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현 Jun 07. 2024

마흔아홉에 어학연수

   영어, 그거 굳이 배우지 않아도 돼. 나중에, 그러니까 미래에는 통역기가 다 해결해 줄 거거든.

   30여 년 전, 중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에, 나는 종종 그렇게 말했다. 아마도 미래가 배경인 SF 영화나 앞으로 펼쳐질 미래의 일상 따위를 소개하는 가십성 뉴스 기사처럼 신빙성 없는 근거에 기대 희망회로를 돌린 것에 불과했지만, 그 당시 난 정말 그렇다고 믿었다. 미래엔 모든 언어의 장벽을 깨버리는 통역기가 나올 거라고. 미래의 통역기가 언어의 저주로 무너진 바벨탑을 다시 쌓아 올릴 것이라고. 이제 무너질 건 시대의 흐름에 점차 설 자리를 잃게 될 외고나 외대 같은 것들일 거라고.


   대학 입시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영어 단어를 외우고 성문 영어를 들여다봐야 했지만, 그때마다 굳이 필요 없는 공부를 하느라 시간을 버리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고등학교 2학년이 되면서 이과를 선택하고, 대학은 공대 쪽으로 진로를 정하면서 사정은 좀 나아졌다. 영어와는 담을 쌓아도 되었다. 쌓은 담 너머로 여전히 영어공부를 해야만 하는, 아마도 인문대생일 것 같은 애들을 가끔 안쓰러운 눈빛으로 쳐다봤다. 안쓰럽기는 하지만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쌓은 담을 굳이 허물 필요는 없었다. 공대생에게 영어는 더 이상 전공 필수 과목이 아니었으니까.


   전자사전을 처음 본 건 군 복무를 마치고 갓 복학해 이제 열심히 살아야지, 하는 의욕이 아직 채 빠지기 전 자주 들르던 도서관에서였다. 아마도 인문대생일 것 같은 애들이 책상 위 베개로 사용하기 딱 좋은 두께의 두툼한 영어사전 대신에 전자사전의 작은 키판을 눌러가며 영어 공부를 하고 있었다. 카시오 전자사전이었던가. 날렵하고 가벼웠다. 세상은 이렇게나 빨리 변하고 있었다. 상상하던 통역기까지는 아니었지만, 두툼한 영어사전을 대체한 날렵한 전자사전은 세상이 점점 내가 상상하는 방향으로 변하고 있다는 걸 증명하고 있었다. 전자 사전이 미래의 통역기를 향해 가는 중간 과정이라고, 하늘 끝까지 쌓아 올린 바벨탑의 장엄한 광경을 보게 될 날이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은 거라고 자신하면서 그런 미래를 앞서 내다본 스스로를 대견해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다니고 보통의 평범한 사람들처럼 한국에서 부대끼고 살면서 영어를 할 줄 안다는 건 한국에서 살아가는데 그리 필요한 능력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정말 필요한 언어 능력은, 나이보다 훨씬 어려 보이세요, 같은 마음에도 없는 말을 뻔뻔하게 하는 능력이거나, 화가 난 여자친구가, 도대체 뭐가 미안한 건데? 같은 말을 하는 건 미안한 게 정말 무엇인지 궁금해서가 아니라는 걸 알아채는 독해능력이었다.


   해외여행도 이따금씩 다녔다. 영어를 할 줄 안다는 것이 해외여행에 있어 필수 불가결한 요소는 아니었다. 여행지에서 필요한 건 영어보다 돈이었다. 돈을 벌겠다는 여행지의 상인들은 돈을 쓰겠다는 여행자의 말을 어떻게든 해석하고 소통하려 애썼다. 밥을 먹고 싶은데, 일일 투어를 하고 싶은데, 기념품을 사고 싶은데, 아무튼 돈을 쓰겠다는데 영어를 못해서 돈을 못 썼던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렇더라도 해외여행을 다녀오면 얼마간은 영어에 대한 갈증이 일어 이제라도 영어 공부를 좀 해야 하나 고민을 하곤 했는데, 여행 중에 만났던 다른 여행자들이 떠올라서였다. 일일 투어 여행지로 가는 승합차 안에서, 혹은 여행지의 동선이 우연히 겹쳐 두세 번 마주친 덕에 서로 얼굴이 익어서, 아니면 그냥 말 걸기를 원래 좋아하는 외향형이어서 그들은 불쑥 어디서 왔어? 하고 물었다. 한국, 하고 답변을 하면 그들은 대부분 반가운 표정을 지으며 한국에 대한 몇 가지 자기가 아는 것들을 늘어놓았다. 그럼 이제 내가 질문할 차례인데, 너는 어디서 왔어? 며칠이나 머물러? 가본 곳 중 어디가 가장 좋았어? 따위 정도는 나도 물어봐야 하는데, 그래야 서로 민망하지 않은데, 대부분의 경우 난 눈길을 피하고 다른 곳을 응시하며 민망함을 택했다.


   이것도 인연인데 저녁이라도 함께 먹을래? 하고 물었으면, 그래서 이국의 멋진 식당에서 달콤한 음식에 시원한 맥주를 곁들이면서 내가 살고 있는 나라와 그들이 살고 있는 나라와 우리가 지금 여행 중인 나라에 대해 시끌벅적하게 떠들어 댔다면 그들과 난 서로 친구가 되었을까. 국적과 언어가 뒤섞인 친구들과 함께하는 여행은 좀 더 재미있었을까. 다행히 그런 아쉬움이 오래가지는 않았다. 한국에 돌아와 한국의 친구들에게 내가 여행했던 나라에 대해 익숙한 한국말로 시끌벅적하게 떠들고 나면 아쉬움은 금세 잊혔다.


   결혼을 하고 아내가 나의 가장 친한 친구가 되면서 여행은 영어를 못해도 충분히 재미있었다. 처음 보는 그 나라의 풍경과 처음 먹는 그 나라의 음식과 처음 겪는 그 나라의 문화에 대해 아내와 서로 이야기 나누기도 바빠, 다른 친구는 필요 없었다. 더군다나 국적과 언어를 뒤섞은 친구라면 더욱. 이제 나이도 먹을 만큼 먹어서 낯선 누군가를 새로 만나 사귀려는 노력을 들이는 게 귀찮으니 더더욱. 아내를 만나고는 영어 때문에 갈증을 느낀 적이 거의 없었다. 그나마 약간의 불편함으로 남아있던 영어에 대한 필요마저도 구글맵과 구글번역기가 모두 없애주었다.


   어릴 적부터 영어에 관심이 없었고, 나이가 들어서도 영어에 대한 필요를 느끼지 않았고, 그래서 바라던 미래의 통역기가 당장 오늘 출시된다 하더라도 이제는 굳이 안 살 것 같은데, 그러니까 이제 나에게 영어는 잘해도 그만, 못해도 그만인, 중 고등학교 때 배웠던, 이제는 기억나지도 않고 기억할 필요도 없는 다른 과목들과 다를 게 없었는데, 마흔아홉을 먹은 지금, 그 영어를 다시 공부해 보겠다며 한국을 떠나 필리핀으로 어학연수를 와 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