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4월 3일- 진서, 선아, 미지

by 킥더드림

7. 2021년 4월 3일- 진서, 선아, 미지
서래마을에 위치한 와인바.
약속장소에 먼저 도착한 진서와 선아는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있다.
미지가 가게 안으로 들어온다. 먼저 와있는 진서와 선아를 발견하고 환하게 웃으면서 양팔을 흔든다. “전서야, 선아야, 안녕!”
“미지 왔네. 안녕!” 선아도 미지를 보고 인사를 한다.
“미지야, 너 진짜 어떻게 6시 7분에 딱 도착하냐? 문 앞에서 6시 7분 될 때까지 기다리다가 들어온 거 아니지?” 진서가 자리에 앉는 미지의 어깨에 손을 가볍게 올리면서 말했고, 미지는 의아하다는 듯 진서의 손을 힐끔 본다.
“진짜? 나 7분에 도착했어? 봤냐, 내가 이 정도다. 하하하”
미지는 자리에 앉자마자, 챙겨온 선물을 선아와 미지에게 건 낸다.
커다란 쇼핑백을 받으며 선아가 말한다. “이건 뭐야? 또 선물 주는 거야.”
선아는 서둘러 쇼핑백에서 선물을 꺼내 포장을 뜯는다. 선물은 코트다.
“어머 진짜 너무너무 예쁘다. 와~ 좋은데. 고마워 미지야.” 선아는 코트를 양손으로 들고 이리저리 돌려가며 자세히 본다.
“응 둘 다 봄 코트. 얼마 전에 봄 시즌을 겨냥해서 나온 신제품이야. 선아 코트는 출근할 때 입어야 하니까 세련되면서도 좀 차분한 스타일로 골랐고, 진서 거는 지금의 프리한 생활을 마음껏 즐기라고 디자인하고 색감이랑 모두 조금 화려한 걸로 골라 봤어. 맘에 들지 모르겠네?”
“무슨 소리야? 완전 마음에 들지.” 선아는 코트를 입고 유리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꼼꼼하게 본다.
“매번 이렇게 받아도 되는지 모르겠네. 고마워 미지야.” 진서는 미안한 표정으로 고맙다고 한다.
“진서야, 나도 매번 받아서 미안하기는 한데, 그래도 미지는 돈 많잖아.” 계속 들떠서 얘기를 하던 선아는 갑자기 목소리를 낮췄다.
선아는 핸드폰을 미지에게 주면서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한다. 미지는 선물 받은 코트를 입은 선아를 여러 장 찍는다. 코트를 입고 좋아하는 선아를 보니 미지는 기분이 좋다.
“그래 괜찮아. 부담 갖지마. 너희들한테 이 정도는 당연히 해줘야지. 사무실 가면 옷이랑 원단이랑 막 쌓여 있어.”
“진서야, 너도 얼른 입어봐. 입고 나랑 같이 한 장 찍자.” 선아는 진서 손에 있는 코트를 뺏어서 입혀준다.
“와! 진짜 잘 어울린다. 진서가 이렇게 화려한 스타일이 잘 어울렸나? 전혀 몰랐네. 진서야, 정말 잘 어울려.” 선아가 코트를 입은 진서를 보고 감탄한다.
“그러게 선아 말대로 너무 잘 어울린다. 진서한테 딱 일거라고 생각은 했었는데..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더 괜찮은데. 키도 크고 몸매가 좋아서 소화를 잘하네. 묘한 매력이 있는 얼굴이랑도 잘 어울리고.” 미지는 코트를 입은 진서의 모습을 전체적으로 유심히 본다.
“정말? 진짜야?” 진서가 미지를 쳐다보며 물었다.
“응 진짜지.” 진서의 물음에 당연하다는 듯이 미지가 대답했다.
그러자 진서의 표정이 밝아지면서 선아처럼 유리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본다.
“진짜 잘 어울리는 것 같네. 너무 맘에 든다. 나도 내가 이렇게 화려한 스타일이 잘 어울릴지 몰랐어. 와~ 진짜 맘에 든다. 미지야, 정말 대단하다. 어떻게 이런 멋진 디자인을 할 수가 있어? 그리고 나한테 딱 어울릴지는 어떻게 안 거야? 정말 너무 좋다.” 진서도 선아처럼 들떠서 코트가 마음에 든다고 여러 번 강조한다.
진서가 코트를 입자 선아는 진서와 같이 사진을 찍는다.
“미지야, 너도 같이 찍자. 인스타에 올리는데 네 얼굴은 무조건 나와야 돼. 내가 아는 유일한 셀럽인데, 안 찍으면 안되지. 그리고 오늘 같이 찍은 사진 네 인스타에도 올려줘.”
