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시멀 리스트의 미국 주방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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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가 다 떨어지려고 하면 또 무언가 신기한 주방용품들을 발견하게 된다. 처음에 3-4편만 쓰려고 했는데 어쩌다 보니 7편까지 왔다. 과연 8편을 쓸만한 소재가 또 나올 것인가 나도 궁금하다.
우리나라에서 본 보관통은 바나나 통 정도였다. 미국에서 본 적이 없어서 한국에서 바나나 통을 사 가지고 왔는데, 미국 바나나는 너무 커서 들어가질 않는다. 가장 작은 바나나를 사도 안 맞는다. 쩝... 그렇게 한국에서 사 온 바나나 통은 그냥 지하실에서 잠자고 있다. 근데 며칠 전 슈퍼에 갔다가 비슷한 것들을 발견했다.
토마토 통, 피망 통, 그리고 양파 통 (tomato, pepper, and onion container). 그치만 역시 바나나 통은 찾아볼 수 없었다. 무슨 원리인지는 모르겠으나 이미 잘린 토마토, 피망, 혹은 양파를 여기에다 담아두면 더 오래간다고 한다. 내 생각엔 무슨 기술이 따로 있는 건 아니고 그냥 밀봉이 잘 되니까 더 오래가는 게 아닐까 싶다. 과연 지퍼백에 넣는 것보다 오래갈까? 참고로 양파 통에는 양파 냄새도 빠져나가지 않는다고 써 있다. 생긴 게 영 허술하게 생겨서 성능에 의구심이 든다. 그리고 집에 워낙 실리콘으로 된 지퍼백이 많아서 굳이 이런 걸 사진 않을 듯하다. 참고로 우리 동네에서 팔지는 않지만 인터넷으로 아보카도 통 (avocado container)을 파는 것도 봤다. 이건 좀 탐나더라.
이번 크리스마스 때 시엄빠네 집에서 신기한 주방 용품을 많이 봐서 사진을 찍어왔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내가 맡은 임무는 퍼슈토를 마는 것이었다. 퍼슈토를 깔고, 그 위에 아르굴라를 놓고, 그 위에 만체고 치즈를 아주 얇게 떠서 올리고, 그 위에 무화과 잼을 얹은 다음에 돌돌 말아서 롤 (레서피)을 만들어야 한다. 시엄마가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지시를 한 뒤 저걸 꺼내 줬다.
치즈 슬라이서 (cheese slicer)인데 사이즈도 여러 개다. 왼쪽은 작은 것, 오른쪽은 큰 것. 저걸로 감자 껍질 벗기듯이 치즈에 대고 싹 면도를 하면, 저렇게 얇게 썰린 치즈 조각이 나온다. 솔직히 그냥 감자 껍질 벗기는 칼로 해도 될 것 같은데 왜 굳이 치즈용 슬라이서가 따로 있는지는 모르겠다. 감자칼로 하면 잘 안 썰어지려나?
참고로 우리 집에 있는 치즈 강판 (cheese grater)은 여러 모양과 두께로 갈 수 있게 되어 있다. 박사 때 아룬이 이사 가는 걸 도와줬는데, 버릴 것들 중에 가져가고 싶은 것 있으면 가져가라고 해서 저걸 집어왔다. 아주 요긴하게 잘 쓰고 있다.
이거야말로 정말 없어도 너무나 잘 살 수 있는 대표적인 물건이 아닐까 싶다. 일단 한국에서는 싱크대에 음식물 분쇄기를 거의 본 적이 없다. 있다고 해도 음식물 분쇄한 것을 그대로 하수에 내려보내는 것은 한국에선 불법이라 한다. 미국에서는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싱크대에서 음식물을 분쇄한 후, 그걸 그냥 하수에 흘려보내도 된다. 뭔 차인 지... 암튼 수챗구멍에 무른 음식 (샐러드 쪼가리, 양파 껍질 등)을 넣고, 분쇄기를 돌리면 그 밑에 칼날이 쏴 돌아가면서 음식물을 갈아준다. 이때 물을 틀어놔야 한다고 해서 꼭 물을 틀어 놓고 분쇄기를 돌린다. 다 돌리고 나면 수챗구멍 밑에는 아무 음식물이 남아있지 않다.
