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 몸개그를 했다.

존 뮤어 트레일 - Day 14

by Noelles Adventure


2016년 6월 16일 Day 14.



출발: Bear Creek 지나서 어딘가

도착: Cascade Valley Junction

거리: 27.2 km

누적 거리: 257.01 km





어느덧 산행을 시작한 지 2주째가 됐다. 이날 걸은 거리는 27킬로미터가 넘는데 지금까지 가장 많이 걸은 날이었다. 기록 경신! 계속해서 계획에 비해 1.5배 이상으로 빨리 걷다 보니까 원래는 21일 계획이었는데 따져보니 18일 정도만에 끝낼 것 같다. 바로 전날 MTR에서 두 번째 보급품 (resupply)를 가져왔는데, 며칠 안 지나서 마지막 보급품을 또 픽업하게 생겼다. 아이고 안 그래도 음식 많은 데 더 많아지게 생겼으니 별로 달갑지 않다. 아마 남는 음식은 또 모두 기부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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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후반으로 갈수록 사진을 많이 안 찍어서 그런지 이 날은 아침 내내 아무 사진이 없다. 아마 이미 오전 중에 많이 걸었을 거다. 물 건너는 김에 신발과 양말을 말리려고 햇살에 널어놓았다.





캬~ 여기 아직도 기억한다. 왜냐면 히말라야 몸개그를 똑같이 따라 하게 됐기 때문이다. 물론 의도적이지 않게. 눈이 많이 녹으면서 폭포가 생겨났다. 길 위로 쏟아지는 햇빛과 부서지는 물방울이 정말 아름다웠다. 이 폭포 밑을 지나는데 부츠 안 젖게 하겠다고 빨리 지나가려고 점프! 를 했는데, 그것도 폭포 바로 밑 물줄기 제일 센 부분에서 발라당 넘어졌다. 진짜 발라당! 하고 넘어졌다. 배낭이 무거우니까 어? 넘어진다 하고 느꼈음에도 불구하고 내 자신을 어떻게 제어할 수가 없었다. 그 넘어지는 걸 고대로 인식하면서 그냥 그대로 넘어졌다. 세상에... 부츠 안 젖게 할려다가 진심 쫄딱 젖었다.



999BE44C5BE5F6E517FB0B 히말라야 몸개그를 JMT에서...


어휴 정말 다행히 저번에 리써플라이 박스에 넣어 놓은 김장 봉지 때문에 배낭 안은 하나도 안 젖었다. 배낭이 방수가 안될 경우를 대비해 (배낭이 이미 2016년 당시 2년 묵은 거라서 방수가 안될 거 같았다) 큰 김장 봉지 하나를 배낭 안에 라이너처럼 깔아 놓으면, 모든 물품이 보호가 된다. 김장 봉지 짱이다.



그치만 부츠, 양말, 바지, 윗도리, 장갑 등등 내가 걸치고 있는 건 모두 다 쫄딱 젖었다. 헐 오늘도 고개를 하나 넘어야 하는데 큰일 났네.






999D1A4C5BE5F6E817101C 내 가슴 높이까지 눈이 쌓여있다.




이날은 Silver Pass 전까지 가는 게 목표였다. 점점 오르막을 오르고 고도가 높아지면서 다시 눈밭이 나타났다. 보통 눈으로 사방이 덮여있으면 길도 덮여서 안 보인다. 그러면 그냥 앞서 나 있는 발자국이 맞겠거니 하고 따라간다. 앞서 난 사람이 길을 잘못 들면 나중에 오는 사람들도 줄줄이 길을 잘못 든다. 여기서도 이랬다. 한참 가는데 뭔가 이상한 거다. 발자국이 가다가 끊겨있고요? 아무리 봐도 좀 길이 아닌 거 같고요? 이럴 때 핸드폰에 GPS를 확인하고 되돌아간다. (나는 GAIA라는 GPS앱에 PCT 지도를 넣어 갔다. 비행기 모드여도 가능하다.)



다시 되돌 와서 제대로 된 길을 찾았는데, 찾고 보니까 뙇! 보통 표지판이 내 가슴높이 정도 되는데, 그 높이까지 눈이 쌓여있어서 다들 표지판을 못 보고 다른 방향으로 갔던 거였다.






실버 패스 가는 길이다. 아까 폭포에서 넘어져서 발이 다 젖어서 발을 디딜 때마다 양말에서 물이 쭈왁쭈왁 나왔다. 처음엔 괜찮았는데 고도가 높아져서 눈밭이 나오니까 발이 차가워져서 점점 발에 감각이 없어지기 시작했다. 이미 예정보다 훨씬 많은 거리를 걸어왔고 발도 너무 시리니까 오늘은 예정대로 실버 패스 전에 텐트 치고 일찍 쉬어야지!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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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계획했던 것처럼 챡챡 맞아 들어가면 넘 좋았겠으나 그럴 리가 있냐! 실버 패스 밑에 까지 왔는데 온통 눈밭. 진심 단 한 곳도 땅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발은 꽝꽝 얼어서 너무 추운데 오늘도 어김없이 그저 고개를 넘는 수밖에 없었다. 이때도 사실 좀 무서웠다. 이러다가 동상 걸려서 발가락 잘라야 되는 거 아닌가 이런 걱정. 크흡 무서운 마음에 실버 패스 꼭대기에서는 사진도 안 찍고 그냥 바로 내려가버렸다.



실버 패스까지 올라가는 데는 별로 힘들었던 기억은 없다. 다만 너무 발이 시렸을 뿐이다. 근데 내려가는 길은 상당히 무서웠다. 일단 길이 얼음호수 바로 위에, 그리고 다 내려오면 바로 옆에 나 있어서 꼭 잘못 디디면 저 얼음 호수에 빠져 죽을 거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999D764C5BE5F6F4179345 바로 요런 얼음 호수를 옆에 끼고 산비탈을 내려온다.


요게 공포심을 조장하는 그 얼음호수다. 지금 봐도 춥다. 나름 체력에 대한 자신감이 붙었음에도 불구하고, 발 좀 시리니까 또 무서운 걸 보니 나란 사람은 참 나약한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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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가까이 도착해서 뒤를 돌아봤다. 경사가 후달달 하기는 하네. JMT는 남쪽 (내가 시작한 쪽)이 훨씬 산이 험하고 고도가 높다. 그래서 초반에 넘었던 고개들은 지이이인짜 힘들고 넘는데 하아안참 걸렸다. 물론 아직 trail leg도 안 생겼을 때이고. 근데 북쪽 (내가 끝내는 쪽)은 고도가 점점 낮아져서 상대적으로 고개 넘는 게 수월했다. 그치만 낮은 고개라고 해도 고개를 절대 우습게 봐서는 안된다. 이날도 2500미터에서 시작해서 고개 꼭대기가 3500미터이고, 다시 2700미터까지 내려가는 일정이었다. Do not underestimate the power of the Pass (다스베이더 톤으로 읽어줘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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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근에서는 해발 3000 미터 이하에서는 불을 피워도 된다. 게다가 해가 하루 종일 나 있어서 떨어진 나뭇가지들이 아주 바싹 말라 있었다. 감동감동. 일기를 보니 이날 밤에 달이 매우 밝았다고 한다. 실제로 며칠 뒤에 보름달이 떴는데 그때 정말 헤드라이트 없이도 다 보일 정도로 밝았던 기억이 난다. 일기에 또 하루 종일 햇빛에 난 것에 대해 감사하다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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