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개월~2개월] 언니, 도대체 왜 이래요?
그렇게 몇 주 쯤 더 지났을까?
세호 오빠가 맡게 된 큰 행사가 있었다. 지역 대학에서 회사 사업 홍보를 하는 일이었는데, 워낙 할 일이 많아서 다른 팀에서도 지원 인력이 차출되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나와 민경, 보라 언니도 갑작스레 홍보 지원을 하게 되었다.
세호 오빠를 비롯한 다른 인원들은 먼저 출장지에 가서 행사 준비를 하고 있었고, 뒤늦게 출장을 가게 된 나와 언니들은 우리만 따로 지낼 숙소와 이동 편을 예약해야 했다. 가급적 기존 인원들과 같은 숙소에서 머물고 싶었지만, 그 숙소는 예약이 꽉 차서 빈 방이 없었다. 설상가상, 회사에서 1일 숙박비로 지원해주는 금액은 35,000원. 솔직히 좋은 곳에서 잘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3명의 단체 채팅방-
나: 알아봤는데, 호텔은 못 갈 거 같고, 여기저기 알아봤더니 어떤 호스텔 같은 게 있더라고요. 그 기간에 예약자가 없어서 숙소를 우리끼리 쓸 수 있대요. 화장실도 방에 딸려있대요. 여기 어때요?
보라: 우리끼리만 쓰는 거면 괜찮아. 같이 알아봐야 되는데 고마워ㅠㅠ
민경: 정말 할 말이 없다. 김현수 휴게실로 와. 지금.
휴게실로 갔더니, 언니는 문을 걸어 잠갔다.
나 여기서 한 대 맞는 건가? 근데 왜 화난 거지?
“내가 그런 데서 잘 급이라고 생각해? It doesn't make any sense! 난 너희 같은 사람이 아니야. 그리고 보고 하려면 제대로 해. No more katalk. 쉽게 정보 파악할 수 있게 가격, 장점, 부대시설 뭐가 있는지 표로 만들어. 제대로 보고해.”
“네? 보고요?”
“윗사람한테 이런 식으로 얘기하고 끝내려고 했어? 편한 사이라도 공과 사는 구분해. 엑셀 할 줄 알면 엑셀로 파일 만들든지. 어쨌든 난 호텔에서만 자니까 제대로 알아봐. 나 해외 정말 많이 다녀봤거든? 근데 이런 대우는 처음이다 정말. What's wrong with you?”
우리가 편한 사이였나? 내가 알기론 그런 적이 없는데...게다가 다시 한번 상기시켜주자면, 나는 언니와 같은 직급의 동기다. 도대체 말이 안 통했다.
“그리고, 세호...는 어디서 자는데?"
"오빠가 있는 숙소 가는게 제일 좋긴한데, 거긴 지금 예약이 다 찼어요."
"하...so tired... 또 안된단 소리부터하지. 안 된다, 안 된다. 그런 생각이 하나하나 쌓여서 지금의 너를 만든 거야. 알겠니? 그리고 회사에서 오빠, 오빠 소리 좀 그만해."
"언니...근데 동기들끼리 있으니까 오빠, 언니 하는거고...저 다른 사람들 앞에선 오빠한테 오빠라고 안해요..."
"Stop. 이럴 시간에 빨리 가서 좀 알아볼래? please?"
말대답이라도 해야 하는데, 난 자리에 돌아와서 다시 호텔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맨날 소리 지르고 화내면서 이 정도로 앞 뒤 없이 사는 사람을 본 적이 없던 터라, 솔직히 언니가 너무 무서웠다. 언니랑 얘기를 하고 나면 다리가 후들거리는 느낌이었다.
인턴을 하면서 더 이상 사회생활에 두려울 것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큰 오산이었다는 것을 민경이 언니를 만나며 깨달았다. 어쨌든, 호텔을 검색하는데 역시 언니가 원하는 정도의 호텔을 가려면 예산이 턱없이 부족했다.
-3명의 단체 채팅방-
나: 여러분, 민경이 언니가 호텔을 원해서 알아봤는데, 호텔은 1박에 30만원 정도는 필요할 것 같아요.
보라: 하루 자면 되는 건데, 가격도 부담스럽고 그냥 현수가 처음 알아본 곳이 좋을 것 같아요. 언니, 하루만 같이 참아요. 언니가 좋은 침대 먼저 고르세요~
민경: 김현수. 누가 비싼 거 몰라? 비싸면 할인 쿠폰이라도 찾아봐야 할 것 아니야. 할인 쿠폰 뒤져봤어? 일 못하는 걸 여기서도 티 내야겠어?
맹세코, 나는 일을 잘하는 편이었다. 다만 바빠서 불필요한 일에 시간을 할애할 수 없었다. 게다가 민경이 언니는 정말 일이 없었다.
