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킥더드림 Oct 03. 2022

달빛 내리는 남산에서 12

12
 시우는 차에서 내려 재빨리 뒤로 달려가 범퍼 상태를 확인한다. 약간 긁힌 정도이고 심하게 파손되지는 않았다. 뒤차에서는 부부로 보이는 남자와 여자가 내린다. 두 사람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홍지는 뒤차에서 내린 여자를 보고 깜짝 놀랐다. 방금 전에 차에서 얘기했던 바로 그 사람, 미소였기 때문이다. 미소는 차 상태를 살피느라 미처 홍지를 보지 못했다. 
 “팀장님!”
 그제서야 미소는 홍지를 봤다. “홍지씨? 홍지씨가 여기 어떻게?” 깜짝 놀란 표정이다.
 “오빠, 인사해. 우리 회사 경영관리 팀장님이셔.”
 “경영관리 팀장님이라고?” 시우는 이게 무슨 영문인지 어리둥절하다. “아.. 네.. 안녕하세요? 저희 때문에 길이 많이 막히니 일단 차부터 옆으로 빼는 게 어떨까요?”
 미소와 남편은 마트에 장보러 가는 길이었고, 접촉 사고로 공교롭게 네 사람은 인사를 나누게 됐다. 미소 남편이 미안한 표정으로 자신의 과실이니 보험 처리를 하겠다고 했고, 미소는 그렇지 않아도 두 사람을 집에 한번 초대하려고 했는데 오늘 저녁이 어떠냐고 물었다. 별다른 계획이 없던 홍지와 시우는 초대에 응했다. 저녁 여섯 시에 만나기로 하고 바로 헤어졌다. 


