고, 본문은 ‘사람은 가로등을 몸으로 쳐서 가로등을 켠다’였다. 조회수는 삼천, 댓글은 오백을 넘어 ‘이 주의 화제영상’에도 올라 있었다. 영상은 감악관으로 가는 언덕을 빠른 속도로 굴러내려오던 검은 덩어리가 가로등에 부딪히자 꺼져 있던 가로등이 환하게 켜지면서 끝났다. 

(같은 책, 187~188쪽)     


  운전을 하다 보면 도로의 가로등에 불을 켜지는 순간을 맞이할 때가 있다. 갑자기 시야가 밝아지면서 정중한 에스코트를 받는 기분이 든다. 기분 좋은 착각이다. 「구르기 클럽」에서 가장 시적인 순간도 가로등에 불이 켜지는 순간이다. 다소 황당하게 언덕을 굴러온 사람에 의해 고장 난 가로등에 불이 켜지자, 학생들은 학교커뮤니티에 영상을 올리고 재치 있는 댓글놀이를 이어간다. “역시 기계는 고장 나면 때리는 게 정답인 듯 덕분에 밤에도 어둡지 않네요.” 

  루틴과의 대화에서 가장 시적인 순간은 푸드 트럭이 등장했을 때다.

  “친구들과 푸드 트럭을 해볼까 해요. 한 곳에 계속 있는 건 지겨울 것 같고, 이곳저곳 옮겨 다니며 생계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푸드 트럭 괜찮지 않아요? 저 1종 면허예요.”

  루틴은 결혼이 아닌 방식으로 인생을 설계하다보니 함께 살 친구들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되었고, 친구들과 함께 할 일에 대해서도 상상을 해보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간 학위를 따고 취직을 하는 방법 말고는 다른 생각을 해보지 못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고. 이제 루틴은 직업으로 자아실현을 하고 정년까지 돈을 벌겠다는 생각을 수정해보고 있단다. 돈 버는 일에 인생의 대부분을 써버리기보다는 차근차근 준비해서 ‘친구, 여행, 공부’ 같이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로 일상생활을 채우고 싶다는 것이다. 

  “푸드 트럭에서 게릴라콘서트 같은 것도 하는 거예요. ‘오늘은 한강에서 ‘푸코쇼’를 합니다‘ 홍보하고 인문학콘서트를 여는 거죠.”

  “공부 많이 해야겠다. 레퍼토리가 다양해야 할 것 아냐?”

  “요즘 읽고 있는 책들 예전에는 구경도 못해봤던 것들인데 재미있어요.”

  식물학 박사인 루틴은 얼마 전에 <논어>를 공부하고 생애 처음 두 쪽짜리 에세이를 썼다. 그걸 읽으며 눈물을 펑펑 흘렸다. <논어>가 그렇게 감동적인 책인지 나는 루틴을 통해 배웠다. 나는 상상해본다. 루틴이 어두운 계단을 올라갈 때 센서등의 불이 환하게 켜진다. 책상에 앉으면 스탠드의 불이 탁 켜진다. 책상에는 푸코, 스피노자, 니체 등등 책들이 산처럼 쌓여간다. 내 상상의 가장 멋진 장면은 푸드 트럭을 운전하는 루틴의 모습이다. 루틴은 트럭이 고장 나도 당황하지 않고 차에서 내려 타이어를 한 번 발로 찬다. 역시 기계는 고장 나면 때리는 게 정답이다. 달려라 루틴, 달려라 푸드 트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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