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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킥더드림 Oct 02. 2022

달빛 내리는 남산에서 10

10
 족히 한 달은 지났을 무렵. 
 작년에 홍지는 어머니의 집과 멀지 않은 곳에 집을 얻었다. 오빠는 몇 년 전에게 결혼했고, 동생 둘은 어머니와 함께 산다. 늦은 밤 어머니가 사는 아파트 내 놀이터에서 동생 홍미를 만났다. 아무도 없는 놀이터 벤치에 나란히 앉았다.
 홍미가 짜증내듯 말한다. “언니가 보자고 계속 보채는 바람에 남자친구랑 밥만 먹고 헤어졌잖아. 무슨 일인데 그래?”
 “나, 남자친구 생겼어.”
 초점 없이 흐리멍덩하게 허공을 보던 홍미는 눈 앞에 맹수라도 나타난 것마냥 놀란다. 동그랗게 커진 눈과 떡 벌어진 입을 한 손으로 가린 채 홍지를 쳐다본다.
 "놀랬지?"
 "혹시 언니 회사에서 남자친구 역할을 하는 인공지능 로봇이라도 개발한 거야?"
 "우리 회사는 로봇은 안 만들어."
 홍미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뭐라는 거야, 진짜. 그런 뜻이 아니잖아. 어떤 정신 나간 사람이야?"
 홍지는 어떻게 만났고, 어떤 사람인지 한참 설명했다.
 "소개해준 분이 혹시 대학 때 언니가 혼자 좋아했다는 그 선배야?"
 홍지는 놀란 눈으로 홍미를 본다. "맞아. 너 기억력 좋다. 그런 거 어떻게 기억해? 태호 선배를 잠깐 좋아하던 때가 있었지."
 "들어보니 언니 남자친구는 완전 멀쩡한 사람 같은데 왜 언니를 만나는 걸까?”
 “남자친구는 결혼 직전까지 갔다가 파혼한 적이 있어.”
 “지금 설마 파혼했다고 멀쩡한 사람이 아니라고 얘기하는 건 아니겠지?”
 “그런 뜻으로 한 얘기는 아니고. 너는 맨날 나만 이상한 사람 취급하니까 그렇지.”
 “파혼한 게 신경 쓰이는 건 아니지?”
 “그런 건 전혀 아니야.”
 “언니처럼 그 나이에 연애 한 번도 못해 본 것보다 파혼한 게 훨씬 나아. 누군가를 만났다 헤어지는 과정에서 좋아도 하고, 질투도 하고, 오해도 하고, 이해도 하고, 다투기도 하고, 화해도 하고, 화도 나고, 미워도 하고, 괴로워도 하고, 아파도 하고. 이런 감정의 소용돌이를 경험하면서 소통과 공감을 배울 수 있다는 말이지. 이십 대 초, 중반이야 연애 못 할 수 있다 치지만 서른이 넘었는데 연애 한 번도 못 해봤다고 하면 나 같으면 싫을 것 같아. 파혼 열 번 하는 게 낫지. 걱정이다. 언니는 타고나기를 상대방 감정을 잘 헤아리지 못하는데다가 경험을 통한 학습까지도 전혀 안 돼있으니까 말이야.”
 “야! 우리가 형제도 많은데다가 갑자기 집안이 어려워지면서 스스로 챙겨야 하는 상황에 놓이다 보니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능력이 부족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나는 그런 나의 모습을 받아들이고 개선하려고 노력하고 있어.”
 홍미가 어이없는 표정을 짓는다. “내가 잘 못 들은 건 아니지? 우리라니 무슨 소리하는 거야? 언니만 그래. 나랑 오빠랑 홍석이는 안 그렇다고.”
 “내가 더 그런가?”
 “더가 아니고 만. 집안 어려워진 거랑, 형제 많은 거랑 아무 상관 없어. 언니는 어릴 때부터 그냥 특이했어. 기억나는지 모르겠지만 어렸을 때 내가 길에서 뛰다가 넘어져서 울고 있는데, 언니가 나를 일으켜 세우더니 달래주지는 않고 무릎에 난 상처를 빤히 쳐다보고만 있었어. 뒤따라 오던 엄마가 황급히 달려와서 나를 안고 달래 주는 상황에서 언니가 엄마한테 아파서 울 정도로 다친 건 아니라고 일부러 우는 척하는 거라고 그랬어. 그때 언니가 표정 없는 얼굴로 무뚝뚝하게 말하던 게 나한테는 너무 생생하게 남아있어.”
 “지금은 아이들이 넘어지면 크게 다치지 않아도 놀라서 운다는 걸 알지만, 그때는 잘 몰라서 그랬던 거야.”