“야, 셀럽은 무슨.” 미지가 민망하다는 듯 말했다.
셋이서 함께 사진을 찍는다. 사진을 찍자마자 선아는 자신의 SNS에 올리기 바쁘다.
“진서야, 너 예전하고 뭐가 좀 달라졌어, 선물 줘도 이 정도로 좋아하는 건 처음 본 것 같은데.” 미지가 신기하다는 듯이 말했다.
“얘들아, 배고프다. 빨리 시키자. 뭐 먹을까?” 사진을 다 올린 선아는 테이블 위에 있는 메뉴를 본다.

진서, 선아, 미지는 붉은 색 와인이 들어있는 잔을 들어 건배를 한다. 메뉴를 보면서 서로 먹고 싶은 음식을 이것저것 얘기하다가, 각자 말했던 음식을 모두 주문하기로 했다. 모짜렐라 토마토 샐러드, 하몽, 가지 튀김, 돼지목살 구이, 감바스 알 아히요, 해물 빠에야, 크림 파스타, 오징어 튀김을 시켰다. 진서는 너무 많을 것 같다며, 다 시키는 것을 말렸다. 미지는 이 식당은 양이 적은 편이어서 먹을 수 있고, 혹시 조금 남기더라도 먹고 싶은 음식 맛이라도 보자고 했다. 선아는 천천히 먹으면 다 먹을 수 있다고 확신했다. 그래서 결국 다 주문했다. 음식이 나올 때 마다 선아는 계속 사진을 찍는다. 찍는 즉시 SNS에 사진을 올린다. 선아 만큼은 아니지만 미지도 가끔 음식 사진을 찍는다. 금새 와인 한 병을 비워 한 병을 더 주문했다.
진서가 샐러드와 하몽을 먹으면서 말한다. “오늘 너희들 만나니까 너무 좋다. 그리고 음식도 하나같이 다 맛있다. 앞으로 나올 것도 기대 된다. 다 시키기를 잘했네.”
미지가 진서를 빤히 본다. “선아야, 진서 무언가가 달라지지 않았어? 예전보다 말도 많이 하고 감정 표현을 더 많이 해. 원래 맛있는 거 먹어도 진짜 무덤덤했잖아.”
“야야, 원래 나이 들면 말이 많아져. 너희 우리 오빠 알잖아. 옛날에 말이 진짜 없었거든. 그런데 30대 중반 되니까 말 엄청 많아지더라. 쟤도 30대 중반 됐잖아.” 술이 약한 선아는 술기운이 올라와 얼굴이 조금 붉어졌다.
“맞아. 그렇긴 한데. 그래도 뭔가 좀 달라졌어. 봐봐 화장하는 스타일도 예전하고 다르고.”
미지 얘기를 듣고 선아가 진서의 얼굴 여기저기를 뜯어본다. “진짜 그러네. 화장 거의 안 하던 애가. 오늘 처음 봤을 때 뭔가 달라 보이긴 했는데, 화장을 진하게 했네.”
“너희들 말이 맞는 것 같아. 나도 내가 요즘 달라졌다고 느껴.”
“그렇지? 내 말이 맞는다니까.” 미지가 선아를 가볍게 치면서 말했다.
“나도 나를 잘 모르겠어. 요즘 감정기복도 심하고 예전에 나 같지가 않아. 내가 너무 낯설게 느껴지고 이상해. 왜 그런지 이유를 모르겠어.”
“일을 안 한지 너무 오래돼서 그런 거 아닐까? 아마 6개월 정도 쉬었지?” 선아가 말했다.
“그러게 앞으로 너 어떻게 할 거야? 계속 지금처럼 쉴 수만은 없잖아.” 진서가 답을 하기 전에 미지가 선아의 말을 이어받아서 물었다.
“그것도 모르겠어. 앞으로 뭐해야 할지도 고민이야.” 진서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을 계속 한다. “음, 사실 지금 하고 싶은 게 없어. 그렇다고 지금처럼 아무것도 안 하는 것도 싫고. 그래서 요즘 심리적으로 좀 불안감을 많이 느껴.”
선아는 진서가 배부른 소리를 한다고 생각을 하면서 말한다. “진서야, 나는 네가 이해가 안 되는데. 무슨 그런 고민을 해. 너는 부모님 병원에서 일하면 되잖아.”
“난 다시 의사를 할 생각이 없어. MBA 하러 갈 때 다시 안 할 생각하고 그만둔 거야. 그런데 회사 다니는 것도 체질에 안 맞더라고. 진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전혀 모르겠어. 음.. 어쨌든 상황이 좀 그래.. 우리 다른 얘기하자. 맛있는 음식 먹는데 너무 우울하다.” 말을 마치자마자 진서는 돼지목살 구이 한 조각을 입에 넣는다. “맛있다. 너희들도 먹어봐.”
