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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킥더드림 Oct 03. 2022

달빛 내리는 남산에서 11

11
 대략 두 달은 지났을 무렵 어느 토요일 오후. 
 시우는 차를 몰고 홍지 집으로 가고 있다. 교외로 빠져나가는 차들이 많아서 도로가 심하게 막힌다. 반포에서 용인까지 한 시간이 훨씬 넘게 걸렸고 약속한 시간보다 많이 늦었다. 차가 막혀 늦는다고 미리 말했지만 오는 내내 마음이 초조했다. 홍지는 미리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고 시우는 한없이 미안한 표정으로 맞이한다. 홍지는 차에 타자마자 얼굴 한 가득 밝은 미소를 띠며 시우의 미안한 마음을 누그러뜨린다. 미리 검색한 식당을 시우에게 보여주면서 배고프니까 얼른 점심 먹으러 가자고 한다. 짜증이 날 수도, 화를 낼 수도 있는 상황이지만 아무렇지 않아하는 홍지의 모습이 좋다. 아직 사귄 지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그 동안 이런 작은 마음이 시우 안에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다. 신호에 걸렸다. 차가 멈춘 틈을 이용해 고개를 돌려 홍지를 본다. 숱 많은 머리를 바짝 뒤로 묶어 옆모습이 그대로 보인다. 도자기 같은 피부, 매끄러운 턱 선, 입체적인 이목구비, 어느 하나 흠잡을 데 없이 아름답다. 시우는 살며시 미소를 지었고, 홍지는 자신에게 오는 시선을 알아채지 못한 채 지난 밤 꿈 이야기를 한다. 신호는 파란 불로 바뀌었다.
 "예전에 내가 꿈 얘기한 적 있었잖아. 혹시 기억해?”
 "당연히 기억하지. 올빼미가 사람으로 변하는 꿈 맞지?"
 "맞아. 어제 그때 꾼 꿈이랑 똑같은 꿈을 꿨어.”
 “똑 같은 꿈을 꿨다고?”
 “완전히 똑 같은 꿈이었어. 그때처럼 옅은 색 푸른 드레스를 입고 걸어가는데 올빼미를 또 마주쳤고 나는 이번에도 놀라서 보자마자 도망갔어. 도망가고 있는데 그 올빼미가 내 앞으로 날아와서 저번처럼 “펑”하는 소리와 함께 하얀 연기가 피어 오르더니 잠시 후 사람으로 변했어."
 "진짜 똑 같네. 이번에는 누구로 변하는지 봤어?”
 “누군지 확인하려고 가만히 서서 봤지. 서서히 연기가 걷히더니 그 모습을 드러냈어.”
 ”혹시 나 아니었어?"
 홍지는 고개를 흔든다. "우리 회사 경영관리 부서에서 일하는 친한 선배였어."
 "경영관리 부서 사람이라고? 누군지 궁금했었는데 마지막이 너무 싱겁게 끝난 느낌이야. 경영관리 부서하고는 교류가 별로 없지 않아?"
 "거의 없지. 오래 전에 사내교육을 같이 받으면서 친해진 선배야. 그런데 올빼미가 왜 그 선배로 변했을까?"


오 년 전 홍지는 일주일 동안 받는 사내교육에서 경영관리 부서에서 일하는 이미소를 알게 됐다. 같은 조원이었고 연수원 방도 같이 썼다. 경영관리 부서 사람 한 명 정도 알아두면 회사생활에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아 친하게 지내야겠다고 생각했다. 미소와 친해지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매일 저녁 연수원 숙소에서 미소와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미소는 은근히 자기 자랑을 많이 하는 편이었고 홍지는 적절히 반응하면서 그녀의 이야기를 들었을 뿐이다. 그랬더니 미소가 말이 너무 잘 통한다면서 교육이 끝나도 계속 만나자고 하는 거다. 그렇게 그 교육 이후로 정기적으로 만나면서 친분을 유지해오고 있다.


“올빼미로 변신한 사람이 은근히 나라고 기대했는데 아니라니까 섭섭하네. 그 선배라는 분은 홍지보다 나이가 얼마나 많아?”
 “나보다 다섯 살 많아. 관리부서 팀장이랑 친하니까 좋은 점이 많아.”
 “맞아. 관리부서 사람들이랑 친해서 나쁠 것 없지. 팀장이면 진급이 빠른 편인 것 같은데, 그렇지 않아?”
 “나이나 경력에 비해서 엄청 빨리 진급 했어.”
 “일을 엄청 잘 하거나, 정치를 잘 하거나 둘 중 하나겠네.”
 “사실 그 선배 소문이 있는데, 경영관리 상무랑 불륜 관계라는 말이 있어.”
 “정말? 잘 나가니까 사람들이 만들어낸 소문일 수도 있잖아. 결혼은 했어?”
 “그럼 결혼했지. 애가 둘이야.” 홍지가 창 밖을 보면서 말한다. “그 선배 집이 여기서 멀지 않다고 들었는데.”
 “친하면 어느 정도 감이 있을 거잖아. 정말 불륜일 것 같아?”
 “내가 보기에는 그럴 사람 같아 보이지는 않아. 그 선배 말을 들어봐도 그렇고, SNS를 봐도 세상에 그렇게 행복한 가족이 없어. 그런데 설마 그랬겠어.”
 “뭐 어떻게 살길래 그러는 거야?” 시우가 물었다.
 “가족이 매우 화목해. 경제적으로도 여유롭고. 전원주택에 사는데 집도 엄청 좋아. 멋진 정원도 있고 실내도 고급스럽게 잘 꾸몄더라고.”
 “집에 가봤어?”
 “가보지는 않고 사진으로만 봤지. SNS에 엄청 올려. 국내든, 해외든 좋은 곳은 다 다녀. 삶이 굉장히 화려해 보이고 세상 즐거움을 다 누리고 사는 것 같아. 남자친구 생겼다니까 집으로 한번 초대하겠데. 언제쯤 초대하려나, 집이 얼마나 좋은지 직접 눈으로 보고 싶거든.”
 사거리를 지나기 직전 신호가 빨간색으로 바뀌었고 차를 멈췄다. 이때다 하고 홍지는 미소의 SNS 계정을 시우에게 보여준다. 시우는 SNS에 올라와 있는 사진을 손가락으로 스크롤을 하면서 본다. 홍지 말대로 사진 속의 삶이 매우 화려해 보인다. 좋은 곳에서 멋진 옷을 입고 찍은 사진들로 가득하다. 남편은 인상이 매우 좋고 아이들도 예쁘게 생겼다. 첫째는 아들이고, 둘째는 딸인 것 같다. 아이들 사진은 한 장, 한 장이 다 마치 아동복 화보 같다. 아이들의 자연스러운 일상 사진은 잘 눈에 띄지 않는다. 계속 스크롤을 하다가 한 사진에 눈길이 간다. 어머니로 보이는 중년 여성과 다정하게 둘이 찍은 사진이다. 중년 여성은 대단한 미인이다. 사진 밑에 ‘Happy mother's day!’라고 시작되는 꽤나 긴 글이 적혀있고, 시우는 작은 소리로 그 글을 빨리 읽는다.