 “아무리 몰라도 누가 그렇게 얘기해? 이런 이상한 게 한 두 가지가 아니야. 한번은 집에서 내가 울고 있었는데 엄마가 언니한테 나를 달래주라고 시킨 적이 있어. 그래서 언니가 나를 몇 번 달랬는데도 울음을 그치지 않자, 언니는 부엌에 있는 밀가루를 가지고 와서 내 머리 위에 전부 쏟아 부었어. 기억나지?”
 “그렇게 했더니 울음은 그쳤고 네가 밀가루 가지고 놀기 시작했었던 걸로 기억해. 방법이 세련되지 않아서 그렇지 어린 아이가 할 수 있는 나름 훌륭한 해결책이지 않나?”
 “무슨 소리하는 거야? 상식에서 많이 벗어난 행동이지. 그리고 초등학교 때 옆에 앉은 남자애가 수업시간에 자꾸 말 건다고 그 자리에서 일어나서 그 애 따귀를 때린 일도 있었잖아. 도대체 그게 정상적인 행동이냐고? 엄마가 학교 불려가서 얼마나 난감했겠어.”
 “칭찬받을 행동은 아니긴 하지만, 내가 그 친구한테 한 번만 더 말 걸면 때릴 거라고 경고를 하기는 했어.”
 홍미는 어이없는 눈빛으로 홍지를 쏘아본다.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는 거야?”
 “나도 내가 어딘가 남들과 다르다는 거 알고 있어. 이유야 어찌됐든 주변 사람에게 별로 관심이 없고 관심이 없다 보니 다른 사람 감정이나 기분을 읽는데 미숙한 것 같아. 알고 있고 바꾸려고 노력하는 중이야.”
 “언니가 연애를 한다고 하니까 기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걱정이 크다. 그래도 어릴 때 비하면 많이 좋아졌지. 완전 사이코 같았는데 지금은 그 정도는 아니니까. 다 내 덕인 줄 알아.”
 “홍미야, 걱정 하지마. 관계, 소통, 연애에 대해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중이야. 요새는 말투랑 표정 연습도 하고 있어. 특히 자연스러운 환한 미소.”
 홍미는 짧게 한 숨을 내뱉는다. “언니가 공부 하나는 잘 하지. 그게 공부로 될 수 있는 건지는 모르겠다. 남자친구 좋아?”
 “당연히 좋으니까 사귀는 거지.”
 “그래도 누군가를 좋아하는 감정이 있다니 천만 다행이야. 그것마저도 없는 줄 알았는데.”
 “너는 도대체 나를 어떻게 보는 거야? 가슴도 두근거리고 그런단 말이야.”
 이때 무언가가 홍지 머리 위로 떨어졌다. 머리에서 튕겨져 바닥에 “타닥”하는 소리를 내며 나뒹군다. 손톱만한 크기의 하얀 물체 두 개다. 홍지는 바닥에 떨어진 것을 집어 들었고 가만히 보니 얼음 알갱이다. 고개를 들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주위 아파트를 올려다 본다.
 홍미도 고개를 들어 위를 본다. “뭐야? 위에서 누가 던진 건가?”
 “그러게 말이야. 아무도 안 보이는데. 우박인가?”
 깜깜한 하늘에 달이 떠있고 그 주위에 작은 구름 하나가 있을 뿐이다. 우박이 내릴 그런 날씨는 전혀 아니다.
 “뭔지 모르겠네. 하늘에서 떨어진 건 아닐 테고 동네 아이들이 숨어서 장난쳤나 보다. 언니 이제 들어가자. 많이 늦었다. 내일 출근해야지.”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홍미는 초등학교 사학년이 됐을 무렵 홍지가 일반적이지 않다고 직감적으로 느꼈고, 언니는 이상한 사람이라는 말을 반복해서 했다. 홍미가 그런 말을 할 때 마다 홍지는 신경 쓰지 않고 흘려 들었다. 중학교에 와서 친구 중에도, 선생님 중에도 홍미와 같은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제서야 홍지는 홍미 말이 맞을 수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삶에 불편함이 없었기에 개선할 필요를 못 느꼈다. 고등학생이 돼서는 사람들과 친밀해지고 싶은 욕구가 커졌고, 자신으로 인해서 생기는 불편한 상황이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자신을 바꿔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홍미가 다양한 상황 별로 가르치고, 알려주고 했으나 눈치가 생기고, 다른 사람 감정을 읽는 것이 홍지에게는 좀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할 수 있는 상황과 행동을 외워서 최대한 거기에 맞게 대처하고 있다. 시간이 쌓이면서 이러한 노력은 큰 효과를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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