진서가 와인 잔을 들어 건배를 청한다. 미지는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선아는 밝은 표정으로 가볍게 잔을 부딪친다. 진서, 선아, 미지는 주문한 음식이 나올 때마다 깨끗하게 비운다. 와인도 한 병을 더 시켰다.
“나는 요즘 미지가 대단하다는 생각을 많이 해.” 진서가 와인을 한 모금 마시고 말했다.
“내가? 뭐가 대단해?”
“나도 요즘 그런 생각해. 미지야, 우리 나이에 너처럼 돈 많이 버는 게 대단한 거지. 엄청 대단한 거야. 진짜 부러워 죽겠다.” 선아는 미지 쪽으로 몸을 기울여 어깨동무를 한다.
선아의 말을 듣고 미지는 씁쓸한 표정을 짓지만, 아무도 미지의 표정을 읽어내지 못한다.
“선아 말대로 그런 면도 대단하지. 그런데 그런 것 보다 나는 오늘 우리에게 준 코트처럼 이런 디자인을 한다는 것이 너무 대단한 것 같아. 진짜 신기해. 자기가 상상한 것을 현실화하는 거잖아. 이런 걸 어떻게 상상하는지 궁금해. 사실 나는 살면서 미지처럼 창의적인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
미지가 웃으면서 말한다. “하하 야, 대단할 거 없어. 누구나 할 수 있어. 생각하고 바로 실행하고, 그게 다야. 그리고 최근에는 내가 직접 디자인은 잘 안 해. 그 코트도 내가 디자인 한 게 아니라, 우리 회사 디자이너가 한 거야. 회사 운영하고 경영하느라 바빠서, 디자인은 엄두도 못내. 뭐.. 전체적으로 컨셉 잡고 기획하는 정도지. 그런데 요즘은 그것도 어려워 아이디어가 고갈돼서, 디자인은 고사하고 기획하는 것도 머리가 잘 안 돌아가서 걱정이야. 그래서 몇 전에는 재능 있는 작가 찾아서 콜라보 했던 거잖아. 지금은 해외작가랑 일하려고 알아보고 있는 중이야.”
“그 작가가 정인이 맞지?” 선아가 물었다.
“응 정인이 맞아.”
진서가 묻는다. “정인이가 누구야?”
“너, 정인이 몰라? 최정인. 우리 동네에서 인기 제일 많은 남자애였는데.” 선아는 어떻게 정인이를 모르냐는 표정으로 진서를 쳐다본다.
“그래? 난 처음 들어봤어.”
“원래 진서는 주변에 관심이 별로 없잖아. 진서라면 모를 수 있을 거 같은데. 하하하 그나저나 벌써 10시 30분이네. 우리 자리 옮길까?” 미지가 말했다.
“좋아. 이번에는 맥주 마시러 가자. 그런데 우리 시킨 음식 깨끗하게 다 먹었다. 내 말 맞지? 다 먹을 수 있다니까. 하하하” 선아가 웃으면서 말하니, 진서와 미지도 호응을 하면서 같이 웃는다.
미지가 계산을 하고 밖으로 나왔다.

와인바에서 나온 진서, 선아, 미지는 나란히 걷고 있다. 어젯밤은 조금 추웠는데, 오늘은 전혀 춥지 않다. 가끔씩 부는 바람도 쌀쌀하지 않고, 시원하게 느껴진다. 양 옆으로 길게 늘어선 가게들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이 거리와 골목을 환하게 밝히고 있다. 거리에도 사람이 많고, 술집들도 사람들로 붐빈다. 다들 흥겹고 즐거운 모습이다. 아이스크림 가게에는 늦은 시간인데도 부모를 따라온 아이들이 아이스크림을 열심히 먹고 있다. 선아는 아들과 전화를 했다. 진서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본다. 하늘에는 옅은 구름이 가득하다. 흐린 하늘과 도시의 불빛 때문에 별을 볼 수 없는 것이 많이 아쉽다. 시원한 4월의 밤, 사람들 속에서 친구들과 함께 수다 떨며 걷는 것이 좋다.
“날씨도 시원하고 너희랑 같이 걸으니까 엄청 좋다. 우리 배도 부른데 좀 걷다가 맥주 마시러 갈까?” 진서가 물었다.
“오 굿, 좋은 생각이야. 이 주위 한 바퀴만 돌자.” 미지도 조금 더 걷고 싶다는 생각을 마침 했다.
