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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불시착 김택수 Feb 26. 2019

잊으면 안될 날의 일기

by 승민

 스무 살의 내가 남겨두었던 글과 사진을 들춰보았다. 찌질함과 촌스러움의 극을 달리고 있었다. 고작 몇 해 전인데. 시간이 더 흐르고 현재 스물세살의 나를 다시 들춰보면 얼마나 하찮을까. 지금의 전전긍긍도 전부 하찮아보일까. 이런 찌질한 허무에 젖어들고 있던 요즘이었다. 그리고 이런 나에게 찌질한 마음가짐을 끝내라는 듯, 꿀밤 한 대 꽁 쥐어맞은 것 같은 날을 겪었다. 지금 그날의 고마운 꿀밤에 대해서 적어두려 한다.


 지금의 나는 전전긍긍. 일할 때도 꿈 속에서도 아침에 눈을 뜨고도 하루가 통째로 전전긍긍이다. 나의 내적으로든 외적으로든 무언가가 쌓아올려지던 시기는 한 차례 지나가고, 요즘은 많은 것들이 무너지고 있는 시기에 놓여있다.

최근 나는 자기연민에 빠져서 내 마음만 들여다보기에 바빴다. 주변은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 챙겨야할 것들을 자꾸 놓쳤다. 가족, 돈, 친구, 인간관계 등등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불안했다. 전부 수면 위에 각자 흩어져있는 낙엽같았다. 침몰할까말까 저울질하는 듯.

나는 억울함과 자책감 사이에서 이중인격 마냥 혼란스러워하다가 그 경계 사이에서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간혹 이럴 때엔 나는 생각해왔다. 무너져가는 시기일 뿐이라고. 몰락하는 시기라고. 다음 아침이 밝으려면 몰락은 필수적이라는, 내가 읽다만 니체 책의 어느 구절을 되새겼다.

이번에도 그렇게 내 마음을 다잡았다. 그리고 내 마음에만 신경을 쏟아붓느라, 외부로의 시선을 놓치는 실수는 반복하지 않으려 애썼다. 더 노련하고 견고한 사람이 되고 싶기 때문이다. 난 할 수 있다고. 


 나는 글을 읽고, 쓰기도 한다. 커피를 마시며 울렁거리는 속을 누르기도 한다. 신경안정제에 의지도 해본다. 친구를 만나 얘기를 듣기도, 하기도 한다. 그런 방식으로 하루를 생활을 유지하면서 나 스스로를 수십 차례 다잡았다. 목이 바싹 말라가는 사람이 시간 차를 두고 한 번, 두 번, 세 번 꿀꺽 목넘김을 하듯이. 마음이 풀어질 때 쯤 다시 한 번 내 마음을 삼키고. 또 한 번 삼키고.

이러는 중에는 꼭 빠지지 않는 것이 있다. 허무다. 감정과 생각과 상황에 이런저런 살을 붙여 말을 정리하고, 합리적으로 마무리해도 틈은 벌어진다. 그 틈은 허무다. 

틈이 벌어진 걸 눈치채고 나면 사람은 무기력해진다. 뭘해도 의미없는 것 같고, 그간 의미있다 이름붙인 것에도 도통 신뢰가 가지 않는다. 내 생각을 믿을 수가 없게 된다. 틈이 점점 벌어져가는 것을 느낀다.

나는 이런 무기력에 습관적으로 빠진다. 의지박약인가. 습관적허무와 습관적무기력을 애써서 외면해야한다. 애써 외면하려 전전긍긍한다. 멀리 있는 내 믿음에 가까이 다가가려는 마음은 내 하루를 살게 한다. 그치만 언제나 전전긍긍 찌질한 지금의 나에 대해서는, 점차 믿음이 바닥을 향했다.


