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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현 Mar 19. 2022

아내의 책 출간기.

겨울을 싫어했다. 아파트 단지의 단풍이 물들고 조금씩 연말의 들썩들썩한 분위기가 느껴지면 이번 겨울은 또 어떻게 버티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두꺼운 옷으로 단단히 무장을 해도 파고드는 한기에 몸이 식었다. 몸이 식었다고 느꼈을 때 바로 데우지 않고 20~30분 방치하면 여지없이 몸살이 났다. 한번 몸살이 나면 두꺼운 이불속에 전기장판의 온도를 최대로 올리고 들어가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왜인지 심한 한기가 느껴졌고, 그렇게 24시간은 오들오들 떨고 나야 괜찮아졌다.


이번 겨울은 동남아를 가려했었다. 재작년 겨울엔 코로나에 잔뜩 겁을 먹고선 어딘가 가볼 생각조차도 하지 못했었는데, 이것도 2년 가까이 경험해보니 그까짓 거 하는 마음이 들었다. 한국에 돌아와서 해야 한다는 2주간의 격리는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어차피 은퇴 후 거의 격리와 비슷한 일상을 살고 있으니. 태국이 좋을까. 베트남이 좋을까. 설 전에는 돌아와야 하겠지. 하는데 아내가 말했다.

'당신 책 12월이면 출간되잖아. 그럼 이래저래 바쁠걸?'

아 맞다 그러네. 올 겨울도 추위를 피해 동남아로 가지는 못하겠구나.


아내는 책을 준비하고 쓸 때보다 책 출간 이후가 더 바빴다. 책과 관련한 각종 인터뷰와 방송 출연이 이어지면서 은퇴 후 가장 정신없는 두 어달을 보냈다. 나도 그럴 줄 알았다. 내 책의 출간이 12월로 결정되면서 1월과 2월의 일정을 비웠다.  


책이 출간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김창완 님이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에 책이 소개되었다. 김창완 님은 특유의 정감 가는 목소리로 내 책의 일부분을 읽었고, 마지막에 내 이름 '민현'과 책 제목 '조금 이른 은퇴를 했습니다'를 언급해 주었다. 난 흥분했다. 곧바로 출판사에 연락을 해서 이 놀라운 사실을 알렸는데 편집자는 이미 알고 있었다. 편집자는 책을 소개하는 교양프로 몇몇 곳에 책을 돌렸고, 운이 좋으면 이렇게 방송에 소개되는 일도 생긴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런 일 있을 때마다 내게 미리 알려 주길 바라는지 물었다.

'네 알려주세요. 궁금하긴 하네요.'

방송과 관련된 일은 이 라디오 프로를 시작으로 연이어 생길 줄 알았는데 그게 마지막이었다. 1월은 여느 달과 마찬가지로 자가격리 중이라도 해도 이상할 것 없을 만큼 조용했다.

 



터기는 접종 완료 증명서 한 장만 있으면 격리 없이 입국이 허용된다고 했다. 72시간 이내의 코로나19 음성 확인서도 면제라고 했다. 리라화의 가치가 폭락해서 터키 사람들이 힘들어한다고 들었지만, 한편으로 여행자에겐 솔깃한 이야기였다. 3월에 아내가 터키 일정을 잡았다. 책을 출간한 게 맞나 싶을 정도로 1월 내내 아무 일도 없었으니 가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잠시 한국을 떠나 있겠다고 출판사에 이야기해야 하나 잠깐 고민했지만, '아무 일 없을 테니 걱정 말고 잘 다녀오세요'라고 할까 봐 관두었다.


지금 3개월의 일정으로 터키의 작은 항구 도시에 와 있다. 하루의 일상은 한국에서와 비슷하다. 밥을 해 먹고, 산책을 하고, 책을 읽고,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쓴다. 이곳에서의 생활을 궁금해하셔서 작당모의 단톡방에 직접 차린 아침밥 사진을 올렸다. 터키식 아침식사인 카흐발트였다.

직접 차린 터키식 아침식사. 카흐발트.

사진을 보고선 김소운 작가님은 맥주 안주라 하셨고, 진샤 작가님은 아이들 간식이라고 하셨다. 파우스트 작가님은 너구리 컵라면 사진이 담긴 글을 올리셨다.




아내의 책 출간기 매거진을 시작할 때 내 책의 출간도 준비하고 있었다. 아내의 책 '마흔, 부부가 함께 은퇴합니다.' 이야기를 하다가 반전처럼 내 책의 출간 소식도 알리고, 그 이후에 책 출간으로 벌어지는 두근두근한 일들을 적어나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무언가 쓰려해도 쓸만한 그 무언가가 발생하지 않았다.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내 일상은 평온했다. 최근 한 달 넘게 글을 올리지 못한 이유이기도 하다. 아쉽지만, 아내의 책 출간기 매거진은 이 글이 마지막이 될 듯하다. 그래도 터키의 작은 항구를 감싼 에게해를 바라보면서 마지막 글을 올리는 거에 위안을 갖는다.

 

에게해가 바라다보이는 숙소 거실.


작년, 기대하지 않았던 아내와 나의 책 출간으로 많이 울고 웃었다.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그리고 그 글을 많은 분들이 읽어주시면서 생긴 일이다. 두 번째 책은 어찌 될지 모르겠다. 전에도 이야기 한 적 있지만, 아내도 나도 서로의 첫 번째 책에 10년을 갈아 넣었다. 또 다른 10년 치의 경험이 쌓이면 두 번째 책이 나올지 모르겠다. 그리고 그런 날이 오면 아내의 두 번째 책 출간기를 다시 한번 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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