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같이살이 : 혼자이지 않은 삶
나의 주민등록증의 뒷면에는 그간 살았던 거주지 목록이 빼곡히 기록되어 있다.
이사를 많이 다닌 탓에, 뒷면에 기록 공간이 부족해서 가장 최근의 주소만이 적혀있는 상태였다. 마치 또다시 새로운 주소를 추가할 준비라도 한 것과 같이.
“아파트에는 처음 살아 봐.”
결혼 후 신혼집에 입주할 때 남편은 뿌듯함에 찬 목소리로 나에게 말했었다.
“결혼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나는 아파트에 살 일이 없었을 거야. 너는 나에게 그런 존재야.”
남편이 나에게 한 말이었지만 어쩌면 그것은 내 마음의 소리이기도 한 말이었다.
나는 어릴 적 아파트에 몇 번 살았었지만, 한곳에 오래 정착하지 못하고 계속 이사를 다녔었다. 마지막으로 아파트에 살았던 기억은 고등학생 때였다. 그 후로는 연립 주택이나 상가 건물에 살기도 했고 자취를 시작했을 무렵부터는 주로 좁고 작은 공간에서 거주하는 것에 상당히 익숙해져 있었다. 남편 또한 일터에서 마련되는 숙소나 작은 형태의 거주 공간에서 쭉 생활했기에 비슷한 처지였다. 남편과의 결혼 덕분에 나는 다시 아파트에 살 기회를 얻은 것이다.
우리의 신혼집은 20평 남짓의 복도식 구축 아파트였지만, 이 공간은 우리 부부의 첫 집이자 두 사람의 최근 거주지 중 가장 넓은 집이었다. 그만큼 결혼의 힘은 참 대단하다. 혼자 살았다면 그저 내 몸 하나 누일 정도의 공간만 있으면 거기서도 충분히 살았겠지만, 두 사람이 정식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는 기념비적인 순간을 맞이하며 자연스럽게 제대로 된 거주 공간을 마련하게 되니 말이다. 결혼하면 어른이 된다는 말은 이런 걸 두고 말하는 것은 아닐까?
도시살이 시절 퇴근길에 수많은 불빛을 보며 저 많고 많은 집 중 내가 살 집 하나 마련할 수 없는 처지가 늘 아쉬웠었다. ‘서울에서 태어나는 것도 스펙’이라고 할 정도로 집값이 치솟아 지방에서 상경한 자취생에게 ‘내 집 마련’이란 감히 꿈도 꿀 수 없었다. 신혼집에 입주하면서 우리는 바다의 도시, 부산 시민이 되었다. 광역시지만 지방이기에 전세로 집을 마련할 수 있었다. 최대 4년까지 살 수 있는 전셋집이었으나, 워낙에 집주인 복이 없는 나의 주거 불안에 대한 징크스는 이번에도 통했다. 신혼집 재계약에 실패한 것이었다. 4년 거주의 목표를 이루지 못해 나는 크게 상심했지만, 남편은 위기를 기회로 만들었다.
“오히려 좋아. 이왕 이렇게 된 거, 그냥 집을 사버리면 되잖아?”
혼자였다면 결코 쉽게 내리지 못했을 결정. 우리가 부부였기에 가능했던 결정이었다.
혼자였을 때는 또다시 머물 곳을 찾아 홀로 거리로 나왔겠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남편과 둘이 함께 거주할 두 번째 집을 찾아 나섰다. 우리는 운 좋게도 첫 신혼집보다 조금은 더 크고, 더 최근에 지어진 집을 매매하게 되었고, 모든 과정이 순조롭게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전체적인 내부 인테리어를 거쳐 무사히 입주를 앞두게 되었다.
이번이 마지막 이사가 되게 해줄게.
연애 시절 항상 나의 이사를 도와주었던 남편. 나의 마지막 이사를 남편은 도와준다. 그러나 이번 이사는 나를 도와주는 것이 아니다. 남편에게도, 나에게도, 어쩌면 마지막 집이 될 우리의 보금자리에 우리는 함께 이사를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