“고등학교 때 생각난다. 선아랑 나는 반포에 살아서 여기 방배동쪽으로 올 일이 없었는데, 고등학교 때 진서 집에 놀러 간다고 서래마을에 처음 와봤거든. 부모님께서는 아직 여기 사셔?” 미지가 진서에게 물었다.
“응 우리 엄마, 아빠는 계속 같은 집에 살고 있어. 나도 마찬가지로 고등학교 때 서래마을에 처음 와봤어. 고등학교 입학하자마자 이 쪽으로 이사 온 거야. 중학교 때까지는 신반포에 살았어.” 진서가 힘없이 얘기한다.
“그래 맞아, 기억난다. 너 고등학교 입학하고 이리로 이사 왔다고 했지.” 미지가 말했다.
진서는 갑자기 화제를 바꾼다. “그런데 아까 와인 바에서 갑자기 나오면서 얘기를 하다가 말았는데, 나는 미지가 학생 때부터 꿈이 확실했다는 것도 진짜 대단한 것 같아. 패션 디자이너가 되려는 꿈이 있었고, 그걸 지금 실제로 하고 있다는 게 정말 대단해.”
미지가 민망해 한다. “하하하 야, 갑자기 그 얘기를 왜 또 하는 거야?”
선아가 진서를 보면서 말한다. “진서야, 솔직히 얘는 날라리였잖아. 유명했잖아, 날라리 박미지. 원래 날라리들이 옷에 관심이 많거든. 미지는 옷도 좋아하고, 사실 잘 입기도 하고, 스타일도 남달랐고. 아무래도 좋아하는 게 분명하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하고 싶은 걸 일찍 찾은 거지. 지금 미지 보면 공부 잘한 게 무슨 소용인가 싶다.”
“그래, 맞아.” 선아의 말에 진서가 맞장구를 쳤다.
취한 듯한 말투로 선아는 얘기를 계속한다. “미지가 얼마나 옷에 관심이 많고 좋아했으면, 얘는 옷 못 입는 남자는 만나지도 않았어. 아무리 괜찮아도 아무리 잘생겨도, 옷 입는 센스 없으면 절대 안 만났다니까. 미지야, 너 그거 기억나?”
“뭐?”
“너 미국으로 유학 가기 전에 소개팅했었는데, 그 소개팅한 남자가 다른 건 다 괜찮았는데, 옷을 너무 못 입는다고 안 만났잖아.”
“하하 그럼 당연히 기억나지. 그 사람 얘기하면서 우리 둘이 엄청 웃었는데.”
선아가 웃으면서 말한다. “그래 나도 하도 특이해서 아직까지 기억한다니까. 그 남자가 양복 바지에 나이키 티셔츠 입고 나왔다고, 네가 얼마나 어이없어하고 성질을 내던지. 하하하”
선아와 미지 얘기를 듣고 진서도 같이 웃는다. 조용하게 웃는 선아랑 미지와는 다르게 진서는 배에 손을 대고 허리를 숙여가며 큰 소리로 웃는다. “양복 바지에 나이키 티셔츠? 하하하 진짜 웃기다.”
진서가 크게 웃는 모습을 보고 선아와 미지는 웃음을 멈추고 서로 마주본다. 둘은 의아하다는 눈빛을 주고 받는다.
“봐봐 얘 이상하다니까. 너 진서가 이렇게 크게 웃는 거 본 적 있어?” 미지가 선아에게 물었다.
“그러게 없는 것 같은데.. 네 말대로 얘 오늘 좀 이상하기는 하다.”
“맞아 나도 내가 이상한 것 같아. 요즘에..” 진서가 웃음을 겨우 진정시켜가며 말했다.
이때 미지의 핸드폰에서 벨이 울린다. 미지는 손에 들고 있던 전화를 받는다.
“여보세요? 어 정인이구나!”
“나는 친구들이랑 서래마을에 있어. 지금 1차 끝내고 맥주 마시러 가는 중이야.”
“그런데 진짜 신기하다. 아까 친구들이랑 네 얘기했었는데, 너한테 전화가 오네.”
“그럼 진짜지. 너도 올래?”
“그럼 와도 되지. 너도 아는 애들이야. 가게 들어가면 톡으로 위치 보내 줄게.”
“그래 그래. 이따 보자.” 전화를 끊었다.
“정인 온다는데 괜찮지?”
“오 진짜? 나도 오랜만에 정인이 보고 싶다.” 정인이가 온다는 말에 선아가 들뜬 모습을 보인다.
“진서야, 괜찮지?”
“그럼, 나도 괜찮아.”
“오케이, 그럼 내가 가본 맥주 전문점이 있는데, 거기로 가자.” 미지가 앞장서서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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