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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현 Feb 14. 2022

출간 과정은 복잡하지 않았다.

9월, <조금 이른 은퇴를 했습니다> 책의 초고가 완성되었다. 아내를 만난 이야기, 그리고 은퇴를 마음먹고 준비하는 과정, 이른 은퇴, 은퇴 이후의 삶, 낯선 동네로 떠난 이야기로 뼈대를 잡았다. 그 사이사이에 평소 아내와 내가 하던 생각들, 일상의 모습들, 둘의 이야기로 살을 붙였다. 지난 10년 동안의 이야기를 11만 자에 담았다. 10년의 시간이 단 한 권 책에 담겼다는 건 한편으로는 조금 허무한 느낌도 들었다. 11만 자를 10년, 3,650일로 나누어보면 하루에 고작 30자. 나의 하루, 24시간이 단 30자만으로 표현되는 헐거운 삶을 10년 동안 살아 온건가. 이런 쓸데없는 걸 계산하고 있는, 이과생인 내가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즈음 아내는 장강명 작가의 에세이 <5년 만의 신혼여행>을 읽었다. 3박 5일 일정으로 보라카이를 다녀온, 뒤늦은 신혼여행 이야기였다.

‘3박 5일로 책 한 권이 나온 거야? 난 내 책에 10년을 갈아 넣었는데.’

나도 결혼 전, 아내와 함께 보라카이를 다녀왔었다. 기간도 장강명 작가보다 하루 더 많은 4박 6일이었다. 하지만 그 여행에서 남긴 거라고는 사진 몇 장과 스쿠버다이빙 어드밴스드 자격증, 그리고 숙소를 나설 때마다 입구에서 패러세일링을 ‘낙하산’이라는 분명한 한국 발음으로 외치며 호객행위를 하던 필리핀 아저씨에 대한 기억뿐이었다. 그 4박 6일간의 기억을 늘어놓는 건 문장 하나면 충분했다. 그나마도 보라카이를 다녀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었을 평범하고 밋밋한 경험들. 그런데 그는 고작 보라카이 3박 5일로 책 한 권을 써냈다. 그것만으로 존경 비슷한 감정이 피어났다. 그와 나의 작가로서의 위치가 3박 5일과 10년의 차이처럼 멀게 느껴졌다.




초고를 출판사에 보내고 난 후, 책에 들어갈 사진을 모았다. 사진은 대부분 아내가 찍었다.(내가 찍은 사진들이 아내 사진에게 밀린 건, 내 것보다 최신인, 고성능, 고감성 카메라를 탑재한 아내의 아이폰 탓이다.) 아내와 나의 옆모습, 뒷모습이 들어간 사진도 몇 장 포함했다. 얼굴이 드러나는 정면의 사진은 괜히 민망해서 뺐다. 아내도 나도 나이만으로 빛이 날 2030은 한참 전에 지났다. (나중에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의 PDF 파일엔 내 모습이 담긴 사진이 없었다. 아내의 모습은 2장이 들어갔다. 내 책인데 내가 없다. 내 사진이 아내 사진에 밀린 건, 아내보다 여섯 살이나 더 많은 나이 탓이다.)


‘낯선 동네에서 살아보기’ 매거진을 쓰면서 아이패드로 그렸던 제주 그림을 사진과 함께 출판사로 보냈다. 이제 내가 할 일은 끝났다. 글, 사진, 그림. 출판사가 요구했던 모든 것들을 미리 약속한 시간에 넘겼다. 후련했다. 이제 퇴고라는 이름의 전쟁을 출판사와 한바탕 치르면 된다.

‘시서화가 담겨있는 책이 될 거야.’

‘시? 그림 말고 시도 있었던가?’

아내는 고개를 한번 갸우뚱하더니 책에 들어간, 나를 문학청년으로 포장했던 시 한 편을 기억해 냈다.

‘아. 그 잠 못 이룬다는 시. 그러네. 시서화.’

스스로도 기특했다. 시서화가 모두 들어간 책이라니. 내가 이렇게나 감성이 충만한 이과생이었는지는 나 역시도 몰랐다.


열흘 정도가 지나고 출판사에서 초고 확인을 마쳤다는 연락이 왔다. 긴장이 됐다. 아내의 책, <마흔, 부부가 함께 은퇴합니다>를 쓰면서 아내가 치렀던 출판사와의 퇴고 전쟁이 떠올랐다. 내 초고는 얼마나 많이 뜯어고쳐지려나 했는데 출판사의 답변이 뜻밖이었다.

‘작가님, 글이 참 마음에 들어요. 저희가 괜히 건드려서 문체 망가지는 것보다는 수정 없이 작가님 문체 유지하는 게 좋겠어요.’

출판사에서는 별다른 퇴고 작업 없이 오탈자 검사만 하겠다는 뜻을 보였다. 퇴고는 없다. 전쟁은 없다. 문체를 유지한다. 보낸 글 그대로 책이 나온다. 그런데, 그래도 되나.


생각은 하루가 바뀔 때마다, 시간이 지날 때마다 요동쳤다. ‘무라카미 하루키도 퇴고 때문에 편집자와 싸운다던데 내 책은 퇴고 없이 나간다고?’ 그러다가도, ‘내 문체 망가질까 봐 걱정된다니. 그치. 문체 망가지면 안 되지.’ 하며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가다가도, ‘혹시 바빠서 문체 핑계로 내 책은 신경 안 쓰려는 건 아닌가?’ 하는 불안한 마음이 밀려들다가도 ‘내 문체가 어떻길래 망가뜨리지 않으려 하는지 그때 물어봤어야 했는데.’ 하면서 마음은 반으로 나뉘고 양쪽으로 갈려 널을 뛰었다. 이유가 무엇이 되었든 이제 퇴고도, 전쟁도 없다. 문체가 유지된 채로 책이 나온다. 정말 그래도 되나.

.



 책이 나오는 과정은 복잡하지 않았다. 9월 초고를 보내고 두 달이 넘도록 출판사에서는 단 한 번의 연락이 없었다. 출간 계약서에 적힌 ‘12월 말까지 책을 출간한다.’라는 문구대로 정말 12월에 책이 나오는 게 맞는지도 의심스러웠다. 아내는 진행과정을 출판사에 물어보라 했지만, 출판사 쪽에 조바심을 보이기 싫었다. 기다림이 계속되던 12월, 출판사에서 책의 본문이 실린 PDF 파일을 보냈다. 본문 디자인은 깔끔했다. 아내가 찍은 사진과 내가 직접 그린 그림도 원래부터 제 자리가 정해져 있었던 듯 알맞은 위치에 자리 잡고 있었다. 수정하고 싶은 부분을 알려달라길래, 내 모습이 들어간 사진도 책에 한 두 개 정도 들어가면 좋겠다고 말하려다가 관두었다.


서너 번의 메일로 프롤로그, 에필로그, 저자 소개 글이 오고 갔고, 표지 디자인이 정해졌다. 출판사와 내가 원하는 책의 모양새는 같은 곳을 바라보았고, 의견이 부딪히는 일은 없었다. 먼저 출간 경험을 한 아내는 출판사와 나, 서로 간의 간결한 피드백을 낯설어했다. 그렇게 어려운 고비 없이 마지막 인쇄를 포함한 모든 과정이 끝이 났다. <조금 이른 은퇴를 했습니다>의 제목을 단 책은 12월 27일 온라인 사전 판매가 시작되었고, 12월 31일 정식으로 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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