“민경씨, 이것 좀 알아봐 줄 수 있을까?”
“책임님, Um... 이건 제가 이미 대략적으로 알고 있는 내용이에요. 이걸 해도 제가 성장할 수는 없을 것 같네요. 책임님이 하시면서 역량 키워보시면 좋을 것 같네요.”
본인보다 10년 정도 먼저 입사한 사수가 업무를 시켰을 때도 언니는 저렇게 말했다. 진짜 뭐 저런 사람이 있나 싶었다.
내가 팀장이나 선배 입장이었다면, 민경이 언니에게 직접 말을 하면서 일을 해결하든지, 아니면 회사 차원에서 방법을 찾아보든지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냥 나와 보라, 세호에게 그 일을 다시 부탁하는 것으로 일을 해결했다. 민경이 언니가 일을 거절했을 때 잠시 기분 나쁘기는 했겠지만, 더 착한 애들이 대신 열심히 일을 해줬기 때문에 선배들은 그냥 그 상황을 방치했다. 덕분에 우리는 일복이 터진 상태였다.
바빠 죽겠는데 계속 호텔 노래를 부르니까 나도 힘든 상황이었고, 그걸 옆에서 지켜보는 보라 언니도 점점 이성을 잃어갔다.
“언니, 호텔이 그렇게 좋으시면 그냥 혼자 알아보세요. 왜 바쁜 애를 자꾸 힘들게 해요?”
“뭐? What? 김보라. 너 태도가 그게 뭐야?”
“가능하면 같은 숙소에서 자려고 했는데, 도저히 저희랑 수준이 안 맞으신다니까 그냥 따로 자요.”
“그래! 난 내 수준에 맞는 호텔에서 잘 거야!”
정작 보라 언니가 강하게 나오자, 민경이 언니는 화를 내며 사무실을 나가버렸다. 보라 언니 덕분에 호스텔을 예약했고 예약금까지 이체했다. 덕분에 일에 다시 집중할 수 있었지만 야근은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그날 야근 중에 민경이 언니에게 몇 차례 전화가 왔다.
“Hey. 그냥 너네랑 같이 자 줄게. 내 거도 돈 같이 보내.”
“저희 건 다 처리했어요. 예약하실 거면 계좌번호 보낼 테니까 예약 변경하고 돈 보내세요.”
“What? What did you say?”
“언니 저 야근 중이에요. 내일 봬요.”
언니가 실제로 내 눈앞에 있었다면 이렇게 반응하지 못했을 수도 있는데, 전화라서 조금 용기가 났었던 것 같다. 내가 저런 식으로 전화를 끊은 것이 못마땅했던 언니는 그날 나에게 12번 정도 더 전화를 걸었지만 나는 받지 않았다. 하지만 정작 전화를 안 받고 나니 그다음 날 혹시 맞기라도 할까 봐 두려워하며 고민하다 ‘언니, 죄송해요. 야근하느라고 전화를 못 받았어요.’라는 메시지를 남겨두었다.
그다음 날, 세 명은 오후 2시에 기차를 타고 가기로 했다. 오후까지 할 일이 없었던 민경이 언니는 콧노래로 정체 불명의 노래를 흥얼거리며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나와 보라 언니는 아직 일이 익숙지 않은 데다 민경이 언니가 하지 않는 일까지 맡고 있던 터라 기차 시간에 맞추기에도 촉박할 정도로 일이 많았다. 결국 끼니까지 거르고 일을 하고 있는데, 민경이 언니가 우리를 도발하기 시작했다.
“너희는, 출장이 있으면 미리미리 일 끝내 놔야지. 정말 옷만 그렇게 번지르르~ 그거 다 뭐하니? 프로답지가 않은데? 정말 하나부터 열까지 제대로 된 구석이 없네. Keep in mind. 출장 전에는 그 전 날에 미리 일을 끝내 둔다. Got it? 밥 먹자 빨리.”
그 도발에, 보라 언니는 이성의 끈이 끊어질락 말락 하는 듯했다.
“언니...지금 저희가 누구 때문에 일이 이렇게 많은진 아세요?”
“What?”
“언니가 할 일을 안 하니까 사람들이 자꾸 우리들한테만 일시키잖아요. 밥이 걱정이면 먼저 출발하세요. 점심 드시고 싶은 거 많이 드시고요. 저랑 현수는 알아서 할게요. 일이 누구 덕분에 너무 많아서요.”
“너 지금 나한테 말버릇이 그게 뭐야?”
“아니, 밥 먹고 싶다면서요. 출발하시라고요.”
“너 지금은 내가 밥 먹으러 출발해야 하니까 참아줄게. 내가 지켜볼 거야. 너.”
나는 옆에서 그 둘의 갈등을 지켜보면서 심장이 터질 것 같았지만, 그런 것을 신경 쓸 시간이 없었다. 나와 보라 언니는 내내 물 한 모금 못 마신 채로 일을 하고 겨우 택시를 타고 기차역으로 출발할 수 있었다.
