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로운 미국 주방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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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크리스마스가 되면 시댁에서는 바리바리 선물을 준다. 시엄마는 남편을 통해서 필요한 게 있는지 물어보는데, 우리는 맥시멀 리스트답게 딱히 필요한 게 없다. 그러다 보니 시엄마는 우리에게 무슨 선물을 줘야 할지 늘 고민이다. 궁여지책으로 우리가 시댁에 놀러 갈 때마다 우리가 하는 얘기를 주의 깊게 들었다가 그에 맞는 선물을 하나씩 사놓는 식으로 크리스마스를 준비하신다.
거나한 크리스마스 디너를 먹고 나면 다 같이 거실에 둘러앉아서 돌아가며 선물을 뜯어본다. 어릴 때도 크리스마스 때 이렇게 많은 선물을 받진 못했던 것 같은데. 다 커서도 선물을 받으니 기분이 좋긴 하다. 참고로 사진에 포장된 선물 외에 저 옆에 있는 액자 2개와 보드게임도 다 선물이다.
존 (남편 남동생)은 비싼 후라이팬을 사달라고 해서 아주 간단히 선물 한 개로 끝났다. 반면 우리는 이것저것 잡동사니를 많이 사주셔서 부피가 크다. 괜히 부자 된 느낌!
땡스기빙 때 시엄마네 갔다가 만두피를 아예 빚어서 만두를 만들었다. 내 편두통 식단 때문에, 땡스기빙 디너에서 먹을 수 있는 게 없길래 내가 먹을 용도로 만두를 빚었다. 만두피 반죽이 좀 질척여서 여기저기 들러붙길래 아일랜드에 밀가루를 퐝퐝 뿌리고 그 위에서 빚으려고 했다. 그때 시엄마가 저 천을 꺼내면서 이 천 위에서 반죽을 밀면 안 달라붙는다고 했다. 레알? 네 정말이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건 페이스츄리 천 (pastry cloth)라고 한다. 어디서 산 건진 모르겠는데 인터넷에 쳐 보니 아마존 등지에서 많이 판다. 이 천에 밀가루를 좀 뿌려서 시즈닝을 해야 하긴 하지만 그냥 주방 상판에다가 미는 것보다 훨씬 안 달라붙고 밀가루가 날리지 않는다. 오 이건 혁명입니다! 이렇게 무사히 만두피를 만들고 만두를 빚어 아주 맛있게 잘 먹었다. 진짜 시중에 파는 만두피보다 집에서 만든 게 훠얼씬 맛있었다. 문제는 귀찮죠...
울 언니도 땡스기빙 때 같이 갔는데, 편두통 식단 때문에 먹을 수 있는 빵이 한정적이라 언니가 날 위해 빵을 구워줬다. 빵 반죽을 하는 데에도 저 천을 썼는데 넘나 깔끔하고 반죽 안 들러붙고 최고였다. 언니와 내가 이런 발명품이 있냐며 며칠 동안 감탄을 했다. 그걸 기억하고 있다가 시엄마가 저 페이스츄리 천을 울 언니와 내게 하나씩 선물로 주셨다. 쏘 스윗~
이제 웬만큼 신기한 주방 용품은 다 봤다고 생각했는데 또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를 묻게 하는 물건이 나타났다. 돌아가면서 선물을 하나씩 뜯는데, 내 차례가 와서 이걸 뜯었다. 오잉? 이건 도대체 무슨 주걱이지? 밑 빠진 독 같은 주걱.
재작년이었나 3년 전이었나, 시엄마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엄청 좋은 냄비를 사줬다. 남편과 리조또 만드는 쿠킹 클래스를 들었는데 남편은 역시 그곳의 장비에 감동받았다. 거기서 썼던 냄비가 바닥이 진짜 두껍고 열이 골고루 전달된다나~ 암튼 리조또 냄비는 우리 집에 모셔두고 정말 리조또를 만들 때만 쓰는 고오급진 냄비 (Demeyere 브랜드. 광고 아님.)다.
시엄마가 올해 우리에게 줄 크리스마스 선물 아이디어가 떨어졌는지, 리조또에 도움될만한 주방기구를 찾았나 보다. 이건 바로 리조또 용 주걱 (risotto spoon)이다. 가운데가 텅 비어 있는 것이 특징! 리조또를 만들 때 그 특유의 찰짐을 만들어내려면 약 30분 동안 계속 휘저어 줘야 한다. 야채 볶고 나서 와인 넣고 센 불에 한 번 휘리릭 알콜기를 날린 뒤, 쌀 넣고 육수 넣고 30분을 계속 휘저어야 쌀이 찰지게 된다.
