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와 함께 밥을 먹었다. K는 맛있다고 고맙다고 했다. 사실 당근라페는 당근의 물기를 제대로 처리하지 않아 약간 물이 많았고 생각보다 프랑스에서 파는 겨자 머스타드가 신맛이 강했다. 된장찌개는 미소된장으로 해서 그런지 우리가 하는 깊은 맛보다는 청량한 맛이 강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아쉬웠는데 K가 고맙다고 해주니 참 고마우면서도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초반에는 K와 조금 친하지 못하다고 느꼈다. K의 성향이 조금은 직설적이여서 그런 부분이 낯설면서 불편함을 느꼈다. 그래도 역시 함께 지내는 시간은 무시를 못하는 것일까. 나도 모르게 K에게 의지뿐 아니라 점차 편해졌다.
K의 그런 성향들이 오히려 깔끔하게 보였고 관계가 되게 청순하다는 느낌도 받았다.
어느날은 K와 함께 로스코 전시를 함께 보러 갔다. K는 예약을 미리 한 상태에서
« 나는 내일 이곳을 가는데 너도 보고 싶으면 갈래? »
나는 당연히 가야했다. 왜냐면 할 것이 없었기 때문에 그리고 누군가와 함께 나가면 타지에서도 자신감 있게 다닐 수 있을 것 같았다. 지하철을 타고 전시장에 도착했다. 생각보다 사람이 굉장히 많았다. 다음날이 전시 마지막날이라서 그랬던 걸수도 있다.
2개의 줄이 있었는데 하나는 나처럼 현장예매를 하는 줄이었고 다른 하나는 K처럼 예약을 한 사람들의 줄이었다.
2개의 줄 모두 줄이 상당했다. 그래도 미리 예약을 한 사람들이 서있는 줄이 조금은 빠르게 줄이 줄어들었다. K는 먼저 들어가서 보고 있을테니 너도 줄을 서서 기다려서 들어와라라고 했다. 무언가 엄마 품에서 떠나는 느낌이어서 순간적으로 불안했지만 내가 애도 아니고 그런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 호기롭게 알았다고 했다. 그래서 30분 가량 순서를 기다리며 있었다. 외국인들 사이에서 멀뚱히 기다리고 있자니 이상하게 불안했다. 표는 제대로 끊을 수 있을까 어디로 들어가야하는거지 절차를 아예 모르니 불안했던 것 같다.
곧 내 차례가 된다. 안내해주는대로 들어가서 가방 검사를 하고 표를 받으러 갔다. 지금도 정확히 기억은 안나는데 아마 손짓이나 뜨문뜨문 영어 단어로 표를 끊었던 것 같다. 26세 이하는 할인을 받을 수 있다는 정보도 알고 있었기에 적합한 가격에 표를 아주 무사히 끊었다. 이상하게 기분이 너무 좋더라 고작 미술관 하나 들어간 것에 성공한 것 뿐인데. 지금 생각해보니 이런 순간들이 쌓여서 새로운 나라에 적응을 하는 것 같다.
미술관에 들어가서 전시를 천천히 봤다. 사실 기억에 남진 않았다. 아직 예술을 즐길만큼의 여유가 없었나보다
그래서 중간 중간에 있는 앉아서 작품을 감상하는 소파 같은 것에 그냥 가만히 계속 앉아있었다. 줄을 오래 서서 기다리다보니 다리가 아팠나보다. 근데 그렇게 앉아있어서 몸이 편해서 그런지 마음이 편해졌었다. 공간도 느껴지고 사람들도 보이고 문득 참 좋은 공간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각자 작품을 다 본 뒤 우리는 1층에서 다시 만났다. K는 다른 지인과 영화를 보는 약속이 있었다. 그 전에 잠시 커피를 마신다고 했다. 나에게 같이 가도 된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커피를 마시러 K와 지인들을 만나러 갔다.
미술관을 나오니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입구에 마련되어 있는 우비가 있어서 우비를 쓰고 일단 나왔다. 비도 오고 신발도 젖어가고 정신이 없는 와중에 오늘 본 전시에 관해서 짧게 각자의 소감을 말했다. 그러곤 기억은 안나지만 서로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며 지하철을 타러 갔다. 비도 오고 정신 없지만 오히려 그래서 즐거웠던 것 같다. 기분이 참 좋았다.
*맞춤법 검사기를 못 돌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