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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불시착 김택수 Dec 13. 2018

오늘의 나는 어떤 색일까?

     버스 옆자리의 아저씨는 스마트폰으로 주식을 확인하고. 그의 색은 파란색. 얼굴이 어둡다.

여고생 셋의 수다는 버스를 흔들고. 그들의 색은 빨강, 노랑, 초록. 신호등.

신호등이 내리고 버스는 다시 조용해졌다. 지난밤, 편집일로 퇴근을 하지 못했다. 첫차를 타고 집으로 가는 내내 졸았다. 나의 색은 찌든 노란 색이었다. 오줌색.



     서둘러 잠을 원했지만 잠들지 못했다. 이럴 땐 팟캐스트를 듣는다. 이동진의 빨간책방을 들었으니

나의 색은 빨간색으로 변했다. 12시에 일어나 아내가 차려준 아침을 점심에 먹는다. 아내의 목소리는 말라 있었다. 머리 좀 깍아. 별 대꾸 없이 알았다는 의미로 고개만 끄덕였다. 아내의 목소리는 물기가 빠진 오징어 색이다. 콩자반의 검정이 내가 입은 세타의 검정과 같았다. 콩자반 몇 알을 먹고 나는 검은 색이 되었다.





     다시 버스. 전화벨은 정적을 무너뜨린 후 완준의 목소리로 바뀌었다. 오랜 영업으로 다져진 톤은 언제나 호감이 실려있다. 어디에요? 나의 위치를 묻는다. 20분 후면 도착해. 그럼 기다릴게요. 전화를 끊자마자 휴대폰 베터리가 제로가 됐다. 검정 휴대폰을 물색 에코백에 밀어 넣고 흰색 이어폰을 뺐다. 완준은 세련된 회색이라 생각했다. 버스 안으로 강한 햇빛이 사선을 그으며 존재를 드러낸다. 버스 창에 기댄 채로 물길을 역으로 따라 오르는 연어처럼 빛을 따라 고개를 들어 태양을 향했다. 눈을 감으면 빨강이 눈꺼풀을 투과하며 엷게 번진다. 그건 빨강이 아니다. 빨강에 가까우나 조금 다르다. 노랑이 섞인 빨강. 녹이 묻은 주황이다. 버스가 출렁일 때마다, 눈꺼풀에 녹이 한 커풀씩 벗어지는 느낌이었다. 그럴 때마다 엷은 핑크가 나타났다가 이내 사라진다. 터널을 지날 즈음. 꼭 잡으세요란 기사님의 목소리가 들린다. 1132번의 인사 잘하시는 기사님은 유명하다. 서울시에서 상도 받았다고 한다. 기사님의 목소리에는 코너링이 있다. 꼬~옥 잡으세요~ 안녕히 가세요~. 그 목소린 물미역의 진한 녹색이었다. 버스에서 내린다. 땅에 닿는

나의 운동화. 그것은 더는 검정이 아니었다. 운동화는 몸의 끝자락에서 한때 피부였으나 지금은 재색 부스러기일 뿐인 것들로 인한 고약한 발 냄새를 참아가며, 살아 내는 고민 만큼의 무게를 버텨내고, 굽을 꺽는 주인의 나쁜 습관으로 인해 뽀대로 뭉쳐있던 검정은 간데없고 노인의 피거죽색깔로 변해 있었다.





가을이 사라진 동네는 비린내만 남은 썩은 멸치 색이었다. 조금 걸었더니 고름같은 농한 노린 색의 피곤이 꿈틀거린다. 횡단보도 건너편, 나의 지구불시착이 보인다. 그곳은 아직 초록이 남아있으면 했다. 키미 앤 12의 그림처럼 그냥 초록이 아니고 노랑과 파랑이 어우러 그린, 빨강도 약간 섞인 노랑과 노랑이 약간 섞인 빨강이 조화로웠으면 한다. 그러나 내가 쓸 줄 아는 색은 오로지 검정뿐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조금 더 연한 검정과 약간 더 진한 검정을 겨우 구별하고 있다는 것일 지도 모른다. 오늘의 나는 어떤 색일까?









illruw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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