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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unalogi May 30. 2020

Carnival(The last day)

바디;우리 몸 안내서

그림출처

마치 꿈인 듯이 흔적 없이 사라진다면 다 완벽할 것 같은데


나는 오래 전 미국에서 중학교를 다닐 때, 생물학 선생님이 5달러쯤 들고 철물점에 가면 사람을 만드는 데에 필요한 화학물질을 모두 살 수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던 일이 기억난다. 

삶은 끝없는 화학반응이다-스티브 존스(255p)

면역학 수업이었을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첫 면역학 수업을 위해 기다리고 있을때 였을 것이다. 

그때의 나는 가난했고 지쳐 있었으며 불안함과 신경질에 가득찬, 그 교실에서 극소수인 아시아인에 속한 채로. 나무 냄새와 낯선 냄새에 둘러싸여 있었다. 아무도 내게 말을 걸지 않았지만, 스스로가 느끼는 박탈감이나 열등감에 단단히 사로잡힌채로. 나는 그렇게 짜증스러운 기운을 열렬히 뿜어내며 자리에 앉아 있었다. 


매일 죽고 싶었고. 

매일 사라져버렸으면 했다. 

매일 아침 눈을 뜨지 않았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을 했다.마치  숨만 쉬는 죽은 거죽을 뒤집어 쓴 채 사는 것만 같았다. 나라는 존재가 얼마나 미천한지. 다른사람들보다 내가 더 잘 알았다. 왜 살아 있는 걸까. 어째서. 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너무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살아있다 라는 사실만으로도 이렇게 괴로울 수 있다니.그것도 겉으로는 너무 멀쩡하게 살아 있는게 이렇게 괴로울 수 있다니. 나는 그저 놀라울 뿐이었다.  


나는 거기 있었고 충분히 아름다웠다

그림출처

그러나 그 원자들은 당신이 존재하는 동안, 어떻게든 당신이 계속 활동을 하고, 당신을 당신으로 만들고, 당신에게 형태와 모습을 제공하고, 당신의 삶이라는 희귀하면서 대단히 흡족한 조건을 즐길 수 있도록 필요한 모든 무수한 체계들과 구조들을 만들고 유지할 것이다. 그 일은 당신이 실감하는 차원을 훨씬 넘어서는 엄청난 규모이다. -14p

말쑥하게 차려입은채 들어온 교수님은 아주 평온한 대화를 하듯 강의를 이어가셨다. 물론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내게는 그마저도 너무 힘들고 어려운 전쟁의 최전선이었다. 그러다 교수님의 말이 끊겼다. 의아했지만, 그 모든 교수님의 말씀을 다 받아 적은 뒤에 고개를 들었을때. 교수님은 마치 첫사랑을 보는 것 같은 눈을 하고는 슬라이드를 쳐다보고 계셨다. 그리고는 다시 고개를 돌려, 우리를 쳐다보았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시스템인가요 여러분. 


그때 나는 보았다.

그의 인생과, 그가 쏟은 노력을. 마치 이 강의실을 가득 메운 학생들 처럼 젊고 어렸던 그가 느꼈을 작지만, 심장을 가득 채웠을 희열을 보았다. 그리고 그 것을 시작으로 쌓아올렸을. 그의 작고 큰 성과들도 볼 수 있었다. 상처 가득하지만 영광도 함께 느꼈을 그의 생을 담은 그 한 문장이었다. 찰나는 미분이었겠지만, 모았더니 적분같았을 그의 인생을 담은 그런 문장이었다. 


나는 주접스럽게도 터져나오는 울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남은 강의시간 내내 눈물을 닦아내며 겨우 강의시간을 참아냈다.단지 그 한 마디였다. 그렇게 매료되어 버렸다. 너무도 작고 또 작기만 했던 내 존재를 아주 잠시 잊게 해주는 것과 동시에 이상하게도 마음이 조금은 후련해졌다. 해 볼만하지 않을까. 라는 점진적인 생각이 바로 들었던 것은 아니다. 이 작고 작은 것들이. 이 것들이 쌓이다 보면. 나 역시도 무언가를 쌓을 수 있겠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같은 작은 사람이라도. 마치 교수님이 그러했던 것 처럼. 그리고 잠시 향수에 젖은 저런 눈빛을 내 인생에서 한 번쯤은 나도 지으며 흐뭇해 할 수는 없을까. 라는 판타지 같기만 한 생각. 


이보다 완벽한 순간이 내게 또 올까
인간 삶의 기적은 우리가 어떤 약점들을 타고 난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에 매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21P

나는 가난했고약했다. 내 육신 하나도 제대로 다룰 수 없어 늘 힘들었고, 나를 괴롭히는 것들이 세상에 너무도 많았다.(결론적으로는 내가 단지 무서워 했던 것들이었지만)하지만 일어나기로 마음을 먹었을 때는. 그 것들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봐야 함을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다. 너무도 무섭고 괴로웠지만. 나는 오랫동안 숙여져있던 고개를 들기로. 그렇게 마음먹었다. 때로는 숙였던 고개가 더 초라하게 숙여졌고 때로는 겁없이 고개를 빳빳하게 들기도 했다. 비가 내리고 바람도 불어댔다. 나는 퍼질러 앉거나 누운채로 며칠을 소리죽여 울기도 했다.그리고는 포기하지 않았다.


우리는 나긋나긋하면서 단단해요-227p

버텨낸다. 라는 말에도 조금은 버거움을 느낄 정도로. 나는 근근히 살아나갔다.   나를 죽일 수 없는 것들은 나를 더 강하게 한다 했던가. 나는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발을 앞으로 디뎠다. 물론 한참 뒤에 뒤를 돌아보면 사선이기도 했고, 제자리를 맴맴 돌기도 했고. 샛길로 새기도 했었다. 피식 웃음이 나는 경로였다. 내가 고개를 뒤로 돌릴 때는 단지 그때 뿐이었다. 내가 얼마나 바보 같았지만 포기하지 않았는지를 확인하는 바로 그 때. 



나를 잊고 살아요

그림출처

화장을 하면, 무게 약 2킬로그램의 재가 남는다. 그것이 우리가 남기는 전부이다. 그러나 삶이란 살아볼 만하지 않았던가-514p

결국 그렇게 여기까지 왔다.

살아서.

그리고 아직 미숙하고 모자란 채로.


그날 그 문장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나는 아마 재(Ash)로 돌아가는 나의 카니발을 몇십년은 앞당겼을 것이다. 죽는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더 경험하지 못하고 더 느끼지 못한 채 아무말 하지 못하는 한 무더기의 재가 되었을 것이다. 


우리 몸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책인데도 불구하고 그닥 길지도 않은 인생을 보았다는게 우습고도 가소롭다. 하지만 철물점에서 5달러면 살 수 있는 것들로 구성된 나같은 먼지가 경험할 수 있는 최대치를 늘 경신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했다.결국은 다시 먼지로 돌아가게 되는 주제에 우리는 이 절묘하고도 아름다운 시스템(Body)을 가진채 살 수 있는 기회를 얻은것만 같다. 그러니 살아있는 동안은, 마지막 그 날이 올 때까지 나는 더 멀리 더 신나게 날아봐야 하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의무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마지막 날이 오면 미련 없이 좋은 생을 살았다고 말 한마디 할 수 있으면 내가 이 멋진 시스템을 가진, 혹은 빚진 것에 대한 값을 치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추신.

야근 ㅅ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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