우리 엄마는 누구나 인정하는 미인이다. 어릴 때부터 예쁘다는 말을 수도 없이 듣고 자랐다고 하고, 아마 주변의 많은 사람들로부터 부러움에 대상이었으리라 짐작된다. 초등학교 때까지는 예쁘다는 말이 마냥 좋았다지만, 중학교에 가고부터는 생각이 달라졌다고 한다. 예쁘다는 칭찬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의문을 품었다는 엄마. 어느 순간부터 예쁘다는 말 보다 똑똑하다, 공부도 잘 한다는 칭찬이 더 좋았다고 한다. 엄마는 그냥 예쁘다는 칭찬은 실력은 없다는 뜻인 것 같아서 듣기 거북했다고 하니 보통 사람은 분명 아니다. 그래서 외모로 평가 받지 않기 위해 학생 때부터 사회에 나와서까지 언제나 끊임없이 자신에게 채찍질해가며 엄청나게 노력했다고 한다. 엄마 덕분에(혹은 탓에?) 나도 그런 성향을 그대로 물려받았다. 엄마의 미모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엄마 닮았다는 소리를 많이 듣고 자랐다. 엄마를 닮은 내가 겉으로 드러나는 것보다 노력을 통해 내면을 알차게 쌓아가는 것이 진짜 아름다움이라는 것을 일찍이 깨닫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외적인 아름다움은 허상일 뿐이다. 그래서 가만히 있으면 늘 불안하다. 이 불안함을 극복하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연마해 오늘 날의 내가 될 수 있었다. 진짜 아름다움을 물려주고 무엇인지 깨닫게 해 준 우리 엄마. 나도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배운걸 우리 아이들에게 잘 물려줘야 한다는 마음으로 이 글을 마친다.


글을 다 읽자마자 신호가 파란색으로 바뀌었다. 얼른 전화기를 홍지에게 건네주고 차를 출발시켰다.
 "우리나라는 어버이날 있는데, 이 분은 미국처럼 mother's day를 따로 기념하나 보네. 외국에서 오래 살았나 봐?" 시우가 말했다.
 "외국에서 산 적은 없는 걸로 알고 있어. 원래 이 선배가 그런 허세가 좀 있는 편이야. 방금 읽은 글에서도 그런 게 느껴지지?"
 "그래 보이네. 예쁘다는 칭찬 들으면 좋은 거 아니야?” 
 "완전 좋지. 예쁘다는 말을 왜 실력이 없다는 걸로 받아들이는지 이해가 안돼. 이 선배 외적인 것에 신경 많이 쓰는 편인데 안 그런 척하는 게 좀 그래. 그리고 성격이 굉장히 예민해. 조금만 스트레스 받아도 몸에 열나고 속이 안 좋아서 조퇴하는 경우가 많아. 몸이 많이 약한 편이야. 그런데 오늘 차가 왜 이렇게 많이 막히지. 옆에 대형 마트가 있어서 이 주변이 더 막히는 건가?"
 차가 많아서 속도를 낼 수 없다. 서행으로 가다가 신호에 걸렸다. 대형 마트가 있는 사거리를 지난 후부터는 차량 통행이 원활해 보인다. 
 “아무래도 마트 때문에 막히는 것 같아. 이 사거리만 지나면 금방 식당에 도착할 것 같으니까 조금만 참아.” 시우가 말했다.
 직진신호로 바뀌었고 앞에 서 있던 차들이 차례로 빠지기 시작한다. 이번 신호에 지나갈 수 있을지 애매하다. 바로 앞차가 사거리를 지나기 위해 속도를 높였고 시우도 따라서 액셀러레이터를 세게 밟았다. 이때 노란색 신호로 바뀌면서 앞차가 급정거를 했다. 시우도 바로 브레이크를 밟았다. “끼이익”하는 타이어 음이 났고 아슬아슬하게 앞차와 부딪치지 않았다. 가슴을 쓸어 내릴 새도 없이 “쿵”하는 소리와 함께 부딪치는 충격이 뒤로부터 전달 됐다. 뒤따라오던 차에 받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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