 술을 약간 마시고 자영이와 쭉 걸어서 집에 갔다. 삼십 분은 걸어야 했는데, 둘 다 좀 걷고 싶어 했다. 새벽날씨가 꽤 좋았다. 대로변을 쭉 타고 걸어 긴 터널도 한 번 지났다. 자영이와 대화하면 밑바닥에서 굴러다니던 생각들도 입밖으로 쉽게 나온다. 자영이는 내가 말을 잘 정리하지 못해도 기다리며 들어준다. 그리고 내가 생각하기에도 실없는 소리는 알아서 잘 걸러 들어준다. 자영이는 나와 많은 대화를 해서 잘 아는 것 같다 내 말의 방식에 대해. 

걷고 걷다 자영이집 앞 공원에 잠깐 앉았다. 벤치에 앉아서도, 나는 많은 말을 했다. 나는 언제나 자영이에게 너무 많은 말을 한다. 그리고 후에 회의감이 밀려왔다. 미안해서이다. 자영이는 미안해하지 말라고 했다. 그리고 자영이는 나에 대한 말을 이어갔다. 

자영이는 내가 사람을 볼 때 맑은 눈으로 보는 것 같다고 했다. 진심으로 보려고 하는 것 같다고 했다. 평소 나는 기분좋은 말을 들으면 입꼬리가 먼저 슥 올라가고 스스로 그걸 느낀 후에 크게 웃으며 고맙다고 하는 행동패턴이 있다. 이 땐 도저히 입꼬리가 올라가지 않았다. 순간 어딘가에 맞은 듯 멍해져서 아무 표정도 말도 지어내지 못했다. 그리곤 눈물이 줄줄 흘렀다 줄줄 줄줄. 난 살면서 들은 칭찬 중 최고의 칭찬을 그날 들은 거다.


 나는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한다. 사람 한 명을 만나는 것은 한 권의 책을 읽는 것과 비슷하다. 내가 본 것이 그 사람의 줄거리에 불과할지라도, 좋다. 혼자있는 나는 부족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나랑 닮은 모습, 다른 모습 상관없이 모두 깊이 들여다보고 내 방식대로 사람을 배워가고 싶다. 물론 마음이 더 가는 사람들이 있는 건 당연하다. 어쨌거나 내 삶의 태도로서 가장 중요한 건 사람을 깊게 들여다보는 것이다. 이건 초등학교 3학년 어느 시점부터 이러했다. 그 전의 더 어린 시절의 나는 내 세계밖에 몰랐기 때문에 당시 난 달라지고 싶었다. 뿌리깊은 외로움은 그 때 느꼈다. 따라서 난 언제나 노력해왔고, 그럼에도 언제나 부족했고, 종종 허무했다.

자영이에게 그 말을 듣고는 눈물이 줄줄 나올 수밖에 없었다. 이전에도 비슷한 말을 자영이가 하기는 했지만, 그냥 그날은 그말이 더 강하게 나에게 다가왔다. 긴 산책을 하면서 나눈 대화 끝의 말이라 그랬을 수 있겠다. 요즘같은 시기를 겪던 중 들은 말이라 더 고맙게 와닿은 것만은 확실하다.


 나는 내가 맑은 눈으로 사람을 본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사람의 단적인 면보다, 그 사람의 흐름을 들여다보려 노력한다고 생각한다. 부단히 노력한다고 생각한다. 언제나 가장 중요하지만 가장 어렵게 느끼기 때문이다. 자영이는 그런 나를 정말 선량한 자세로 바라봐준 거다. 나는 일순간 내 전부가 인정받은 것 같았다. 내 어린 시절이나 그간의 과정에 대해 자세히 얘기한 적 없지만, 위로받은 기분이었다. 고마웠다. 오히려 자영이가 맑은 눈으로 나를 대해준 것임을 안다. 그럼에도 지금 스스로 살아가는 태도에 대해 바닥을 향해가던 믿음을, 다시 위로 끌어올릴 수 있게 되었다.


 이건 며칠 전의 이야기다. 앞으로의 나는 여전히 전전긍긍이겠지만, 그걸 의미없다 느끼고 무기력해지지 않을 거다. 이날 받은 고마움은 끝까지 되새기며 가져가야지. 후에 모든게 무너져도, 그 사이에서 반짝이고 있을 의미는 이렇게 또 하나가 생겼다.



 




by 승민

instagram @seungmm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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