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맞이하는 첫 가을
나의 20대는 어느 한 곳에서 머물지 않았다. 이 지역에서 저 지역으로 또 이 나라에서 저 나라로... 머물만 하면 떠나고, 이제 정착하자 싶으면 떠나고.. 내 의도와 상관없이 그렇게 되었다.
지금도 나는 정들었던 고향을 떠났다. 누군가는 성공을 위해, 누군가는 직장을 위해, 누군가는 기회를 찾기 위해 온다는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에 왔다.
스무살, 지방에 있는 대학에 수시를 넣었다가 덜컥 붙어버리는 바람에 서울에 있는 학교는 지원도 못해보았다. 그 미련이 남아 편입을 하려고도 해보고, 대학원을 가볼까도 했지만 결국 단 한 번도 내게는 허락되지 않았던 성지 같은 곳. 서울. 어느 순간부터 난 이 곳을 괜히 미워하게 됐다. 이 곳이 날 받아주지 않는 것 같아서였을까.
"서울은 너무 복잡해서 싫어"
"서울은 미세먼지도 많고, 살기에 너무 팍팍해"
뭐 이런 핑계들로 내가 서울에서 살 수 없는 이유, 서울에 가지 않는 이유를 정당화 했다. 사실은... 어쩌면... 그저 용기가 없었던 것일지도 모르는데...
용기가 없는 나는 이번에도 내 의지가 아닌 타인의 의지와 환경에 의해서 서울에 오게 되었다. 결혼. 나는 서울 남자와 2년의 장거리 연애 끝에 결혼을 하게 되고, 서울에 오게 되었다. 한 사람만 보고 한 사람을 위해 서울에 왔다.
몇일 전, 고향에서 서울에 올라와 고속버스 터미널이라는 곳에 처음 갔는데... 나는 콘서트장이나 집회장 외에 사람들이 거리에 이렇게 많이 다니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 정신이 하나도 없이 혼미했다. 세상에나... 이렇게나 많은 다양한 사람이 이 한 도시에 머물러 있다니... 머릿속으로 알던 것을 눈으로 보니 느낌이 더욱 확연해졌다.
서울 살이 딱 3주. 동네를 그다지 벗어나지 않는 주부의 일상을 살고 있다. 가끔 어디론가 외출을 할 때 차를 타고 나가면 차가 너무 많이 막혀서 이 곳이 서울인 걸 실감한다. 어느날 문득 밖에 나갔더니 하늘이 보이지 않을만큼 뿌연 공기... 미세먼지를 보며 이 곳이 서울인 걸 실감한다. 어딜 가도 커다란 마트, 교보문고, 백화점, 쇼핑몰이 널려있는 걸 보며 이 곳이 서울인 걸 실감한다. 그리고... 딱히 전화해서 "만나자"할 사람이 없을 때, 이 곳이 서울인 걸 실감한다.
자취 생활을 그렇게 오래 했는데, 타국에서도 1년이나 버텼는데,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는데도 고향을 떠난 타향살이는 쓸쓸하다. 아는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다. 아직은 이 곳이 내게 너무 낯설다. 새로움이 싫어서가 아니다. 그냥 낯설다. 익숙하지가 않다. 그래서 설레고 그래서 재미있을 수도 있겠는데, 왠지 쓸쓸하다.
30대에 들어서면서 나는 누군가의 아내가 되었고 누군가의 며느리가 되었다. 여전히 누군가의 딸이기도 하고 누군가의 언니이기도 하다. 여러가지 책임과 의무가 생겼다. 행복하지만 쓸쓸하다. 모두가 날 필요로 하고 모두가 나의 도움을 원한다. 날 너무나 사랑해주는 남편이 있어서 행복하고 감사하다. 그런데 쓸쓸하다.
가을이 왔기 때문인가.
그 어떤 말로 지금의 내 마음을 설명하려 해도 결국은 쓸쓸함만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