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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킥더드림 Oct 01. 2022

달빛 내리는 남산에서 8

8
 “대학교 사학년 때 친구가 자살한 일이 있었어. 두 번째 이유는 그 때문이야.” 태호가 담담하게 말했다.
 “친한 친구였어?”
 “같은 과였고 많이 친했어.”
 “왜 그런 거야?”
 “글쎄, 평상시에 이상과 현실의 괴리가 너무 크다며 많이 힘들어했었는데 그게 이유인지는 모르겠어. 우울증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해.”
 “꿈이 뭐였길래, 이상과 현실의 괴리감을 크다고 느꼈던 걸까?”
 “그것도 몰라. 꿈꾸는 이상이 무엇이길래 힘들어하냐고 물어봐도 대답해주지 않았어.“
 "그걸 왜 안 알려주는 거지?"
 "그러니까 말이야. 걔가 좀 폐쇄적인 데가 있었어. 어쨌든 갑자기 친한 친구가 세상을 떠나니까 삶은 단 한 번뿐이고 인생은 의외로 짧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너무 강렬하게 들더라고.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하고 싶었던 일을 무조건 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됐어."
 "친구의 죽음이 큰 계가 된 거네. 그런데 어떻게 보면 결국 하고 싶은 걸 하면서 돈도 많이 벌겠다는 게 이유라고 할 수 있겠네." 

“맞아, 바로 그거야. 그리고 너한테 궁금한 게 하나 있어.” 
 "뭔데?" 
 “너 예전에 결혼할 뻔한 여자친구 있잖아. 이름이 선미씨였나?”
 “응, 진선미. 갑자기 선미는 왜?”
 “그때 선미씨랑 왜 파혼한 거야? 한 달도 안 남았었던 것 같은데.”
 “형한테 얘기 안 했었나? 했던 것 같은데.”
 “응, 얘기 안 했어. 그때는 바빠서 자주 못 볼 때였어.”
 “그랬구나. 어느 날 섹스를 하는데 선미가 느닷없이 나한테 욕해달라고 하는 거야.”
 “응? 관계 중에 선미씨가 욕을 했다는 거야?” 태호는 자신이 잘못 들었다고 생각했다.
 “아니, 선미가 나한테 욕을 해달라고 요구했어. 글쎄 쌍욕을 해달라고 하더라고. 자기는 원래 욕을 들어야만 흥분이 된다면서.”
 “절정에 이르렀을 때 너한테 욕으로 감탄사를 해달라는 뭐.. 그런 건가?”
 “아니, 그냥 처음부터 자기한테 막 욕을 하라는 말이었어.”
 “그.. 그렇구나. 선미씨가 겉으로 보이는 이미지랑은 완전히 다른 면이 있네. 그래서 욕을 했어?”
 “아니, 갑자기 욕을 어떻게 해? 그런 요구를 받으니까 머리가 멍해지고 아무 생각이 안 들더라고. 섹스하고 싶은 마음이 싹 달아났어. 그 일 때문에 파혼하기로 결심한 거야.”
 “삼 년 넘게 만났는데 언제 그런 요구를 한 거야?”
 “결혼을 두 달 정도 앞두고 그랬어.”
 태호의 표정에 흥미로움이 가득하다. “두 달 앞두고? 그런데 오로지 그것 때문에 파혼한 거야? 다른 이유는 없어?” 
 “다른 이유는 없어. 욕해달라고 하는 게 이해도 안 되고 너무 이상한 거야. 한 달 정도 엄청 고민했는데 도저히 결혼을 못하겠더라고. 어떻게 보면 그냥 취향일 수도 있는 건데, 도저히 못 받아 들이겠더라고. 걔가 이상한 애면 어떡하지, 내가 모르는 이상한 무언가가 더 있으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이 계속 머리 속을 지배했어. 형 같으면 어땠을 것 같아?”
 “나는 욕했을 것 같아. 색다르기도 하고 자극적이어서 더 재미있을 것 같은데.”
 “몇 년 동안 그런 성향을 숨기다가 결혼을 얼마 앞에 두고 그런 요구를 했는데도 말이야? 형 같으면 결혼할 수 있어?”
 “당연히 처음에는 많이 당황스럽겠지. 그래도 그것 때문에 파혼하지는 않았을 것 같아. 오히려 나는 그 이유 하나 때문에 파혼했다는 것이 이해가 안 되는데. 혹시 네 자신도 모르는 다른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시우는 골똘히 생각해 본다. “정말 다른 이유는 없었어. 당시에 욕해달라고 하는 게 계속 머릿속에서 맴돌았어. 내가 이상한 건지 모르겠지만 받아들이지 못하겠더라고.”
 “그게 계속 마음에 걸렸다면 이유야 어찌됐든 그렇게 선택할 수밖에 없는 거지. 오늘 몰랐던 사실을 알았는데. 정말 상상도 못할 이유로 파혼한 거였네.”
 "그렇지, 쉽게 상상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 그런데 형, 홍지 대학 다닐 때 인기 많았지?”
 "인기 많았어. 예쁘잖아. 거기다가 물리학과는 여자도 많지 않고. 아까 말한 자살한 친구도 홍지를 좋아했었어."
 "그랬구나. 둘이 뭐 없었어?"
 “아무 일도 없었어. 홍지는 아마 그 친구가 자신을 좋아했다는 것도 모를 걸.”
 “고백도 안 했던 거야?”
 "내가 알기로는 고백 안 했어. 그냥 혼자 마음앓이 했어."
 "좋아했는데 왜 고백 안 했을까?"
 "글쎄, 그것까지는 모르겠네. 남자들 중에 거절당할까 봐 고백 못하는 경우 있잖아.” 말을 하다가 무언가가 문득 떠올랐다. “아 맞다. 그 친구가 나랑 홍지랑 사귄다고 오해한 적이 있어. 홍지랑 같이 영화 보러 다니던 때가 있었거든. 그걸 보고 오해를 했나 보더라고. 내가 분명히 아니라고 했는데도 말이지. 그리고 사실은 나도 홍지를 잠깐 좋아했던 적이 있었어." 태호는 곁눈질로 시우를 쳐다본다.
 "정말? 그런데 왜 날 소개시켜 준 거야?" 시우는 내심 놀랐지만 티를 내지 않았다.
 "그냥 잠시 호감이 있었던 것뿐이야. 너도 그렇고 홍지도 다 내가 좋아하는 동생인데 소개 못 시켜 줄 이유가 없지."
 "형은 고백 안 했어?"
 "나는 고백하려고 했어. 지금도 기억나는데 홍지랑 같이 남산에 갔던 적이 있었거든. 예쁜 초승달이 뜬 밤이었어. 고백하려고 하는데 그 친구가 홍지를 좋아하고 있다는 게 계속 신경 쓰이더라고. 그래서 결국 안 했고 바로 마음을 접었어. 그러고 몇 달 후에 난 여자친구 생겼어."
 "친구 둘이서 한 여자를 좋아했구나. 형이 좋아했다는 사실을 홍지는 알았어?"
 “당연히 모르지. 나는 그냥 아주 잠시였다니까 사실 좋아했다고 말하기도 그래. 내가 괜한 얘기를 했나? 혹시 기분 나쁜 건 아니지?” 
 시우는 아니라는 표현의 눈웃음을 지어 보인다. "기분이 왜 나빠? 솔직히 말해줘서 오히려 고맙지. 나 이제 사무실 들어가봐야겠다.”
 두 사람은 헤어졌고 시우는 사무실로, 태호는 집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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