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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아지다사라지다 Nov 14. 2022

안 먹는 아기를 키우며

원인은 가까운 곳에 있다

유전이란 참으로 신비롭다.

어쩜 그렇게 닮지 않아도 되는 것까지 닮는지.

정말 깨알같이 닮는다는 게 적합한 표현인 것 같다.


얼굴을 위아래로 나눈다면 아기는 위쪽은 남편, 아래쪽은 나를 닮았다.

갈색 머리카락은 나를 닮았고

소라처럼 옹골지게 작은 귀는 남편을 닮았고

나머지 체형은 아직 아기라서 속단하긴 이르다.

아이의 외모 지분은 누가 정하는지, 어떻게 정하는지, 그것에 합의와 조율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오프 더 배 코드인 것은 확실하다.


성격이나 기질도 유전이라 한다.

그런데 식성까지 닮는다는 건 생각지 못했다.

첫 아이다 보니, 육아 경험도 전무하고

그냥 아기는 배고파서 우는 거니까 때에 맞게 먹을 것을 주면 잘 먹겠지 생각했다.

요즘 아기들 먹거리가 오죽 다양한가. 이유식, 반찬, 과자, 음료 등 아이들이 먹을거리를 어디서든 손쉽게 구매할 수 있다.


그런데 내 아이는 정말 입이 예민하고 까탈스러운 아이다.


분유 먹는 시기, 초기 이유식 단계는 어찌어찌 넘겼는데

그 이후에 일반식을 네 살인 지금까지도 원활하게 먹지 못하고 있다.

이 문제 때문에 스스로 너무 많이 속앓이를 하고 아팠다.

내가 못난 엄마인가 자책도 많이 하고

혹시나 구강에 문제가 있는지 치과 검진도 받고

혹시나 심리적 문제가 있는지 상담센터에 가서 감각통합 치료도 받고

초보 엄마가 할 수 있는 노력은 했다고 생각했는데도

아이는 딱히 배가 고프지 않고, 먹는다는 행위에 즐거움을 느끼지 못한다.


주변에서는 대수롭지 않게 말하기도 한다.


"한 이틀 굶겨봐~ 아주 잘 먹을걸?"

"아니 삼일은 굶겨야지. 배고프면 다 먹게 돼있어."




나는 보통 육아에 관해서는 엄마와 소통하지 않는다.

엄마는 나를 할머니에게 맡겨놓고 하고 싶은 건 다 하고 다녔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가 세 살 되던 무렵 엄마에게 고민을 털어놓은 적이 있다.

엄마는 비웃으며 나에게 말했다.


"너도 그랬어 이년아"


"아?"


"야. 너 하나 입에 밥 처넣을라고 할머니부터 아주 온 가족이 얼마나 쌩 쇼를 했는지 아냐. 그것도 간신히 먹여놓으면 또 토해요. 아주 돌아버려 그거는 진짜. 그 당시에 애기 이유식 파는 데가 어딨냐. 너 잘 처먹는 거 찾을라고 미군부대까지 들어가서 그 당시 한국에서 팔지도 않는 유리병 거*를 사 와서 맥였더니 또 그건 잘 받아 처먹어요. 쓸데없이 입만 고급인 년. 진짜. 하여튼 너는 니 새끼한테 뭐라고 할 자격이 없다."


어릴 때부터 단짝인 친구에게도 아이가 안 먹는다고 말했더니 똑같이 비웃으며 말했다.


"야. 아 나 참. 어이가 없어서. 너 어릴 때 기억 안 나? 스파게티 한 가닥 먹고 배부르다고 한 년이. 너 하도 깨작대서 도시락으로 싸온 반찬 내가 다 먹은 거 기억 안 나? 아주 징글징글하게 안 먹었어 너. 지 안쳐먹던 건 생각도 안 하고 애한테 뭐라고 하냐? 너는 양심이 있냐?"


아... 그랬다. 나도 안 먹는 아기였다.


원인을 멀리서 찾을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다른 아이 기준으로 밥을 차려놓고 내 아이에게 왜 먹지 않느냐고 야단친다는 게 얼마나 부질없는 짓이었는지 깨달았다. 안 먹는 엄마, 그리고 (술 빼고) 별로 안 먹는 아빠 사이에서 태어난 아기가 잘 먹는다면 그것 또한 신기한 일 아닌가.


아기에게 너무 미안했다. 별로 먹고 싶지 않은데 때 되면 수저를 들고 다가오는 엄마가 얼마나 무서웠을까. 배는 고팠지만 대충 허기만 가시면 될 일을, 엄마는 왜 남은 밥을 꼭 먹어야 한다고 쫒아다닌 것일까. 이 만큼의 양을 다 먹어야 한다고 규정하는 것은 결국 나였다. 아이의 배는 그 양을 다 담을 수 없었던 것이다.




하루는 아기가 잠들 기 전 할 말이 있는 표정으로 내 눈치를 살폈다. 그러다 몇 번 울기도 했다.


"나 너 무 아 파. 너 무 아 파."

"아파? 어디가 아파? 왜 아파?"

"배 불 러."

"응? 배고픈 게 아니고 배부르다고?"

"배 불 러. 배 불 러"


아이는 말을 아직 정확하게 구사를 못해도, 그 말을 엄마에게 오늘은 꼭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나 보다. 그동안 너무 참았고, 더 이상은 이렇게 살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 와중에 눈치 없이 배고픈 거 아니냐고 묻는 어미에게 의사 전달을 확실히 하기 위해 아기는 자신의 한껏 부푼 배를 문지르며 "배 불 러!"라고 표현했다.


나는 굶어도 내 새끼는 먹인다. 내 새끼 먹는 것만 봐도 배부르다.라는 말들이 있긴 하지만 그것은 부모의 시각이었다. 아이는 배가 부르면 그만 먹고 싶었다. 그 정도만 먹어도 집안을 어지르고 노는데 쓰이는 체력에 전혀 문제 되지 않았다. 나는 엄마를 사랑하는데, 엄마는 내가 밥을 그만 먹는다고 도망가면 화를 내고 슬퍼한다. 그래서 괴롭지만 억지로 밥을 삼켰다. 밥그릇이 깨끗이 비워지면 엄마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칭찬을 해 주었다. 나도 하는 데까진 노력했지만 더 이상은 힘들다.


그 이후로 나는 좀 내려놓았다. 아이가 배고프다고 표현할 때 밥을 주고, 그만 먹겠다고 하면 아쉽지만 남은 밥은 치운다. 아기도 이제 예전처럼 도망 다니지 않고, 배가 부를 때 까지는 앉아서 먹는다. 서로가 조금 더 편해졌다. 나는 아직도 잘 먹는 또래 아이들을 보면 부럽다. 하지만 부모는 자신도 하지 못한 것을 자식한테 요구해서는 안된다.



한 줄 요약: 아이가 무언가 이상한 행동을 한다면, 내가 어릴 때 어땠는지 기억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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