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나에게 #10
하기 싫은 게 뭔지는 정확하게 알면서도 하고 싶은 건 늘 잘 모르는 그런 시절을 오랫동안 보낸 것 같다.
어쩌면 지금도 그런 시절에 포함될 수도.
뭘 해도 오래 가지 않고 뭘 해도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의구심부터 가지게 되는.
그렇다고 열정적으로 꿈꾸는 무언가가 있지도 않았다.
이 이도저도 아닌 내 이력들이 어떻게 보면 나에게는 가장 수치스럽고 아픈 부분일 수 있다.
나는 오랫동안 음악을 했었다.
음악을 접한 건 태어나자 마자였던 것 같다.
두 살 차이 나는 언니가 두 돌 때 음악 교실을 다니게 되었고 나는 늘 엄마 등에서 그 수업에 참여했다고 하니(엄마는 시집살이를 했지만 나를 봐줄 사람은 없었다고 한다) 조기 교육 끝판왕이라 할 수 있겠다.
나도 3살부터 어찌어찌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피아노를 쭉 배웠었고 학교에서는 기타나 색소폰도 배웠다.
동창들 중에는 프로 연주자나 음악 관련 직업을 가지게 된 친구도 많다.
하지만 나는 실력적으로도 내 의욕적으로도 음악을 직업으로 삼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의욕이 부족하니 즐길 수도 없고 늘 한계를 보면서 피아노를 치는 게 고통스럽기도 했다.
그럼 뭐 해볼까.
내가 중학교 때부터 좋아했던 건 영화였다.
다큐멘터리도 좋아했고 전쟁영화도 좋아했다.
감동도 웃음도 주면서 뿌리 깊은 문제들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의 힘은 대단하다고 느꼈었다.
그래서 대학교에서는 영화나 저널리즘을 공부해보려 했다.
나름 열심히 준비해서 영화학과로 진학했다.
하지만 여기서도 벽에 부딪혔다.
작품에 대한 평가를 가지고 시기 질투를 하는 친구들, 그리고 밤새 이어지는 편집 작업.
필사적으로 인맥을 쌓아야만 조수로라도 현장에 들어갈 수 있는 시스템.
나는 학교를 다니는 내내 아팠다.
그래서 휴학을 했다. 지금 생각해도 좋은 선택이었다.
문제는 휴학을 하면서도 나를 몰아갔다는 점이다.
어렵게 들어간 대학교를 휴학한 만큼 더 큰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시달려 열심히 영어를 공부했고, 또 아르바이트도 하면서 시험을 보고 미국으로 가게 되었다.
어딘가 안일하고 어딘가 엉뚱하고 스무 살인 내가 생각할 만한 일인 것 같다.
미국에는 1년 동안 있었는데 수업에 따라가는 것도 힘들었고 상상했던 특별한 활동도 못하고 숙제만 하다가 지나간 것 같다.
하지만 여기서 나는 중요한 사실과 마주치게 되었다.
미국이라는 일본도 한국도 아닌 곳에 한국 국적인 내가 나가보니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혼란이 왔다.
나는 일본에서 왔지만 여권은 한국이고 이름도 한국인 이름이고.
하지만 한국인 학생들은 나를 일본인으로 보고. 일본인 학생은 나는 한국인으로 보고.
내가 뭘까. 싶었다.
그리고 이게 내 근간에 있는 문제인 것 같았고 이 문제가 해결되어야 내 도피와 방황을 멈출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일본으로 돌아간 다음부터 본격적으로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이 공부가 내 인생의 방향을 정해준 것 같다.
한국어로 소통이 가능해지니 조금씩 내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그냥 한국에 사는 인간'이 된 것 같았다.
아예 도피와 방황을 끝낼 힘까지는 없었지만 '천천히 둘러보며 걷기'정도를 가르쳐주는 툴이 생긴 느낌이다.
한국어는 지금도 공부 중이다.
내가 해온 공부와 업무는 모두 한국어와 관련이 있고 무엇보다 매일 접한다.
즉 매일 부족함을 느끼면서 매일 작은 좌절감도 느끼면서 또 매일 나를 칭찬할 수 있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그만두든 계속하든 잘 풀리는 건 없는 것 같다.
항상 도전과 실패를 하면서 핑계도 대면서 합리화도 하면서 지낸다.
과거에 대한 수치스러움은 계속 안고 가야 한다.
그것까지 포함해서 내 인생이다.
어제의 나에게
또 핑계를 하나.
처음 살아보는 인생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