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출간된다고 해서 인생이 바뀔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먼저 책을 낸 사람들의 이야기만 들어보아도 그랬다. 서점가를 휩쓰는 초대형 베스트셀러가 되지 않는 이상, 자신의 책이 출간된다는 몇 달 동안의 설렘이 전부일 거라 나도 생각했었다. 아내의 책이 이른 은퇴를 희망하는 사람들의 교과서 같은, 은퇴를 하기로 마음을 먹은 사람이라면 꼭 한번 읽어봐야 하는 필독서 같은 책이 되어 사람들의 입에 꾸준히 오르내리면서 스테디셀러가 된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역시나 로또 당첨처럼 기대 없는 바람이었다.
하지만 방송은 다를 거라 생각했다. 방송 출연 이후의 삶은 출연 전과는 다를 거라고 상상했다. 유퀴즈라서 더욱 그랬다. 유재석이 궁금해하고 조세호가 맞장구를 치던 아내의 이야기가 방송을 통해 소개가 되면 아내는 단숨에 유명인이 될 거라 믿었다. 몇 달전 유퀴즈에 출연했던 정유정 작가의 소설들이 방송 이후 한동안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키는 모습을 보면서 방송의 힘을 실감했었다. 상상이 뻗어나갔다. 이제 아내의 책, <마흔, 부부가 함께 은퇴합니다>도 교보문고 베스트셀러의 한 자리를 차지할 테고, 우리가 자주 다니던 밥집, 카페에서 아내를 알아본 사람들의 수군거림에 눈인사라도 할지, 모른 척 외면할지를 고민할 테고, 아내의 두 번째 책을 출간하겠다며 줄을 선 출판사들에 번호표라도 나누어 주어야 할 테고. 상상이지만 현실일 거라 믿었다. 유퀴즈의 힘은 그렇게 대단할 거라 생각했다.
방송의 힘은 생각보다 미미했고 방송 출연의 효과는 기대에 어긋났다. 인터넷에 ‘유퀴즈 파이어족’을 검색하면 각종 뉴스와 카페의 게시글, 블로그에서 아내를 볼 수 있었다. 몇 페이지에 걸친 검색 결과에 나오는 사진 속에서 아내는 유재석, 조세호와 함께 웃고 있었지만, 그뿐이었다. 책 판매량은 큰 변동이 없었다. 방송을 본 대부분의 사람들은 절찬리에 판매 중인 아내의 책을 몰랐다. 아내의 책에 ‘유퀴즈 출연, 화제의 작가’라고 쓰인 띠지라도 둘렀으면 했지만, 그것도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 tvN은 ‘유퀴즈’라는 단어가 들어간 광고 행위를 금지했고, 출판사는 그런 tvN에 맞서지 않았다.
방송의 힘이 아예 없었던 건 아니었다. 아내가 다니던 병원의 간호사에게 방송 잘 보았다는 인사를 들었고, 10년 넘게 연락이 끊어져 있던 중학교 동창의 이메일을 받았다. 브런치 구독자 수도 조금 늘었고. 또 뭐가 있었더라.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은퇴에 관한 강연 요청이 몇 군데 들어오긴 했는데, 은퇴를 주제로 한 강연은 처음부터 하지 않기로 했었던 터라 들어온 요청은 모두 거절했다.
행동에는 보상이 따르고 보상이 어떨지에 대한 기대가 품어 지고 그렇게 제멋대로 커버린 기대는 늘 실망을 부른다. 유퀴즈 방송 출연 이후 달라진 건 없었다. 두 번째 책을 내자며 줄을 선 출판사는 없었고, 밥집이나 카페에서 사람들의 수군거림도 들리지가 않았다. 기대는 진작 가라앉았고, 바람은 이제 내려놓았다. 방송의 흔적은 유재석과 조세호의, 건강하고 행복하라는 그리고 반가웠다는 인사와 사인이 적혀있는 유퀴즈 큐시트로만 아내의 책상 위에 잘 놓여있다.
먼저 책 계약을 하고, 원고를 쓰고, 퇴고 과정을 거쳐 책이 출간되고, 이후 각종 매체에 출연하고 그에 따라 책이 판매되는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세상일 참 쉽지 않다’라는 걸 다시 한번 느꼈다. 아내가 맞닥뜨렸던 쉽지 않은 세상일 덕에 당시 출간 준비 중이었던 내 책, <조금 이른 은퇴를 했습니다>에 대한 기대가 저 혼자 높이 날아 올라가지 않도록 커다란 돌덩이 하나를 매어 놓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