암튼 음식물 분쇄기는 진짜 편리한데, 오래 쓰다 보면 음식 찌꺼기가 칼날에 묻는지 가끔 냄새가 날 때가 있다고 한다. 우리 집에서는 그랬던 적이 없는데 시엄빠네서는 부엌이 좀 오래돼서 그런지 냄새가 가끔 나나보다. 그래서 시엄마가 저걸 꺼내면서, 저 볼을 하나 넣고 뜨거운 물을 틀면서 분쇄기에 갈면, 분쇄기에서 냄새가 없어지고 레몬 향이 난다고 했다. 헐 이런 것까지 있단 말이에요...? 암튼 이거 명칭은 수챗구멍용 제취제 (garbage disposal freshner)이다. 설명서를 읽어보니 말 그대로 냄새만 없애주지, 딱히 수챗구멍을 청소해주는 건 아니라고 한다. 정말 쓸 데 없다.
이번 크리스마스 때 울 언니도 시엄빠네 같이 갔다. 언니는 초대해준 것에 고마움을 표현하고자 시댁 가족들에게 킹크랩을 쐈다. 언니 고마워! 인터넷으로 주문했는데, 알래스카 킹크랩으로 검색하면 여기저기 사이트가 많이 나온다. 알래스카에서 잡자마자 한번 찌고 바로 급속냉동을 해서 배달된다고 한다. 우리가 주문한 곳에서 실수로 배송이 좀 늦어졌는데, 그게 미안했는지 시키지도 않은 집게발을 줬다. 우리는 킹크랩 다리만 시켰는데... 꺄 개이득!
시댁 식구들은 킹크랩을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남편이 이번 기회에 필요한 도구를 싹 다 마련했다. 아 역시 맥시멀 리스트. 바로 게/랍스터용 포크와 크래커 (crab crackers and forks). 이런 거 없어도 사실 크게 불편하진 않지만, 남편은 가족들에게 뭔가 진짜로 대접하는 느낌을 주고 싶었나 보다. 암튼 저 크래커 자체는 난 별로 쓸모가 없었다. 어차피 가위로 껍질을 잘라내면 쉬운데 뭐 굳이 크래커가 필요가 없었다.
생각보다 매우 유용하게 잘 쓴 거는 저 포크다. 우리 집에도, 시엄빠집에도 아주 작은 포크가 많아서 사실 저런 거를 따로 살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근데 막상 저게 있으니까 살 발라내고 뽑아내는 게 정말 수월했다. 집에 있는 포크로 했을 때는 살이 좀 부스러지고 닿지 않는 부분이 있었는데, 이건 아주 쑥쑥 살이 나온다. 생각보다 만족스러웠던 포크다. 킹크랩이 아닌 이상 게를 먹으면 정말 하루 종일 걸린다. 앉아서 그 작은 다리에 있는 그 조그만 살을 먹겠다고 끙끙 씨름하다가 포기한 적이 많은데, 이 포크로는 정말 효율적으로 게살을 발라 먹을 수 있다.
그나저나 게나 랍스터를 얼마나 자주 먹는다고 이런 걸 사다니... 지금까지 미국에 와서 집에서 랍스터 주문해다가 먹은 적은 딱 한번, 그리고 게를 시켜 먹은 적도 딱 한 번인데. 아마 이 물건들도 지하실에서 잠을 자겠지.