“현수야, 그런데 나 진짜 걱정이야. 나 이번에 언니랑 싸울 것 같아. 싸이코 아니냐 진짜?”
“어? 민경이 언니 전화하는데? 네 언니.”
‘hey. 너네 점심 먹었어?’
“아니요. 김밥 같은 거 살까 하고...”
‘도넛 먹어. 내가 사 둘게.’
“감사해요...근데 보라 언니가 속이 안 좋아서 밥 먹으려고...”
‘Please stop complaining! 먹어 그냥. 두 번 말 안 해.’
하...내가 나도 모르는 새에 불평을 했나...?
우리를 생각해서 도넛을 사두려는 건지, 뭔지 모르겠지만 안 먹겠다고 하는데 꼭 도넛을 먹으라고 성을 내더니 전화를 끊어버렸다.
“보라 언니...민경이 언니가...”
“다 들었어...아...진짜...속이 안 좋다는데 왜 자꾸 사둔다는 거야. 근데 이거 우리가 예민한 거야? 언니가 우리 챙겨주는 건데 나만 기분 나쁜 거야? 아 몰라. 진짜 한 번만 더 건드리면 싸울 거야.”
그렇게 우리는 택시에서 함께 부들거렸지만, 서로를 다독이며 한 번 더 참기로 했다. 회사에서 신입이 서로 갈등한다는 것 자체에 우리는 부담을 느꼈다. 안 그래도 회사는 이상한 소문이 많이 나는 곳이니까. 그렇게 우리는 기차에서 언니가 사 온 도넛을 먹었다.
기차에서 민경이 언니는 잠들었고, 그 사이 남자친구와 통화를 하던 보라 언니는 충격적인 사실을 들었다.
“현수야, 근데 내가 오빠한테 오늘 일 얘기하면서 들었는데, 이 도넛 있잖아. 지금 행사하고 있어서, 2개 사면 하나 무료래.”
“어? 근데 돈은 다 받았잖아?”
“어...우리 챙겨준 게 아니라 우리 꺼 사면 자기가 공짜로 먹을 수 있어서 저런 거 같아. 아 진짜 자고 있는데 물 뿌릴까?”
물론 여기까지도 분노를 금할 수 없지만 더 한 일은 그날 밤 숙소에서 벌어졌다.
숙소에 화장실은 하나였고 우리는 나이순으로 샤워를 하기로 했다. 제일 먼저 민경이 언니가 샤워를 하러 들어갔고, 그 사이 나와 보라 언니는 내일부터 해야 하는 출장 업무에 대해 공부했다. 민경이 언니가 샤워를 마치고 나오자 그녀는 콧노래를 부르며 머리를 말렸다. 그다음에는 보라 언니가 샤워를 하러 들어갔다. 그런데 갑자기, 민경이 언니가 불을 다 끄기 시작했다. 화장실 불까지도! 화장실에 있던 보라 언니가 소리쳤다.
“현수야, 갑자기 불 꺼졌어. 불 좀 켜줘!”
“어...”
눈치를 보며 스위치를 누르러 가는 나에게 민경이 언니는,
“Stop! 불 켜지마.”
“네?”
“나 자야 되니까 불 켜지 말라고.”
“아니 방은 그렇다고 해도...보라 언니 지금 샤워하잖아요.”
“So what?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 나는 자야 되니까 불 끄라고. 창 때문에 불빛이 세어 나오잖아.”
“이러시면 어떡해요?”
“난 샤워 끝났잖아. 너희 핸드폰 좋아하잖아. 핸드폰 불빛으로 샤워하면 되겠네. 빨리 자자 좀. Leave me alone please!”
“주무시는 건 상관없고, 방이야 그렇다고 해도 샤워하는 사람한테는 이건 아니에요.”
라는 말을 마치고 화장실 스위치를 켰다.
그 순간, 민경 언니는 침대에서 일어나 다시 스위치를 껐다. 심장은 쿵쾅쿵쾅. 내가 다시 스위치를 켜려고 하자, 내 손을 때렸다. 생전 처음 접하는 종류의 사람이었다. 나는 억울하고 당황스러워서 눈물이 나려고 했다.
결국, 나는 화장실 스위치를 켜는 대신에 불빛이 세어 나오는 화장실 창문 앞에서 수건을 들고 불빛을 차단하고 있었다. 보라 언니는 나오자마자 화를 냈다.
“하...진짜 미친 거 아니야? 이 와중에 또 자는 거 봐라.”
놀랍게도 민경 언니는 그 와중에 잠이 들었고, 또다시 우리는 이 상황을 참기로 하며 조용히 샤워를 끝냈다. 하지만 이런 일은 그날 밤이 끝이 아니었다. 그다음 날 더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