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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아지다사라지다 Nov 10. 2022

안부

당신은 잘 지냈어요?

회사원일 때는 인사를 내가 하고 듣는 것이 너무나 쉬웠는데

비록 형식적일지라도

출근할 때, 고객이 왔을 때, 식당에서 오랜만에 만난 타 부서 사람을 봤을 때, 퇴근할 때 등

인사는 너무나 당연하게 주고받는 것이었다.


미용실에 다녀온 다음날이면 최소 5명은 바뀐 머리에 대해 언급해주었고

옷차림에 신경 좀 쓴 날이면 최소 3명은 새로 산 옷에 대해 칭찬해주었다.

직장에 다닐 때는 그게 고마운 줄 몰랐다.

그냥 매일 하는 뻔한 루틴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퇴사를 하고 집에서 육아만 하다 보니

내 일상에서 인사가 많이 줄어들었다.

내가 인사를 할 곳도, 내가 인사를 받을 곳도 많이 줄었다.

코로나로 인해서 과거 환경보다 더 사람들 간에 거리를 둔 탓도 있지만

미처 생각지 못했던 부분이었다.

뭐 그냥 당연한 변화라고 생각하고 무던히 살았다.


어느 날 거의 삼 년 만에 집에 남편의 절친이 찾아왔다.

그분도 어린 자녀 둘이 있지만 오늘은 특별히 아내의 윤허를 받아 잠깐 왔다고 한다.

나는 작업복(최대한 잘 늘어나는 바지, 땀 흡수가 잘되는 면 반팔티)을 입고 질끈 묶은 머리를 하고 있었다.

내가 결혼하기 전부터, 그러니까 그때는 누가 봐도 직장 여성 같은 단정한 슈트만 입은 모습만 보다가

본격적인 아주머니가 된 이후 첫 만남이었다.


그분은 날 보자마자

"어우. 잘 지냈어?"

라고 태연하게 인사했는데

왜 그 순간 목이 턱 막히고 눈물이 탁 하고 터졌는지 모르겠다.


잘 지냈냐는 물음에 대답을 해야 하는데

나는 그간 잘 지내지 못했기 때문에 선뜻 대답을 못한 이유도 있고

삼 년 간 나에게 잘 지냈냐고 물어봐 주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멈출 수 없을 만큼

볼 성사 납 게 눈물이 났다.


잘 지냈어. 이 네 글자가

참 듣기 어려운 거였구나.

그리고 참 어려운 질문이었다는 것을


그분은 당황하면서 나에게 왜 우냐고 물었다.

나는 울먹이느라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아서

".. 한 테... 잘 지내냐고... 물어본 사람이... 없었어요..."


그러자

갑자기 그가 울기 시작했다.

"나도 그래. 나도..."

"나도 집에서 한다고 하는데 ~~ 나는 항상 나쁜 남편 같아... 뭘 해도 욕먹어... 한다고 하는데..."


퇴근하고 바삐 와서 땀에 절은 양복을 입은 아저씨와

역시나 땀에 절은 작업복을 입은 아주머니는

한참을 마주 앉아 울었고


일층에서 담배를 피우고 돌아온 남편은 한숨을 쉬며 소주병을 열었다.


아들은 초록색 영롱한 소주병에 관심을 보여 아빠와 술병 쟁탈전을 벌이고 있었다.


본인 친구 앞에서 엉엉 우는 와이프가 창피했는지


그만 울고 안주나 먹으라고 배달음식을 내 앞에 밀어놓았다.


나는 배가 고픈 것이 아니라


인사가 고팠다.


"잘 지냈어?"

"요즘은 좀 어때?"

"오늘은 어땠어?"

"오늘도 힘들었지?"

"고생 많았네. 늘 고마워"


이런 안부 인사가 결여된 삶은 참 외로운 사투라는 것을 새삼 느꼈다.


가족끼리 꼭 인사 안 해도

서로 집에서 매일 보니까, 생사 확인도 되고

밥시간 되면 같이 밥 먹고

뭐 뻔한 일상인데 인사를 해야 되나 생각할 수도 있다.


나도 그렇게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그 잘 지냈냐는 말 한마디에 그간의 응어리가 그렇게 새 버릴 줄은 몰랐다.


또 나도 반성하게 되었다.

나 조차도 남편에게 인사하지 않았으니까.



한 줄 요약: 가끔은 서로의 안부를 물어주세요. 그리고 나 자신의 안부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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