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유시간을 포함하여 총 20시간의 긴 여행 후 나는 매우 피곤한 상태였다.
몸도 마음도 지쳐있었는데 긴장이 풀리고 와인까지 마시니 나는 아주 거하게 취했었다.
K와 나는 밤새 이런저런 얘기를 했을 것이다. 정확히 기억이 나진 않는데, 추후 K가
« 우리 이런 얘기도 했다. »
« 기억 안 나는데 »
아무튼 나는 기억이 나진 않았다.
그렇게 술에 잔뜩 취한 나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침대에 누운 것까지 기억하고 아마 잠에 들었을 것이다.
다음날 나는 침대에서 쫓겨난다. 앞으로는 바닥에서 매트리스를 쓰며 자야 했다.
K의 말에 따르면 내가 자기를 너무 괴롭혔다고 한다. 발을 올리거나 밀치거나 등등
그래서 K는 잠을 제대로 잘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쫓겨났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다음날부터 K를 대하기 조금 어려워진다. 전날 기억하는 K의 말들 때문이었을까
혹시 나와 K가 그런 사이가 되진 않을까 하는 걱정과 기대이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도 가장 큰 마음은 역시 고마움과 미안함이다. 첫 시작부터 나의 여정이 삐그덕거릴 수 있었는데
덕분에 순조롭게 도착했지만, 역시 넓지도 않은 집에서 낯선 사람과 지내게 해야 했던 미안함.
거절하기 어려울 수 있었는데 내가 괜히 물어봐서 참는 것이 아닌가 하는 마음도 존재했다.
참, 앞서 말했듯 K는 이곳의 영향을 잘 받았다고 했는데
세밀하게 살펴보면 다르겠지만 대체로 이곳 사람들은 싫다면 싫다고 확실한 표현을 한다는 점이 있다.
그래서 내가 K에게 « 혹시 »는 불어로 뭐라고 표현하냐는 질문에서 비슷한 말이 있긴 하지만 대체로 쓰지 않는다는 지극히 개인적인 말을 내게 했다. 그로써 나는 K도 싫지만 참는 것은 아니겠구나 하는 기분 좋은 합리화를 할 수 있었다.
K는 파리에 한 카페에서 바리스타로 근무를 한다. 그녀는 다음날 아침 일찍 출근을 했고, 몇 가지 집에서 꼭 신경 써야 하는 부분들을 한번 더 알려준 뒤 집을 나섰다.
나는 항상 아침에 눈을 뜨면 커피를 마셔야 했는데, 만약 마시지 못하면 하루종일 두통에 시달린다.
그래서 K와 함께 집을 나섰다.
그녀는 지하철을 타러 갔고 나는 그 앞에 있는 비스트로에 들어갔다. 비스트로는 보통 프랑스의 가정식 같은 메뉴를 파는 프랑스에서 가장 흔한 식당 유형 중 하나인데 보통은 아침에는 카페의 역할을 한다.
나는 카페에 들어가서 커피를 시켰다. 프랑스는 식당에서의 문화가 우리나라와는 다른데 자리에 앉기 전 웨이터의 안내를 받아서 자리를 앉거나 본인이 희망하는 곳을 물어보고 괜찮다고 하면 자리에 앉은 후 웨이터가 메뉴판과 함께 오면 주문을 한다.
나는 앞서 말했듯 불어를 하나도 하지 못한다. 그래도 문화를 따라야 하기에 미리 행동거지를 검색을 하고 카페를 갔다. 나는 테라스라는 단어 하나로 물어봤고, 그 자리에서 커피 한잔을 달라고 했다. 웨이터는 불어를 못하는 것을 인지했는지 큰 불쾌함 없이 웃음으로 알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