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현 Jul 01. 2023

피렌체에서의 한 달.

   가을방학의 <좋은 아침이야, 점심을 먹자>가 블루투스 스피커에 담기고 이어 아내의 발랄한 목소리가 들린다.

   “이제 일어날 시간.”

   잠이 배어있는 몸을 이끌고 비틀비틀 거실로 나온다. 식탁 위에는 아내가 모카포트로 내린 커피가 놓여있다.

   “잘 잤어?”

   아내가 묻지만 대답을 미룬다. 바로 답을 하기에는 아직 제정신이 아니다. 커피 한 모금을 머금어 보지만 쓴 맛뿐이다. 미각이 잠에서 깨어나는데도 시간이 조금 걸린다. 카페인을 조금씩 밀어 넣으며 잠이 덜 깬 몸을 추스르고 어질러진 정신을 챙긴다. 제멋대로 흩어지던 스피커의 멜로디가 조금씩 귀에 모인다. 쓰기만 하던 카페인에서도 점차 커피의 향이 느껴진다. 정신이 제자리를 찾아가며 몸의 감각이 살아난다. 잘 잤구나. 그제야 아내의 물음에 답을 준다. 응, 잘 잔 것 같아.


   커피를 다 마시면 아침 산책을 나선다. 노점들의 아침 준비가 한창이다. 관광객들이 밀려들기 전이어서 숨쉬기가 편안하다. 하늘을 덮은 구름이 수상해 우산 두 개를 챙겼는데 동네를 한 바퀴 다 돌아도 비가 오지는 않는다. 숙소로 돌아오면서 빵집에 들른다. 갓 구운 빵 냄새에 침이 고인다. 이것도 담고 저것도 담고 싶지만 딱 세 개만 신중히 골라 봉지에 넣는다. 어차피 오늘 다 못 먹으면 빵이 금세 굳어버려 맛이 없다.


산책길에 만난 무지개.


   달걀을 삶고 토마토를 씻고 오이를 먹기 좋게 썬다. 아내는 그릇에 요거트를 덜고 그 위에 그래놀라를 얹고 커피를 내린다. 올리브 여섯 알, 블루베리 열두 알을 각자의 개인 그릇에 담는다. 아내는 크림치즈의 뚜껑을 열고 신중히 골라 온 빵을 빵칼로 자른다. 아침식사 준비가 끝난다.




   우리가 구한 숙소는 관광지가 몰려있는 피렌체의 중심가. 아내와 나, 둘 뿐이었으면 비싼 중심가를 피해 저렴한 곳에 위치한 숙소를 구했겠지만, 장모님과 함께 한다는 생각에 조금 무리해서 중심가로 숙소를 정했다. 숙소를 나오면 바로 두오모 광장을 산책할 수 있는 곳, 베키오 다리 위로 떨어지는 일몰을 보기 위해 버스나 트램을 탈 필요가 없는 곳. 장모님을 생각하면 중심가가 아무래도 낫지 않을까.


피렌체 중심가


   피렌체에 온 지 일주일도 되지 않아서 우리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알았다. 숙소가 중심가와 가깝다는 것은 바꿔 말하면 그 중심가를 가득 메운 사람들과도 가깝다는 의미였다. 밤 11시가 되어도 피렌체는 잠들지 않았다. 창을 단단히 걸어 잠가도 창 틈새 사이로 피렌체의 늦은 밤을 즐기는 관광객들의 술 취한 소리가 들렸다. 노래를 부르는 사람, 소리를 지르는 사람, 그들이 마시고 남긴 맥주병을 와르르 재활용품 수거함에 쏟아붓는 소리. 숙소 체크인 시, 웰컴 쿠키와 함께 3M 젤리형 귀마개가 놓여 있었던 이유가 이 때문이었구나.


   우리가 상상하던 이탈리아스러운 것들. 명품 옷을 입은 모델 같은 이탈리아 사람들의 맵시, 손이 없으면 대화가 불가능하다는 이탈리아 사람들의 수다. 지역마다 제각기 모양과 맛이 다르다는 이탈리아 사람들의 음식을 피렌체에서는 쉽게 찾을 수 없었다. 반바지와 샌들을 신고 여행가방을 끄는 사람들, 그들이 쏟아내는 영어와 중국어, 다국적 관광객들을 위한 국적 불명의 음식들이 피렌체를 채웠다.


눈으로 보는 건 물론 다 좋긴 하지만.


   오스트리아 빈이나 튀르키예 이스탄불에서의 한 달이 좋았던 것은 그곳의 이국적인 볼거리가 가득해서 이기도 하겠지만, 그 나라 사람들이 말하는 언어, 그 나라 사람들이 먹는 음식, 그 나라 사람들의 문화에 섞여 지냈기 때문이지 않은가. 그렇게 그들의 일상을 함께 해서이지 않은가. 피렌체에서의 한 달은 내내 여행지에 있는 기분이었다. 그들의 일상으로 다가가지 못했다. 명동이나 이태원에서 한국을 느끼기 어려운 것처럼 우리는 피렌체의 한복판에서 이탈리아를 느끼지 못했다.




   오늘은 산토 스피리토 성당을 가 보기로 한 날이다. 피렌체 두오모 돔을 올린 브루넬레스키가 마지막으로 건축했다는 성당, 대충 봐도 르네상스인 심플한 파사드와 18세 미켈란젤로의 목제 예수상을 볼 수 있는 곳. 숙소를 나서면 부지런한 관광객들이 그새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다. 이곳의 하루는 이미 시작되었다.


   산토 스피리토 성당은 아르노 강 너머에 있다. 어제 산타 트리니타 다리에서 일몰을 봤으니 오늘은 베키오 다리를 건너 보기로 한다. 숙소에서 몇 걸음 걷다 보면 피렌체 두오모가 보인다. 두오모의 거대한 돔을 뒤로한 채 사진을 찍는 사람들, 그 사람들을 구경하며 브런치를 즐기는 사람들, 피렌체의 거리가 그려진 그림을 파는 사람들, 그림에는 관심 없이 자기들끼리 수다를 떠는 사람들. 우리도 자연스레 그들 사이에 섞인다.




이번 매거진은 idle​​​​​​ 님과 함께 꾸려 나갑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여행의 목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