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은 이삿짐을 트럭에 싣고 조수석에 앉아 주머니에 넣어둔 리모컨을 발견하고 또 장난이 발동해 아무나 걸리라고 하는 식으로 버튼을 눌렀었다. 그때 운전석에 있던 친구가 얼마나 박장대소를 했던지 오사카에서의 잔잔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예전에 어느 다큐멘터리는 평범한 일가 5곳을 밀착 취재하는 기획이었다. 흰 런링구 바람에 반바지를 입고 소파 아래서 무릎을 세워 꼬고 누워 한쪽 팔로 머리를 괴고 다른 한쪽 팔은 리모컨을 들고 있었는데 이 모습이 일상의 아빠들과 너무도 닮아 실소를 한 적이 있었다. 아이들이 자라 밖으로 나가고 엄마는 집에서 뒹구는 남편의 모습이 보기 싫었을 것이다. 티브이가 꺼지면 어쩐지 허전함이 몰려왔을 것이다. 그래서 더욱 티브이와 견고한 우정을 쌓아가고 있는 아빠들이 처량해 보였다. 그들에게 리모컨마저 없었다면, 백이면 백 돌아누워 허리를 말고 잠을 청할 것이다. 리모컨의 첨단 기술은 그렇게 아빠의 위치를 보장해주는 것이 아닐까.
거실에는 대여섯 개의 리모컨이 돌아다닌다. 좀 정리가 되는 집이라면 리모컨 바구니가 있어 한군데 모아두기도 한다. 티브이 리모컨은 특히 집안의 실세가 주도하는데 나는 실세가 돼본 적이 한 번도 없다.
김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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