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햄버거가 그렇게 크데…
남자들 틈사이에 자란 저는 소녀에 대한 동경과 미지의 행성과 같은 막연한 신비로움이 있었습니다. 별처럼 늘 곁에서 반짝거리며 또렷하지만 막상 가까이 갈 수 없는 그런 존재. 밥은 새 모이만큼만 먹고, 화장실은 보름에 한 번씩 간다는데 직접 봤다는 사람을 만난 적은 없어요. 달보드레한 피부에선 베이비파우더 냄새가 은은하고 그래서인지 땀도 흘리지 않고, 그 모든 것이 눈물이 되어서 사소한 일에도 잘 운다고 들었습니다.
일기장의 빈페이지를 수시로 채워가며 밤잠을 설치게 했던 소녀가 드디어 독서실 앞 계단에 서서 저에게 빙그레 웃어줬을 때, 몸이 하늘로 붕~떠오르는 것을 경험한 이후로는 더욱 신묘한 존재로 여기게 되었죠. 저는 분명히 몸이 가벼워지면서 발이 땅에서 미세하게 떨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아~ 소녀. 중력을 지배하는 순수한 힘의 결정체.
저는 몇 해 전부터 다니던 직장을 관두고 주변으로 아파트로 둘러 싸인 오래된 상가 건물에서 카레나 우동 같은 간단한 음식을 내놓는 작은 식당을 혼자 꾸려 나가고 있습니다. 대개는 동네 사람들과 학생들이 일상적으로 찾아오는 동네마다 하나쯤 있어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식당이에요.
이 식당을 열기 전까지는 소녀를 추앙하는 저의 마음은 한결같았고 변함이 없었습니다. 정말...
시험이 끝나면 여고생들이 참새떼처럼 이 식당을 한차례 머물다 갑니다. 바쁘게 답안을 서로 맞춰 보는 모범생들이 있는가 하면, 이미 사복으로 갈아입은 소녀들이 서로를 거울삼아 화장을 고쳐 주기도 합니다. 시험기간 동안 시달린 마음을 과식으로 스스로에게 보상하는 소녀와 학업 스트레스와 상관없이 원래 많이 먹는 소녀. 만약 제가 식당을 하지 않았다면 소녀들이 그렇게 욕을 차지게 하는지 영원히 몰랐을 거예요. “야! 가자 가자…’ 막 들어오려던 남학생들이 이 광경을 보더니, 시척지근한 표정을 지으며 다른 곳으로 가버립니다.
어떤 소녀는 저보다 목소리가 우렁차고, 어떤 소녀는 털털한 걸음으로 아무 데나 널브러집니다. 그리고 어떤 소녀는 식사도중 화장실을 갔다가 개운한 표정으로 돌아오고, 어떤 소녀는 팔을 괴고 상냥하게 저를 바라보는 일도 가끔 있지만, 또 어떤 소녀는 우연히 저와 눈이 마주쳤을 뿐인데 왜 저래~ 하는 표정으로 저를 무안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나 서울대 갈까?” “거긴 두 번 갈아타야 하잖아. 힘들어!” “맞아. 그냥 케임브리지에 가서 기숙사 생활을 하는 게 좋겠어” “그래! 미국은 햄버거가 그렇게 크데…” “아! 맞아 맞아. 까르르~ 까르르~”
케임브리지 대학은 영국에 있다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껴들었다가 어떤 봉변을 당할지 모릅니다. 소녀 셋 이상 모였다면 저는 보고도 봤다고 못하고, 들어도 들었다 내색해서는 안 됩니다. 그랬다가는 입이 가벼운 꼰대 아저씨로 찍혀 영원히 영혼이 털릴 수도 있습니다. 식당 주인으로서 소녀의 비밀을 지켜야 하는 일종의 숙명이랄까. 황순원 소설의 ‘소나기’의 원제가 ‘소녀’라는 걸 아시나요? 다시 한번 더 강조하지만 저는 여자 형제 하나 없이 남자들 사이에서 자라, 소녀를 순백의 표상으로 여기는 마음이 분명히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무너집니다.
오후에도 여전히 잘생기고 장발이 잘 어울리는 도넛 가게 청년이 들어섭니다. 일순간 이곳을 참새 방앗간으로 만들어 놓았던 소녀들이 일제히 먹이 활동을 멈추고 갑자기 다소곳해져요. 청년은 거침없이 소녀들 사이로 성큼성큼 걸어가 빈자리에 앉습니다. 양옆의 소녀들이 속으로 환호하는 게 보입니다. 저는 작은 선풍기를 청년을 향해 조준합니다. 긴 머리카락이 날려요. 그 모습에 소녀들은 나직이 술렁거려요. 마치 소설 소나기에 등장하는 소녀같이. 그리고 저는 투명 인간이 되었습니다. 이것도 저에게는 놀라운 경험이에요.
원래 많이 먹던 소녀도 못내 수저를 얌전히 내려놓네요. 저는 눈치도 없이 평소처럼 “밥 더 줄까” 했을 뿐인데 소리는 내지 않고 입모양으로만 “아니요!”라고 짧게 대답합니다. 그러고는 저는 그만 빠지라는 듯 떨떠름하게 빤히 노려봅니다. 이 소녀도 청년을 의식하고 있었나 봐요. 그래도 요놈에게는 제가 잠깐 보였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