차를 몰고 미소의 집으로 가는 중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지. 너무 이상한 일이야.” 홍지가 말했다.
 “그러니까. 홍지가 어제 그 선배분 꿈을 꿨고, 그 선배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는 도중 그 선배의 차가 우리 차를 받은 거잖아. 정말 현실 같지 않은 일이 벌어졌어.”
 미소의 집에 거의 다 와간다. 시우의 차는 전원 주택이 모여있는 길을 따라 서행하고 있다.
 시우가 차창 밖을 유심히 둘러보며 말한다. “여기에 이런 주택이 모여있는 곳이 있었구나. 집들이 하나같이 다 예쁘다.” 네비게이션을 본다. “이 근방 어디인 것 같은데.” 
 홍지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한다. “바로 저 집이야. SNS에서 봤어.”
 정문 앞 도로 변에 세우고 차에서 내렸다. 가슴 높이의 담 너머 잔디가 촘촘하게 깔린 정원이 보인다. 집은 각기 다른 사이즈의 직육면체 세 개를 포개놓은 모양으로 되어있다. 외관의 디자인이 예사로워 보이지 않는다. 필히 유명 건축가가 설계했을 것이라고 시우는 생각했다.
 “우아, 집이 너무 예쁘다. 나도 이런 곳에서 살아보고 싶다.” 시우가 벨을 누르면서 말했다.
 “그러게 예쁘다. 사진 상으로는 엄청 커 보였는데 그렇지는 않네.”
 “덜컹” 소리를 내며 대문이 자동으로 열렸고 시우와 홍지는 안으로 들어간다. 정문에서 집까지 납작한 돌로 길이 나있다. 그 돌길을 두고 바로 옆 잔디를 밟으면 걸어간다. 잔디를 밟는 느낌이 폭신폭신하다. 
 그때 현관문을 열고 나온 미소의 가족이 눈에 들어왔다. 
 "저기 나오셨다. 얼른 가자." 시우는 잡고 있는 홍지의 손을 당기며 걸음을 재촉한다.
 "어서 오세요? 저는 김정호 입니다. 아까는 사고로 경황이 없어서 인사도 제대로 못했네요."
 홍지와 시우는 미소 남편 정호와 인사를 나눈다. 정호는 잘 생긴 얼굴에 키가 크다. 꾸준히 운동을 한다는 것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체격이 좋다. 목소리는 굵은 저음이고 말투는 친절하며 귀에 딱딱 꽂힐 정도로 발음이 매우 정확하다. 누구나 봐도 호감이 가는 첫 인상이다. 홍지는 SNS에서 봤던 것 보다 훨씬 더 괜찮아 보이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두 아이들도 공손하게 인사를 한다. 첫째인 아들은 하의는 반바지를 입었고 상의는 하얀색 셔츠에 보우타이를 맸다. 딸은 공주를 연상시키는 치마 품이 큰 하얀색 드레스를 입고 있다. 아들은 옆과 뒷머리를 깔끔하게 잘랐고 자로 잰 듯 반듯하게 가르마를 타서 앞머리를 넘겼다. 딸은 드라이로 컬을 굵게 넣은 긴 머리에 푸른색 큰 리본을 달고 있다. 시우는 손님이 와서 아이들 옷을 잘 입혔나 보다 생각했고, 홍지는 평소에도 저렇게까지 꾸미고 있는 게 이상해 보였다.
 "환영합니다. 홍지씨, 어서 와.” 시우와 홍지를 번갈아 보며 우아한 말투로 미소가 말했다.
 "초대해주셔 감사합니다.” 
 홍지도 인사를 건네려고 하는데 갑자기 미소의 얼굴이 어젯밤 꿈에서 본 올빼미로 보였다. 순간 흠칫 놀랐고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홍지야, 괜찮아?” 이상한 낌새를 챈 시우가 물었다. 
 "응? 어.. 괜찮아. 어젯밤 꿈.. 아.. 아니야. 팀장님, 초대해주셔서 감사해요.”
 "남자친구가 자상하네. 어서 들어가시죠.” 미소가 시우를 흘끗 쳐다보면서 말했다. 
 낮에 사고 났을 때도 느꼈지만 상상했던 것보다 홍지의 남자친구 외모가 훨씬 괜찮다.
 안으로 들어오니 밖과 전혀 다른 분위기이다. 주택의 외관이 모던한 스타일이었던 것에 반해 내부 인테리어는 매우 고전적이다. 정호가 저녁 식사를 준비하는 동안 미소는 집을 구경시켜준다. 먼저 이층으로 올라왔다. 이층에 방이 네 개가 있다. 하나는 부부가 쓰는 안방이고, 두 방은 아이들이 각각 쓰고 있고, 나머지 하나는 서재이다. 각 방의 침대, 화장대, 책상, 책장 같은 가구들은 다 무겁고 어두운 색이다. 그리고 이층 복도 코너와 벽면과 같은 여유 공간에 배치해 놓은 장식장, 서랍장, 콘솔 테이블은 문양이 화려한 고가구 스타일이다. 벽은 전체적으로 기하학적 패턴의 벽지로 도배되어있다. 이층을 둘러보고 일층으로 내려온다. SNS에서 볼 때는 화려하면서 예뻤었는데, 실제로 보니 집이 정리정돈이 잘 돼있음에도 불구하고 어수선한 느낌을 홍지는 강하게 받았다. 일층에는 넓은 거실, 커다란 부엌, 그리고 방 하나가 있다. 거실의 커다란 창 밖으로는 푸른 잔디가 깔린 정원이 보인다. 창 밖 정원을 보니 시우는 폭신폭신하게 밟던 잔디의 느낌이 떠오른다. 거실 소파 역시 어두운 색에 문양이 화려하다. 특이할 만한 것은 거실에 TV가 없고 일층 방을 TV와 영화를 볼 수 있는 공간으로 꾸몄다는 것이다. 거실에 TV가 있어야 할만한 곳에 책장이 있고 책이 가득 꽂혀있다. 홍지는 거실에 책장이 있는 것은 좋아 보였다. 시우도 같은 생각을 하면서 책장에 꽂혀 있는 책을 꼼꼼히 살펴 본다. 한참을 보다 책 두 권을 꺼냈다. 한 권은 마르그라트 뒤라스가 쓴 <연인>이고, 나머지 한 권은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이다. 책이 오래돼서 누렇게 변색이 됐고 누군가가 읽은 흔적인 손때도 묻어있다. 무심코 책을 빠르게 넘겨본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엄지손가락이 종이 날에 닿는 느낌이 좋고 그 때마다 올라오는 오래된 책 특유의 쿰쿰한 종이 향도 좋다. 
 “뒤라스 좋아하세요?” 미소가 웃으며 물었다.
 “아.. 아니요. 안 읽어봤어요. 동네에 친한 형이 있는데, 그 형이 학교 다닐 때 이 책을 추천해줬었거든요. 책도 읽어보고 영화도 보라고 했던 게 생각나서요.” 시우가 당황하듯 대답했다.
 “그러시구나. 저는 영화보다 소설이 훨씬 재미있더라고요. 영화는 보셨어요?”
 “영화는 봤는데 내용이 기억이 잘 안 나요.”
 “그럼 고도는 누구라고 생각하세요?”
 “고.. 고도요?”
 “고도를 기다리며, 지금 들고 있잖아요.”
 “아.. 이 책도 그 형이 추천해줬었는데 그때 다 읽었는지, 읽다가 말았는지 그것 조차 기억이 잘 안 나네요. 어릴 때 읽기에는 어려웠던 것 같아요.” 
 “그러시구나. 혹시 읽고 싶으시면 가져가셔도 돼요. 다 읽고 돌려주세요.”
 미소의 표정과 몸짓과 말투에 교양이 넘쳐 보인다.
 “아니에요. 제가 책을 집중해서 잘 못 읽어요. 말씀만으로도 감사합니다.” 시우는 원래 있던 자리에 책을 꽂았다.
 책을 구경하던 중 홍지는 또 미소의 얼굴에서 올빼미를 보았다. 이번에도 놀라서 몸이 뻣뻣해지고 소름이 돋았다.
 바로 알아차린 시우가 아주 작은 소리로 묻는다. “괜찮아? 어디 몸이 안 좋은 거야?”
 홍지도 작은 소리로 말한다. “아니야. 갑자기 올빼미가 떠올라서 그래. 괜찮아.”
 팔을 들어 시우에게 보여준다. 소름이 돋아 팔에 있는 아주 가는 털들이 바짝 서있다. 시우는 따뜻한 손으로 홍지의 팔을 부드럽게 어루만진다.


정호가 거실로 와서 저녁식사 준비가 다 됐다고 한다. 부엌으로 갔으나 식탁에는 아무것도 차려진 것이 없다. 부엌 안 쪽 깊이 들어가니 뒷문이 있다. 밖으로 나오니 잔디가 깔린 뒤뜰이 있고 커다란 테이블에 여러 가지 음식이 차려져 있다.
 “오늘 날씨가 너무 좋아서 뒤뜰에서 먹으면 좋을 것 같아서요.” 정호가 말했다.
 뒤뜰은 밖이 훤히 내다보이는 사람 키 높이의 철재 펜스로 둘러져 있고, 저 멀리 나지막한 산이 보인다.
 “뒤에 뜰이 있는 줄 몰랐어요. 여기도 너무 좋네요.” 시우가 말했다.
 홍지와 시우 그리고 미소네 네 식구가 테이블에 둘러 앉았다.

이전 11화 달빛 내리는 남산에서 11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