사실 그냥 주걱으로 휘저어도 전혀 상관은 없는데 생각보다 팔이 아프고, 마구 휘젓다 보면 밥알들이 자꾸 튀어서 주변이 좀 지저분해진다. 하지만 저 리조또 전용 주걱으로 저으면 팔도 덜 아프도 튀는 것도 적어서 좋다고 한다. 아참 그리고 밥알이 뭉개지는 것도 막아준다. 오늘도 우리 집은 맥시멀 리스트에서 더 진화했다.
참고로 리조또 용 고급진 냄비 (Demeyere sauce pan)는 요거. 사진 찍으려고 했으나 팬트리 맨 꼭대기에 모셔져 있어서... 귀찮아서 안 찍었습니다. 죄송. 다음에 쓸 때 찍을게여!
인터넷을 돌아다니다가 어디선가 이런 글을 봤다. 냉동실 문을 열었는데 사람 손이 잘려 있어서 식겁했다고. 알고 보니 어머님이 위생장갑에 다진 고기를 소분해서 두셨는데, 다진 고기 색깔 때문에 빨갛게 보여서 정말 손처럼 보였다고 한다. 그리고 필요할 때마다 손가락을 하나씩 부러뜨려서 쓴다고ㅋㅋ 너무나 공포스러운 말이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웃겼다. 아마 요 사진처럼 위생장갑 손가락마다 다진 고기를 넣으신 듯?
나는 손이 느려서 요리할 때 한 번에 많이 해 놓는 걸 좋아한다. 요리에는 규모의 경제가 있다. 그래서 페스토를 만들 때도 비타믹스에 꽉꽉 차게 한 바가지를 만든다. 오늘 먹을 것만 딱 해 놓고 나면 다음에 먹을 때 또 해야 하잖아요? 귀찮... 그리고 마늘은 샘스클럽에서 1.3킬로가 넘는 것을 사 와서 한 번에 다진다. 쓸 때마다 다지면 푸드 프로세서 매번 꺼냈다 집어넣었다, 설거지도 해야 하고 여간 성가신 게 아니다. 이렇게 왕창 페스토나 다진 마늘을 만들고 나면 소분이 문제다. 딱 1인분 씩 소분해서 두고 싶은데 우리 집에는 얼음 틀이 없어서 맥시멀 리스트답게 지금은 샀음 인터넷에서 본 것처럼 위생장갑 손가락 하나하나 마다 다진 마늘을 집어넣었다. 근데 생각보다 비닐이 잘 안 떨어지고 잘라 쓰기도 좀 불편했다.
시엄마가 준 선물 중엔 냉동실용 소분 보관통 (freezer portion trays)이 있었다. 사실 그냥 얼음 틀에 소분해서 얼려도 전혀 상관은 없다. 위생장갑에 실패한 우리 집은 실리콘으로 된 얼음 틀 (silicone ice cube tray)을 결국 사서 썼는데 생각보다 괜찮다. 문제는 뚜껑이 없으니까 성에가 낀다. 그래서 매 번 랩으로 칭칭 감아서 뒀는데, 맥시멀 리스트에겐 이런 건 귀찮죠?ㅋㅋ
이건 뚜껑이 있어서 성에를 예방할 수 있어서 좋고, 이 위에 뭘 올려놓을 수 있어서도 좋다. 하지만 제일 좋은 건 이렇게 소분해서 얼린 다음에 지퍼백에 모아 넣는 것이 공간 활용에는 제일 좋은 듯.
지금은 편두통 식단 조절 때문에 탄산음료를 완전히 끊었지만 난 미국에 와서 다이어트 콜라에 거의 중독이 됐다. 하루에 한 병 정도는 꼭 먹어줘야 시원했다. 이걸 아는 시엄마는 우리가 놀러 갈 때마다 다이어트 콜라를 많이 많이 구비해둔다. 근데 문제는 이게 캔이라는 거. 나는 앉은자리에서 캔 하나를 다 마시진 못한다. 그래서 대체로 플라스틱 병에 든 다이어트 콜라를 사서 나눠 마신다. 시댁에서는 이게 안되므로 좀 곤란했다.
이걸 알고 시엄마가 실리콘 캔 뚜껑 (silicone can cover)을 사줬다. 캔 뚜껑이라고 하면 잘 안 나와서 저 브랜드 명을 쳐야 나온다 (Smarter-Seal 광고 아님). 난 이제 탄산음료 못 마시는데 흑흑. 나중에 다시 마시게 되면 꼭 쓰리라! 캔음료를 마신다면 이게 운전할 때 요긴하게 쓰일 때 것 같긴 하다.