1편에서 발효기를 소개하면서 잠깐 언급한 적이 있는 물건이다. 이건 빵 반죽을 휴지 시킬 때 사용하는 바구니, 바네통 (Banneton basket)이라고 한다. 빵 반죽을 나눠서 2차 발효할 때 이 바네통에 넣는다. 그리고 구울 때는 반죽 바닥 부분, 즉 바네통에 무늬가 찍히는 부분이 위로 가도록 더치오븐에 옮겨 담고 굽는다. 그러면 빵 위에 저렇게 동그란 무늬가 딱 찍힌다. 참고로 휴지를 시킬 때는 저 통을 비닐봉지 안에 넣어서 수분이 날아가지 않도록 싸 둔다.
이 바네통은 밀가루로 시즈닝을 해서 쓰는 제품이다. 바네통 벽 안쪽에 밀가루 사이사이 발라서 반죽이 안 달라붙도록 시즈닝을 하고 반죽을 넣는다. 반죽을 꺼낸 뒤에는 덩어리 져 있는 것들만 탈탈 털어내고선 안 씻고 둔다. 안 씻는다니 좀 더러워 보이지만 괜찮다고 하니 그냥 쓴다. 쓸 때마다 밀가루를 약간씩 더 덧발라줘야 하지만 웬만큼 오래 쓰다 보니 반죽이 잘 들러붙지 않는다.
보통 주방 코너에는 수납공간이 꽤 많은데, 모서리 안쪽은 손이 잘 닿지 않아서 쓰기는 불편하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중국집 식당 위에 돌아가는 쟁반같이 수납공간도 돌아가도록 만들어 놨다. 한국에서 살던 집은 오래돼서 이런 걸 못 본 것 같은데, 요즘에는 한국에서도 많이 쓴다고 하니 딱히 신기하진 않을 것 같다.
사실 가장 신기한 건 이것의 이름이다. 이건 레이지 수잔 (lazy susan), 즉 게으른 수잔이라고 부른다. 이렇게 수납에 들어있는 것도 레이지 수잔이라고 하지만, 말 그대로 중국집 식당 위에 있는 돌아가는 원형 쟁반도 레이지 수잔이라고 부른다. 찾아보니 레이지 수잔은 1917년에 한 백화점에서 돌아가는 원형 쟁반을 팔면서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여기서 수잔은 웨이터라고 보면 된다. 내게 음식을 서빙해주긴 하는데, 실제로 웨이터가 하는 게 아니라 원형 쟁반이 돌아가면서 서빙하는 거니까, 귀찮고 게으른 웨이터를 위한 것이라는 의미에서 이름 붙여졌다고 한다.
우리 집 고양이 노엘이는 늘 배가 고프다. 스트릿에서 살 때 많이 굶었었는지 (흑흑ㅠㅠ) 밥을 충분히 줘도 늘 어디 먹을 것이 없나 식탁과 주방을 돌아다닌다. 처음 몇 년은 안 그랬는데, 노엘이가 어느 날 빵 봉지의 존재를 알게 됐다. 밤에 방에 있는데 노엘이가 야옹야옹 울면서 입에 빵 봉지를 물고 방으로 들어왔다. 꺄 진짜 너무 귀여웠는데 더 이상 살찌면 안 되는 노엘이에게 사람 음식은 가차 없이 절대 주지 않는다. 한편으로는 안쓰러웠다. 차라리 먹을 거면 몰래 조용히 부엌에서 먹고 들어오지 왜 방까지 가지고 들어와서 뺏기누.
그 뒤로 노엘이가 빵 봉지를 먹을 것으로 인식하여, 밖에 빵을 두면 비닐을 찢고 그걸 뜯어먹었다. 따흑 노엘아 의사 선생님이 너 이제 살찌면 안 된다고 했는데 먹으면 어떡하니...
