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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불시착 김택수 Dec 05. 2018

가을이 사라진 우리 동네

겨울만 남았다

     가을이 사라진 우리 동네에는 한밤중 변기 뚜껑 닫는 소리 때문에 크게 싸우고 집을 나온 사람이 있다.

휘청거리는 사다리에 올라 3층 건물의 간판을 제거하는 위험한 일을 하는 사람이 있고, 간판이 떨어져

쿵 소리가 날까 봐 가슴 졸이며 걸음에 속도를 내어 그 앞을 지나가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동물병원 앞에는 다리를 들어 주인에게 안아주세요라고 애원하듯 바라보는

강아지가 있다. 강아지는 주인의 마음을 움직이는 방법을 안다.

  



     겨울은 우리 동네를 시작으로 속도를 내어 마침내 도시를 삼킨다. 온통 찬 바람이 부는 우리 동네는

지난밤 빗속에 화분 하나를 훔쳐 간 사람이 산다. 그 사람은 화분과 주인의 이야기를 모른다. 그의 집 앞에는 여러 곳에서 가져온 화분이 가득하다. 나무는 잘 자라고 물을 주는 얼굴은 행복이 넘친다. 복지관에 가야 하는 선생님은 횡단보도 앞에서 안절부절 지갑을 뒤적거린다. 버스카드를 놓고 왔을지도 모른다.

그는 운이 좋았다. 빨간색 엑센트와 접촉사고가 난 1132번 버스 운전사는 운이 없었다. 사고 이후 발을

동동 구르는 손님들은 버스 운전사의 개인 사정에는 관심이 없다. 우리 동네엔 1시간 거리를 이동해

마크라메를 배우는 사람이 있다. 한 올 한 올 역어 가며 불운의 순간들을 지워간다. 마크라메 원데이

클래스를 진행하는 선생님은 잠시도 앉아 있지를 않고, 수강생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지도하며 기침을

멈추지 않는다. 말을 많이 하는 날이다. 손님이 없는 카페에는 집이 기억나지 않는다며 아내에게

전화하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기분이 좋다.

전화번호를 기억해 다행이라고 한다. 남편을 데리러 온 아내는 기분이 좋지 않다.





   우리 동네에는 책방이 있다. 책방을 하는 사람은 걱정이 많다. 걱정을 감추려고 웃는데 지금은 웃음이 나오질 않는다. 자고 일어났더니 엉덩이가 아팠다고 한다. 걸음마다 미관에 깊은 주름이 뚜렷해진다. 그는 거울이 보기 싫다고 한다. 우리 동네에는 매일 가는 책방에 매일 가는 청년이 있다. 책방 사장 행동을 보는 것이 재미있다고 한다. 그는 책방의 마감을 함께 한다. 책방 사장은 매일 막차를 타고 들어간다. 막차를

놓치면 집에 가는 길이 험하다며 테이프를 빨리 감은 화면처럼 분주하게 움직인다. 하지만 그는 막차를 놓치고 만다. 책방 사장은 엉덩이가 아파 달리지 못했다고 한다. 우리 동네에는 화분을 훔치는 사람보다 오래 산 나무가 있다. 겨울을 아는 나무는 몇 개 남지 않은 잎을 아직 놓아주지 않았다. 앞일을 모르는 잎은 나무를 떠나는 꿈만 꾸었다고 한다. 바람을 이용한 위대한 점프 기술은 배우는 것이 아니고 타고나는 것이라고 잎들은 아우성거렸다. 잎은 이제 막 나무를 떠났다. 그 비행의 끝이 아우슈비츠의 유대인처럼 부댓자루에 실려 가는 여정임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 동네에는 푸딩을 만드는 사람이 산다. 그 푸딩을 맛본 사람은 하루의 사치로 어제의 노곤함을 위로한다고 한다.


     우리 동네에 가을은 이제 없다. 제일 정형외과 대합실에는 사람이 넘쳐나고 길 건너 카페에는 손님이 없어 걱정이다. 기계 새 차에서 BMW가 나오자 담배를 끊고 달려가는 외국인 노동자가 있다.

이미 너덜너덜해진 마른 수건은 그의 손보다 돈을 벌어준다. 그에게 겨울은 쉽지 않다. 피자를 배달하는 사람도 있다. 그는 헬멧을 목에 걸고 신호를 무시하며 위험한 라이딩을 한다. 얇은 점퍼를 입고 겨울이

뭐냐는 듯 피 끓는 혈기를 낭비한다. 가파른 언덕을 오르는 손수레에는 폐지가 가득하다. 노인은 지난여름에도 지난겨울에도 같은 일을 해왔다. 겨울은 겨울일 뿐. 오늘은 점심을 두둑이 먹으리라고 주머니 속

동전을 샘 한다. 우리 동네 요구르트 아줌마는 허리가 아프고, 알바를 가는 주부는 다리를 절었다. 친구가 가게를 오픈했다며 책을 추천해달라는 사람은 황정은의 '계속해보겠습니다'를 들고 책방을 나선다.

우리 동네는 가게 하나가 생기고, 가게 하나가 사라졌다. 집을 잘 못 찾은 우편물은 몇 년째 주인을

기다린다. 녹슨 우편함에서 또 한 계절을 보내게 됐다고 한다.







illruw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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