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 끓인 카레는 조금 그래요
누가 종이비행기를 날렸을까요. 갑자기 가슴이 뜁니다. 화단에서는 나무가 소리를 내는 줄 알고는 깜짝 놀라 자세히 들여다봤더니, 피어난 꽃들 사이사이에, 생기 있게 뻗은 가지마다마다 참새들이 숨어 앉아 있네요. 나무 밑동에도 이름으로 불린 적이 없을 것 같은 야생초가 소중한 자태로 돋아 나옵니다. 아이들은 왠지 신이 나요. 그리고 누가 가르친 적도 없는 엇박자의 발구름을 서로 맞춰가며 뜁니다. 구구단은 저절로 외워집니다.
지브리 피아노 연주곡을 틀어 놓고 오픈 준비를 합니다. 하지만 눈길은 창밖을 향해요. 해가 드리워진 초록과 초록들. 느리게 느리게 걷는 사람들과 빙글빙글 돌아가는 깨진 이발소 사인볼. 누가 부르지도 않았는데 이 앞을 몇 번이나 나가보게 돼요. 저편에서 어린이집 병아리들이 꼬물꼬물, 아장아장, 아침 산책을 해요. 통통한 다리를 나름 성큼성큼 뻗어 보는 아기. 막 출근하시던 카페 사장님께 “아 오늘은 가게 문 닫고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요”라고 했다가 또 철없는 소리 한다며 혼이 나고. 휙~하니 다시 가게로 돌아와 멈춘 음악을 리플레이
지난 영하의 겨울에는 봄이 되면 누구와도 새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멀리 사는 친구들만 자꾸 보고 싶고, 이상하게 한 번도 만나 보지 못한 사람이 그리워요. 아이유, 김연아, 츠바킬의 레나... 날씨 탓인가? 이제 계절을 타는 나이가 된 걸까? 그렇다면 나는 남자인데 가을을 타야 하는 게 아닐까? 하다가. 이 봄을, 봄바람을 온몸으로 맞이하려면 오토바이를 타야겠다는 엉뚱한 생각으로 이어지고. 막상 아무것도 제대로 타지 못하고 아무 데도 가지 못하고 그냥 햇볕에 자주 나가 있었어요.
손님들도 저처럼 자기 속만 들여다보고 있는지, 일행과도 대화가 없고 천천히 나가는 음식에도 재촉하지 않아요. 봄에는 타인에게 관대해지는 걸까? 아니면 무심해지는 걸까? “아저씨, 오늘 카레는 조금 탄내가 나는 것 같아요” 고작해야 마음 한끝의 정성인데 살짝 뿌려야 하는 검은깨가 돈부리 위에 쏟아지고, 오믈렛을 적당히 익히지 못합니다. 오늘은 턱을 괴고 창밖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멍 때리다가 그만 카레를 누릿하게 태웠습니다. “봄에 끓인 카레는 조금 그래요.” 저는 뻔뻔하게 대답합니다. 그러고 보니, 단골이란 저를 닮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나와 취향이 비슷해 이 공간을 자주 찾게 되고 입맛뿐만 아니라 계절을 느끼는 마음까지 비슷한. 그래서인지 저의 엉뚱한 대답에 어떤 반문도 없어요.
남쪽에서는 좀 더 일찍 개화를 시작한다니까. 내년에는 내 고향 부산에서 출발해 조금씩 조금씩, 북으로 북으로 유목민처럼 살아도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려면 식당을 푸드트럭에 싣고 다녀야겠습니다. 다른 건 하지 말고 오로지 카레만 끓여야겠다는 구체적인 계획도 세워봅니다. 저는 꽃을 쫓아 움직이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손님들은 소풍이라도 온 듯 나무 아래서, 꽃들 옆에서 카레를 드시겠네요. 아, 낭만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