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보이 율이는 킥보드를 타고 휙~하니 지나갑니다
어떤 날에는 둘러 둘러서 여유를 부리며 식당을 향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평소에는 무심코 지나쳤던 풍경들이 눈에 들어와요. 담장을 타고 넘어오는 봄 넝쿨, 툭 튀어나와 발끝에 걸리는 깨진 보도블록, 조경을 위해 놓인 큰 바위는 이끼들이 그림자처럼 번지며 자라나 이제는 원래 있었던 것처럼 되었습니다. 마을도 나이를 먹어야 살맛(살고 싶은 맛)이 나는 것 같아요. 이곳도 한때는 굽어진 길 하나 없는 반듯한 아파트 단지였지만, 사람들이 자주 다닌 곳에는 샛길이 만들어지고, 지각한 아이들마다 넘었던 담장은 자꾸만 허물어 낮아지며 허리 굽은 노인처럼 나이가 들어갑니다.
신도시로 이사한 친구의 아파트에 갔을 때, 고층 아파트 정원의 잔디는 눈으로만 봐야 했고, 공동 출입문 키오스크 앞에서는 촌스럽게 머뭇거리기도 했습니다. 아파트와 연결된 상가에서는 내부는 마치 100년 된 곳처럼 꾸며 놓고, 입구에는 ‘신장개업’이라고 써 붙인 가게들이 많았어요.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낮고, 낡은 상가에서 식당을 하는 저는 오차 없이 가지런한 그 모습이 사실 조금 부럽기도 했습니다.
항상 새 소식을 전하는 초등학교 4학년의 율이가 오늘도 킥보드를 타고 휙~하니 지나갑니다. 저도 쫓아서 상가를 한 바퀴 돌아봐요. ‘떡 팔아서 빵 사 먹어요~’라며 천진하게 웃는 떡집 사장님은 오늘도 커피와 빵을 드시며 창밖의 아침을 바라보고 계세요. 다른 식당에서는 어제 남은 밥과 반찬으로 솜씨 좋게 김밥을 말고 계시고. 이게 별미입니다. 저도 한 줄 얻었어요. 항상 유쾌한 마카롱 자매는 김치전을 부치며 ‘우리가 마카롱~한 느낌으로 생기진 않았지. 그치?’ 빠른 인정에 다 같이 웃음이 터집니다. 말씀은 그렇게 하시지만, 여기 마카롱은 친구에게 선물을 할 만큼 맛있어요. 작은 화분에서 방울토마토 세 개가 감칠 나게 익었네요. 아침마다 까치가 먹기 전에 제가 따 먹어요.
벌써 상가를 한 바퀴 돌고 온 율이가 제 앞에 킥보드를 멈춰 세우고 오늘의 뉴스를 전합니다. “아저씨 오늘은 개교기념일이에요! 아이들이 많이 올지 몰라요~” 오전에 밥을 넉넉히 해 둬야겠습니다. “오늘은 개교기념일~ 오늘은 개교기념일~” 율이가 빠르게 소식을 전하며 멀어집니다. 오늘은 카페가 쉬는 날. 파스타 형님이 밤새 바람에 시달린 카페 화분을 제 것처럼 돌봐주고 계세요. 저를 발견하시고는 머신을 테스트한다고 내려놓은 산미 가득한 커피 한 잔을 또 건네주십니다. 아, 분식점 아저씨는 벌써 취하셨네요. 오토바이를 타셔야 하는데 늘 걱정입니다.
주어진 만큼 형편 것. 가진 만큼 재주껏. 작은 가게를 운영하는 성실한 사람들입니다. 처음의 허세 같은 건 순박해서 금방 들켜버리고 욕심이 많은 사람들은 이미 떠났습니다. 오랫동안 그것만 하다 보니까 저절로 손맛이 생겨버린 정직한 사람들이에요. 갑자기 내린 비에 먼저 본 사람이 파라솔을 접어주고, 처음 보는 아이들에게도 쉽게 우산을 빌려주는 다정한 이웃들입니다. 요즘 손님이 많이 줄었지만 여전히 단골들은 저의 식당에서 한 끼를 해결하고 마카롱 자매가 만든 디저트를 먹고 카페에서 차를 마십니다. 그러니까 질투나 경쟁 같은 건 하지 않아요. 손님이 뜸할 땐 다 같이 한가해지니까. 또 남은 밥으로 김밥을 말고, 김치전을 부쳐서 나눠 먹고, 방울토마토나 따 먹으면 되죠.
율이를 다찌 끝에 끌어 앉힙니다. 그리고 카레를 내줘요. “율아, 오늘 손님 많이 오게 해 주세요. 하며 기도하는 마음으로 먹어줘” 순수한 아이의 마음을 이용해 일종의 기우제 같은 걸 지내는 겁니다. “아저씨가 기도하면 안 돼요?” “어, 벌써 아저씨는 하나님께 너무 많이 징징댔어” 율이가 이해했다는 듯 입을 꾹 다물어요. 두 개의 큰 앞니가 마치 토끼처럼 다문 입술 사이로 보여요. 그리고 한술 한술 정성껏 카레를 먹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