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나에게 #9
아빠는 직업상 출장이 많았더.
회사가 있는 도쿄에서 홋카이도로 출발, 밤에 본가가 있는 니이가타에서 볼 일을 본 다음 아침에 후쿠오카로 날아갔다가 다음 날에는 나고야.
그런데 집에 들고 온 과자는 히로시마에서 파는 만쥬.
알고 보니 신칸센으로 히로시마와 오사카를 들러 도쿄로 왔다.
그런 사람이다.
엄마는 아빠가 현재 어디에 있는지는 잘 파악을 못하고 있었고(지금처럼 라인도 카톡도 없으니 아빠도 공유를 잘 안 했을 것 같다) 딸 세 명도 아빠가 집에 없는 게 당연하다고 여기는 편이었다.
솔직하게 얘기하자면 주말에 아빠가 있으면 조금 어색하기도 했었다.
그런 아빠와의 어릴 때의 기억은 사실 많지 않다.
여행을 데려가 주기는 했지만 아빠는 여행을 가서도 계속 핸드폰으로 업무전화를 했었고 여행지에서 같이 돌아다니는 건 언제나 엄마였다.
물론 그런 업무들 덕분에 여행도 갈 수 있었고 셋 다 무사히(?) 대학교까지 졸업하고 각자 갈 길을 갈 수 있었으니 감사함은 늘 가지고 있으나 엄마는 불만이 많았을 수밖에 없고 솔직히 화목한 가정과는 거리가 멀었다.
끈끈한 여자 넷에 바쁜 아빠 혼자.
그런 느낌이었다.
그래서 아빠 생각을 하면 복잡하다.
그런데 딱 하나.
내가 아빠와의 대화까지 기억하는 일이 있다.
몇 살이었는지 기억이 안 나지만 산타할아버지에게 뭘 받고 싶냐는 질문을 아빠한테서 받았을 때였다.
나는 그때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망원경을 갖고 싶다고 했다.
그걸 들고 공원에 가서 새를 볼 거라고.
엄마도 언니도 이상하다고 웃었다.
엄마는 '네가 새를 보러 밖으로 나갈 것 같지는 않다'라고 했다.
(엄마는 나를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빠는 이렇게 말했다.
'그런 취향은 참 좋다고 생각해.'
나는 그 말이 기뻤다.
평소에 어떤 아빠인지 얼마나 육아에 참여하는지 등 아무것도 생각이 안 나고 그냥 기뻤다.
얼마나 기뻤는지 30년을 그대로 기억하고 있다.
나에 대한 이해도는 엄마가 확실히 높았지만 그냥 내 말을 인정해 준 아빠도 지금 생각해 보니 정말 고마운 존재였다.
결국 망원경은 받지 못했다.
내 마음이 자연스럽게 바뀐 건지 엄마가 설득했는지 기억은 잘 안 난다.
대신에 뭘 받았는지도 모르겠다.
그냥 마음은 망원경을 받은 것 같다.
어제의 너에게
근데 새는 왜 보고 싶었을까.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아이의 발상은 정말 신기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