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설어도 불안하지 않다면 즐거울 거야

<산책 Promenade > 이정호 지음

by 여행하는 그리니



삶, 책, 그리고 산책. 이 셋에는 공통점이 많다. 책이 하나의 삶이라면 우리는 다른 '나'가 되어 새로운 삶을 산책하기 위해 책을 펼친다. 그곳에는 새로운 '나'가 있고 새로운 '삶'이 있다. 책과 삶의 경계가 흐려질 때도 있다. 이 책의 아름다운 일러스트들처럼 어디서부터가 책 밖의 세계이고 어디서부터가 책 안의 세계인지 모호해진다. 그때 우리는 책을 읽고 있지만 동시에 두 세계를 넘나들며 낯설지만 불안하지 않은 즐거운 산책을 즐기고 있는 것이다.


책이 없다면 우리는 낯선 세계를 산책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얻지 못한다. 과거의 '나'가 깨지고 새로운 '나'가 깨어나는 낯설지만 흥분되는 경험을 할 수 없다. 언제까지나 같은 세계를 유령처럼 왔다 갔다 배회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책을 펼치고 산책을 나서는 순간 세계는 즐거운 발견과 새로운 경험이 여기저기 펼쳐진 새로운 세계가 된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토끼를 찾아 구덩이에 뛰어들어 모험을 떠나듯, 우리도 책이라는 구덩이에 뛰어들어 낯선 세계를 모험한다.


책은 내가 '진실'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것이 진짜 진실인지 의심하게 만든다. 과연 그것이 진실인가. 책을 읽으면 내가 가졌던 확고한 믿음들보다 깨어있는 눈으로 모든 것의 가능성을 탐색하게 된다. 진실이거나 거짓이거나 그 어느 쪽도 아닌 삶의 가능성을 받아들이게 된다. 무엇이 진실인지 나는 알 수 없다. 그저 삶의 무한한 가능성과 불확실함, 정해지지 않은 그대로의 상태를 즐길 뿐이다. 흑과 백이 아닌 흐릿하고 불확실한 세계는 정해진 것 없이 아름답다.


우리는 삶을 살고 있지만 이 삶이 어디로 이어질지, 얼마나 더 이어질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책과 산책은 내가 어디쯤 왔는지 어디로 가야 할지는 알 수 있게 도와주는 삶의 친구이자 비유이다. 우리는 삶이라는 산책을 즐기기 위해 이 지구별에 있는지도 모른다. 책을 펼치고 새로운 세계로 건너가듯 삶도 그러하다. 어쩌면 죽음은 이 삶에서 저 삶으로 폴짝 뛰어 건너가듯 간단하고 쉬운 일인지도 모른다.


이 산책과 책이 그리고 삶이 낯설어도 불안하지 않다면 우리는 즐겁게 그것을 즐길 수 있다. 오히려 그 낯섦을 환영하며 산책을 하고 책을 넘기며 삶을 모험할 수 있다. 삶의 여기저기에는 책이 펼쳐놓은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문들이 흩어져 있다. 나는 그 문을 열고 들어간다. 그리고 또 그곳에서 새로운 문을 만나 산책을 시작한다. 그 문을 찾는다면 우리는 두근거리며 호기심을 갖고 그곳으로 들어갈 수 있는 자유가 있다.


언젠가는 삶이 수없이 많은 책들 사이를 통과하며 즐겼던 짧은 산책이었다는 것을 알게 될지도 모르겠다. 어디서부터가 진짜이고 가짜인지, 사실이고 이야기인지 명확하게 나눌 수 없는 그 신비한 삶을 산책하는 사람. 책을 읽는 사람은 그 산책을 즐기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책을 펼치고 책을 닫지 않으려고 한다. 언제나 펼쳐진 책들 안으로, 새로운 세계로 여기저기 산책을 떠날 수 있도록 책의 세계가 거기 있도록 책을 펼쳐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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