지난 편에서 우리 집에 있는 주방용 온도계를 소개했었다. 난 이것만으로도 행복했는데 어머나 주방용 온도계의 세상에도 급이 있었다. 이번 크리스마스 때 프라임 립 (크리스마스 디너는 요 편에)을 준비한 시이모가 온도계를 가지고 왔다. 세상에... 이런 것까지 필요할까 싶을 정도로 럭셔리한 온도계다. 이건 보통 명사가 따로 없어서 그냥 줄 달린 온도계(kitchen thermometer with probe)라고 칭하겠다. 이건 선물 받은 것은 아니고 이번 크리스마스에 시이모가 가지고 온 걸 보고 사진을 찍었다.
왜 럭셔리하냐면 (1) 오븐 문을 열었다 닫았다 하면서 온도를 확인하지 않아도 된다 (2) 정해 놓은 온도가 되면 알람이 울린다. 시이모는 (1)의 이유로 이걸 샀다고 한다. 사실 요리하다가 오븐 문을 열었다가 닫았다가 하면 오븐 내 온도가 훅 훅 떨어지므로, 되도록 안 여는 게 좋긴 하다. 그릴도 마찬가지. 그릴 문 한 번 열 때마다 온도가 확 내려가므로 웬만하면 안 여는 것이 좋다. 이 럭셔리 온도계는 probe라는 기다란 줄이 있는데, 한쪽 끝은 고기에 꽂아 두고, 오븐이나 그릴에 넣고 문을 닫고, 다른 한쪽 끝은 왼쪽 사진에 보이는 기계에 꽂는다. 그러면 온도 자체는 probe에서 재지만, 온도 표시를 밖에 있는 저 기계에 된다.
알람은 시간 혹은 온도로 맞출 수도 있다. 예를 들면 레서피에서 고기를 X 도까지는 뜨겁게 굽다가, 그 이상이 되면 약불에서 서서히 굽는 식으로 바뀌고, 시간이 T만큼 지나면 Y 도에서 브로일 (broil)을 해야 한다고 치자. 이 X, T, Y를 다 프로그램할 수 있다. 와우! 정말 지나치게 많은 걸 알려준다.
또 하나 신기했던 건 고기를 레스팅 할 때 이게 유용하다는 거다. 사실 어떤 온도에서 어떻게 해야 좋은 레스팅인 줄은 모르겠으나, 설명서를 읽어보니 그렇다고 한다. 기계 왼쪽 상단에 MAX, MIN이라고 써 있는데, 요리 시작할 때 리셋을 해 놓으면 조리 과정 중에서 가장 높고 낮은 온도를 표시해준다. 근데 이게 왜 레스팅에 도움이 된다는 건지는 나도 모르겠다... 고수님들 알려주세요!
이러고 보니 우리 시이모는 최고급 주방기구를 여러 개 갖고 있다. 시이모가 크리스마스 애피타이저 중에 하나로 랍스터 미니 치즈케익을 만들었다. 미니니까 보통 머핀 팬에다가 굽는데, 보통 머핀 팬을 쓰면 불상사가 일어나게 마련이다. 머핀이 나와야 하는데 안 나와... 억지로 꺼내려고 하면 보통 내용물이 다 망가지고 모양이 상한다. 따흑. 혹시 이 불상사가 궁금하다면 넷플리스에 있는 the Great British Baking Show를 꼭 보세요! 진짜 너무너무너무 강추하는 프로그램이다.
이 머핀 팬은 케잌 틀처럼 바닥이 분리된다! 찾아보니 보통 명사는 없고 그냥 바닥이 분리되는 머핀 팬 (muffin pan with removeable bottom)이라고 부른다. 사진처럼 위에서 내용물을 꺼내는 것이 아니라 바닥이 들리기 때문에, 바닥에서 위쪽으로 밀어내는 식이다. 이런 식의 팬은 보통 케잌 팬에서 자주 찾아볼 수 있는데, 이걸 머핀 팬에도 적용한 거다.
시이모는 두 팬을 구워왔는데, 신신당부를 한 것이 저 동그란 바닥 잃어버리지 말라고! 케잌 팬과 달리 바닥이 매우 작기 때문에 하나둘씩 어디 도망가기 쉽다. 그래서 설거지하기 전, 하는 도중, 하고 난 뒤에 총 24개가 맞나 확인을 했다. 분명히 24개였는데 말리고 나서 집어넣으려고 보니 23개인 거다. 시엄마 패닉. 주방을 싹싹 뒤졌고 쓰레기통까지 뒤져봤으나 아무 데도 없는 거다.
나중에 알고 보니 바닥 2개가 겹쳐 있었다. 휴~
이제 주방용품 소재가 다 떨어졌겠지 싶었는데, 여기저기서 이것도 신기하다 저것도 신기하다 말해줘서 급 소재가 늘었다. 원래 이정도 쓰려고 했는데 한 2-3편은 주방용품에 관해 더 쓸 것 같다.
다음 편 이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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