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뮤어 트레일 - Day 15
출발: Cascade Valley Junction
도착: Deer Creek
총 거리: 19.15 km
누적 거리: 276.16 km
우리 언니가 듀오 소개팅을 갔다 와서 이렇게 말했다. 이 사람이랑 잘 안돼도 어차피 다른 사람 소개받으면 되니까라는 마음으로 열심히 안 하게 된다고 했다. 근데 그건 상대방 남자도 마찬가지라 한다. 언니는 결정사에서 사람을 못 만난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이 날을 돌이켜서 생각해보니 언니가 해줬던 결정사 얘기가 생각났다. 나는 "어차피 여행은 내일도 계속될 거고, 오늘 충분히 만끽하지 않았더라도 내일 또 기회가 있으므로"라는 이유로 등산 후반부 하루하루를 소중히 여기지 않았다. 이제 사진도 잘 안 찍게 되고 일기도 짧아진다. 이유는 여기에 더 자세히. 등산이 장기가 되니 하루하루에 대한 존경과 존중이 사라지더라. 소중히 해 듀오!
오전 중에 찍은 사진은 거의 없고 딱 한 장 있는데, 하이커 한 명이 너무 처량하고 힘든 모습으로 진이 다 빠진 모습으로 앉아 있는 사진이다. 그 표정을 보면 아 나도 저랬지 그때가 생각난다. 사실 이 날은 고개 넘을 것도 없고 그래서 상대적으로 쉬운(?) 날이었는데 몸이 무거웠다. 첫 번째 resupply했을때 오전에 반나절 정도 쉰 이후로 한 1주일 정도 지났는데, 그동안 한 번도 쉰 적이 없어서 그랬나 보다. 나름 속도 붙었다고 좋아했는데 이 날은 지쳐서 20킬로를 못 걸었다. 그래도 제 원래 계획이었던 일당 16km 보다는 더 걸어서 안심.
확실히 북쪽으로 갈수록 고도가 낮아서 그런지 호수들이 많이 녹아 있었다. 하긴 이제 6월 초도 지나고 중순이기도 하니 날이 따뜻해졌겠지. (그치만 밤에는 늘 입 돌아가도록 추웠다.) 이 호수는 꽤 컸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원래 호수 두 개가 따로 있는데, 눈이 많이 녹아서 물이 불어난 바람에 호수들이 붙어버렸다. 그래서 한참을 뺑 돌아가야 했다. 이 호수 남쪽 끝에는 아예 얼음이 없었다. 바람 따라 물결이 찰랑 일어나는 것이 참 예뻤다. 보니까 여름에 오면 이런 데서 충분히 수영해도 되겠더라. 그치만 지금은 추우니까 패스.
오늘도 역시 코튼볼과 나이트캡과 flip flop하면서 걸었다. 사진에 보면 내 등산복이 흰색에서 청색으로 바뀌어 있다. 내가 두 번째 리써플라이 박스에 등산복을 하나 넣어 놔서 새 것으로 갈아입었다. 그러면 뭐해... 샤워를 2주 넘게 못했는데. 좀 신기한 것은 그러면 사람이 냄새가 나야 할 것 같은데 이상하게 나는 그 냄새가 안 난다. 내가 진짜 냄새가 안나는 건 아니고 내가 내 체취를 못 맡는 거겠지? 킁킁
여기에 썼지만, 뒤로 갈수록 사진도 적어지고 일기오 짧아지고 기억도 희미하다. 그래서 사실 이 날은 저 2개 붙은 호수밖에 기억이 안 난다. 분명히 이 날도 Day 1이나 Day 2나 Day 3처럼 꽉 찬 하루였을텐데 아쉽게도 별로 쓸 게 없다. 이럴거면 뭐하러 해?라고 생각했었는데, 요즘 다시 생각해보니 꼭 기억을 해야만 의미 있고 가치 있는 경험은 아닐 수도 있을거다. 그렇게 믿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