그리하여 장만한 것이 케잌 커버 (cake cover)다. 원래 케잌 커버는 말 그대로 집에서 케잌을 먹고 나서 보관하기 위한 통 (혹은 운반하기 위한 통)인데, 우리는 노엘이가 빵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저 안에 빵을 넣어둔다. 빵뿐만 아니라 먹다 남은 과자나 쓰다 남은 버터를 그냥 주방에 두면 노엘이가 당장 훔쳐먹기 때문에 무조건 저 안에 둔다. 그래서 우리 집 케잌 커버는 먹는 잡동사니들이 가득 들어있다. 이걸 정말로 케잌을 위해 쓴 적은 딱 한번 있는데, 내가 남편 생일 때 큰 맘먹고 삼단 케잌을 만들었을 때 썼다. 뚜껑 높이가 굉장히 높아서 저 삼단 케잌이 쏙 다 들어갔다.
저 뚜껑을 밑에 받침과 딸깍 닫을 수 있어서 케잌을 운반하는 데도 매우 편리하다. 아마 미국에서는 집에서 케잌을 굽는 경우가 흔하니까, 어디 가져가야 할 때 저기에 담아 간다. 우리 과 비서 중 한 명이 베이킹을 아주 좋아해서 거의 매일 본인이 구운 빵, 과자 등을 학교에 가지고 온다. 가끔 케잌을 만들면 저런 케잌 커버에 담아가지고 왔다. 그걸 보고 영감을 얻어서 노엘이 방지용으로 샀다.
맥시멀 리스트 남편은 또 쓰지도 않을 것인 아마존 알렉사를 사 왔다. 이건 빅스비나 시리처럼 인공지능 어시스턴트인데 아마존에서 개발한 거다. 구글에서 개발한 건 구글 어시스턴트라고 부른다. 시리를 부를 때 "헤이 시리"라는 일종의 싸인이 있듯이, 이걸 부를 때는 "알렉사"하고 부른다. 참 그러고 보니 저번 연도에 내 수업을 들었던 학생 이름 중에 알렉사가 있었다. 알렉사는 집에서 알렉사를 못 쓸 듯... 이름 부르는 건데 저 기계가 계속 자기 부르는 줄 알고 착각하지 않을까.
암튼 알렉사는 스피커로도 쓸 수 있고 저걸로 전화도 받을 수 있고 뭐 등등 기능이 많은데, 사실 사놓고 거의 쓰질 않았다. 원래 집에서 음악을 잘 듣지도 않고 전화기도 늘 옆에 있으니까 딱히 쓸 일이 없었다. 그러다가 드미트리와 아만다네 집에 놀러 가서 같이 햄버거를 만들어 먹다가 드디어 알렉사의 용도를 발견했다.
그것은 바로 타이머 기능! 계란을 삶을 때, 라면을 끓일 때, 오븐에 쿠키를 구울 때 등등 요리할 때는 타이머를 맞춰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때마다 오븐에 있는 타이머를 손으로 꾹꾹 눌러서 타이머 설정을 하거나 핸드폰에서 타이머 설정을 했는데, 사실 이러면 많이 귀찮다. 오븐이나 핸드폰을 만지기 전에 손을 씻어야 하고, 타이머가 울리면 또 손을 씻고 다시 만져야 하고. 그리고 특히 오븐은 타이머 설정이 1개밖에 안되기 때문에, 타이머가 여러 개 필요할 때는 곤란하다.
아만다가 "알렉사, 5분 타이머 맞춰줘"라고 타이머를 맞추는 걸 보고 "아 왜 이걸 진작에 생각 못했지"싶었다. 손 씻고 자시고 할 것 없이 그냥 말로 부르면 되는 거였는데! 게다가 타이머 여러 개를 설정해야 한다면 알렉사, 10분 타이머 맞춰줘 등등 계속 추가하기만 하면 된다. 타이머마다 이름도 붙일 수 있다. 세상에 이렇게 편리한 것을 왜 몰랐을까. 집에서 찬밥신세에 먼지 구덩이를 쓰고 다니던 알렉사가 드디어 우리 집에서 쓰이고 있다. 진짜 편하다. 혹시 집에서 놀고 있는 구글 어시스턴트, 알렉사, 빅스비, 시리 제품등이 있다면 주방에 넣고 써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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